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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필년 Nov 06. 2023

호기심에 대한 짧은 명상

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좋은 질문과 좋은 대화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좋은 질문과 좋은 대화라고 생각하거든요.

좋은 질문과 대화가 없다면 내가 만든 세상의 틀 안에서 같은 대답만 반복하며 살아가게 돼요  그런데 나를 궁금해해주는 상대가 있을때, 그 상대가 좋은 질문을 가진 사람일 때, 나는 매번 반복해오던 서사의 경로에서 이탈해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해볼 수 있어요.

2023년 10월 턱괴는 레터 中


1.
나는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다. 타고난 듯하다. 무딘 질문을 깎아서 좋은 질문으로 바꾸는 게 직업이다. 물론 망한 질문도 많다. 어쨌거나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만들고 산다. 그렇게 밥 먹고 사는 삶에 만족한다.


인용한 인터뷰는 내게 역설적인 되물음을 선사한다. 나는 당신이 궁금하다. 그런데 당신은 나를 궁금해 하나? 나한테 뭘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나? 요즘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나? 


없다. 뼈아프다. 슬프다. 좋은 질문은 이따금 들어온다. 하지만 차근차근 살피면 그건 질문자의 자문자답에 가까웠다. 타인을 경유하긴 하지만, 대부분 질문자 본인을 향한 물음들이었다. 이게 요즘 잘 살다가도 헛헛한 마음이 드는 근본원인이었던 거 같다.


2.

호기심이라는 무엇일까? 궁금해 하는 것이다. 궁금한 대상을 둘러싼 껍데기를 한꺼풀 벗겨내려는 시도다. 지금 내 세계에 없는 호기심을 예시로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피처 에디터 정년 말고, 고민 상담 그럭저럭 잘해주는 정년 말고,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전시된 기호학적인 정년 말고 그 이면에 있는 정년을 보려는 호기심. 조각난 정년 콜라주 모음을 시도하거나 하는 호기심. 서로 성가실 순 있어도 좀 더 구체적인 행동 내지는 찌름. 

 

다시 한 번 되짚어보지만 없다. 작년 겨울 이후로 실종됐다. 뼈 아프다. 슬프다. 이것이 요즘 성인남녀를 가장 괴롭게 만드는 마음이지 않을까? 아무도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 것 만큼 괴로운 게 있을까?


3.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품는 호기심은 사랑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호기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요즘 세상이 하필이면 자기한테만 온통 관심쏟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한테 쏟는 호기심에 반의 반이라도 다른 인간을 향해 쏟아야 하는 이유렷다.


4.

어렸을 때부터 내가 제일 싫어하는 장난이 생각났다. 대화도중 모든 대꾸를  ‘안물~(안 물어봤어)‘ ’안궁~(안 궁금해)‘라며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일이었다. 일부러하는 걸 알면서도 너무 화났던 장난. 왜 였을까?


나한테 호기심이란 사람을 사람되게 만드는 핵심성격으로 간주된다. 호기심을 소홀하게 다루는 건 사람을 포기하겠다는 뜻으로 수용된다. 아무튼 좋은 질문을 벼려 매번 반복되는 생활경로를 이탈하고자 하는 열망은 내게 몹시 중요하다. 생활을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호기심을 나만큼 중히 여기는 사람과 더 깊고 복잡한 관계를 맺고 싶을 따름이다.


하루일과는 단순명료하게. 우정연애는 복잡심오하게. 가능한 한 서로의 은밀한 세계로 침투해 고유성 탐구. 이거 말고 사람 사는 데 중요한 게 있나? 아무튼 타인에게 궁금한 게 그리 많지 않아지기 시작한 어른은 좀 별로인 거 같다.


5.

다들 내 속에 내가 너무 많다.사는 게 바빠서 혹은 성에 안차서 호기심을 에둘러 숨기거나 뭉갠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타인을 향한 호기심을 잃지 말 것. 호기심은 비대한 자아를 제압한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물론 나다. 하지만 그 주인공이 꼭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감각은 소중하다. 호기심이 안겨주는 멋진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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