아부지 뭐하시노? 비긴즈
최근 주 2회정도 알바를 나간다. 과학의 달을 맞이한 초등학교의 행사용품 설치철수를 돕는 일이다. 4년 전 취준생 시절 잠깐 했었는데 이번에 또 하게 됐다. 마침 이직준비중이니 나이스 타이밍. 절친 아버지가 하시는 사업이라 대우가 좋은 편이며, 당일입금이라 당장 현금조달이 난감해진 이직준비자에게 큰 힘을 주신다. 육체노동이라지만, 기본적으로 b2b 교육사업이다 보니 품위유지가 가능하다. 노가다 현장에서 흔히 겪을 법한 부조리가 없다. 굳이 꼽는다면 용달차 조수석에서 아저씨들 인생훈수 받아쳐드리는 것?
당신이 만약 사정이 생겨 용달차 조수석에 탄다면, 각오가 필요하다. 대한민국 물류운송을 짊어지고 계신 분들은 스몰토크 패턴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은 대화의 주제를 동승자의 신상정보를 캐물으며 리드한다. 이들이 좋아하는 건 동승자의 정상/비정상 판정이다. 특히 동승자의 사회적 정체성이 비정상으로 여겨질 경우 수상할 정도로 염려가 많다. 타인의 정상성을 확인하지 못하면 미쳐버리는 게 아닐까 싶은 수준이다. 이쯤에서 용달차에서 벌어지는 대표질문 3가지를 정리해본다. 한 번 듣게되면 최소 20분은 토론하게 되는 문답패턴.
"몇 살입니까?"
-> 이들이 보기에 서른 이후의 육체노동은 부끄러운 일이며, 기술을 배우기에도 아슬아슬한 나이다. 치사하게 나이로 꼽주는 경우가 있다. 내가 당신이 원하는 만큼 어려지거나 늙을 순 없는 노릇이다. 어리면 어린대로, 늙으면 늙은대로 후려칠 것이다. 대한민국 불행의 근원이 '생애주기 별 to-do-list'수행이라는 게 새삼 실감난다. 씨이펄 '내 나이가 어때서' 흥얼거리는 분들이 남더러 님 나이 때 해야 할 일을 따박따박 정해주시는 건지. 이 질문에 대한 여러가지 패턴의 응답을 수행한 결과, 그들에게 이 나이 먹도록 가장 진심으로 달려들었던 일에 대해 말해줬을 때가 가장 효과가 좋았다. (+문학적 과장을 더하면 good~) 그러면 '당신은 내 나이 때 뭐했냐?'는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 이제 공격권을 내 쪽으로 가져왔다. 내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란 걸 보여주자. 대화를 리드하면 시간도 잘간다.
"원래 직업은 뭡니까?"
->이들에게 글을 쓴다거나 스마트폰에서 당신들이 매일 들여다보는 콘텐츠로 돈을 만드는 사람은 한량 취급 받거나 사회부적응자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건 직업이 아니며 더 늦기 전에 기술을 배우라는 것이다. 창작물이 돈으로 환원되는 구조는 그들의 세계에서 납득이 불가능하거나 모종의 사기로 인식되는 듯하다. 업계 특성상 환금이 늦는 편이긴 해서 당신의 지적은 나름 뼈아프게 다가온다. '기술 배워~'할 때 기술은 환금이 빠른 직업을 보장한다. 당신이 몰고다니는 용달차 운용도 대형차량운전이라는 기술을 요구한다. 기술이 노후를 보장한다는 굳건한 믿음이 이들에게 존재한다. 나도 나름대로 생각한 기술기반 직업이 있다. 막상 의견을 제시하면 시큰둥하다. 기술만능론을 해체시킬 나의 언변이 마뜩찮은 것인가. 시큰둥해하지 않을 분을 언젠가 만나보고 싶다.
"아이는 있습니까?"
->이 질문은 질문자가 자신의 답을 말하기 위한 질문이다. 청취자의 인식을 듣기 위한 게 아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들이 저마다 품은 연애결혼출산육아의 이데올로기를 청취하자. 맞는 건 맞다고, 아닌 건 아니라고 대꾸할 때 가장 즐거운 문답이 도출된다. 물론 이 Q&A에서 도출된 인식은 한꺼번에 모아 정규분포곡선을 만들 수 있다. 가부장제를 수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시는 대한민국 중장년층 남성의 의지는 대체로 정규분포곡선의 뚱뚱한 부분을 이룬다. 경험상 용달차 오너분들은 뚱뚱한 부분의 꼭대기를 구성했다. 이들이 펼치는 견해에 모두 동의하지 않지만, 가끔 눈부시게 반짝이는 말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그건 대부분 그들이 삶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와 맞닿아 있었다. 책임을 다하기 위한 대상만 다를 뿐이다. 그래서 이들의 경험담은 보편적일 수록 위대하다.
여러분이 여기까지 무사히 읽어주셨다면, 명절연휴의 가족모임이나 말많은 택시기사님과의 대화같은 걸 떠올리셨을 듯하다. 그렇다. 이 질문은 비단 육체노동현장에 나서는 남성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 전체가 도전받는 질문이다. 타인으로부터 정상/비정상 판정 시비가 붙었을 때, 당신은 어떤 대답을 얻고 있는가? 당신은 당신만의 대꾸방식을 갖고 있는가?
나는 지금도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을 이 문답들이 꾸준히 언급되어야 한다 믿는다. 시민을 향한 정상/비정상 판단은 판단자의 인격적 성숙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성숙한 인격을 지닌 시민이 한명이라도 더 늘어야 대한민국 전반에 드리운 정상성 강박이 조금 유연해질 것이라 믿는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때 되면 해야 할 일을 대체로 다 정해두고 산다 '최단경로로 한 방에'를 추구하는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면 지극히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최적화'나 '가성비'같은 말은 이 나라 사람들이 꽤 좋아하는 세글자일텐데, 우리는 우리에게 내릴 정상/비정상의 판정범주를 훨씬 너그럽게 만들 필요가 있지 않을까. 매사 가성비를 따지면 사람이 떠난다는 걸 배우고, 인생의 모든 것을 최적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활짝 편다. 정상/비정상에 대한 시비를 슬기롭게 해쳐가는 사람은 어제보다 나은 오늘로 씩씩하게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