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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필년 Aug 20. 2024

바디 포지티브, 가성비가 나쁜 몸을 긍정하기

결과를 순순히 인정하되, 바꿀 수 있는 건 하나라도 차근차근 바꾸기


1.

얼마 전 회사 근처 헬스장 회원권을 1년 연장했다. 첫 등록 후 반년은 회사적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음.


폭음+폭식은 덤ㅠ

해가 바뀌었다. 1월 초부터 조금씩 재미를 붙였고, 1월 말부터는 정말 열심히 다녔다. 근육량을 지키면서 체지방량만 줄인 성공적인 다이어트였다. 매달 친구랑 코스트코가서 저탄고지용 식재료를 사다 먹은 보람이 있다. 신선한 식재료를 도매가로 구입해 직접 차려먹으면서 어떻게든 식재료 비용을 낮추려 애썼다. 스마트워치 피트니스 지표가 전부 우상향 곡선을 그리면 어쨌거나 건강에 좋다는 걸 배웠다. 근데 딱 하나 섭섭한 게 있다면...'가성비'



200일간의 운동기록을 살펴본다. 1개월마다 체지방량을 1kg씩 낮췄다. 7키로 정도 줄인 셈이다. 직장인으로서 거둔 성과로는 괜찮은 편이지만, 유튜브나 헬스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걸 먹고 비슷하게 운동하는 사람들은 훨씬 성과가 좋았다. 자동차에 빗대면, 나는 연비가 너무 좋은 몸을 갖고 사는 셈이다. 살은 쉽게 찌지만, 빠지는 건 한참인 체질. 현대사회의 풍요는 오히려 내게 불리하다.



2.

우리 헬스장은 PT전문이다. 등록을 마치면 체형상담을 받을 수 있는데. 1년 만에 체형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체형상담은 측정장비를 활용한다. 오른쪽 몸통이 왼쪽에 비해 몇도 틀어져 있는지를 기록한다. 하반신이 오다리인지 X자 다리인지 신체스펙을 통계학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작년에 비하면 몸통 좌우 비대칭은 많이 나아진 거 같다. 골반과 허벅지를 잇는 고관절 내전근은 여전히 사타구니 안쪽 방향으로 말려있어서 꾸준한 스트레칭이 필요하며, 오른팔에 비해 왼팔이 짧은 이유는 몸통 왼쪽이 반대편에 비해 충분히 늘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왼팔을 번쩍 들어 철봉을 꽉 움겨잡고 매달리거나, 오른쪽만큼 열심히 쓰다보면 좋아질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헬스장에서 카톡으로 보내주는 참고영상만 따라해도 반은 먹고 들어갈 것이다. 


여기까진 좋다. 다 좋았는데... 흑...



"회원님 그런데 진짜 저희가 봐도 노력 엄청 많이 하시는데... 혹시 식사도 조절하시나요?"



"식단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생고기,샐러드,피타브레드를 챙겨서 따로 도시락을 싸요. 아침 저녁 두 번 나눠먹습니다. 그 사이에 배고프면 점심에 김밥이나 스콘을 먹고요. 회사 탕비실에서 과자나 초콜릿 챙겨먹어요."



"스콘은 안좋은 거 아시죠? 초콜릿은 그렇다쳐도 감자칩같은 건 X! 그리고 음주도 하시나요?"



"주 1회. 맥주캔 기준으로는 1~2캔정도 마시는 거 같아요. 그리고 주말에는 일반식도 곧잘 하지요."



"그정도는 괜찮아요...지켜보면 운동량도 많으신 편이니까....음...그런데..."



"이 문제 많은 몸에 뭐가 또 문제일까요?"



"회원님...진짜 아쉽지만...회원님은 체격에 비해서 기초대사량이 낮은 편이세요."



"근육량이 좀 늘었는데, 근육이 늘면 기초대사량도 늘지 않나요?"



"그렇긴한데 그렇게 영향이 크진 않아요. 기초대사는 코어근육 잘 쓰는 사람이 유리한데... 회원님은..." 



선생님이 입을 때기 곤란해 하는 진실. 스앵님! 사실 저는 진실을 알고 있어요. ㅠ



"제가 코어를 엄청 못쓰죠. 달리기나 철봉매달리기처럼 요즘 하는 운동 덕에 느끼는 건데요. 가끔 하체랑 상체랑 연결이 안된 거 같단 생각이 들어요. 코어가 사실 내 몸에 있기는 한건가 싶어요 ㅋㅋㅋ. 코어근육에 힘을 어떻게 주는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나마 쌤이 스쿼트는 꾸준히 하라고 하셔서 요즘 골반 접을 때 장요근 쓰는 느낌은 아주 쪼오오끔 들어요."



장요근은 허벅지와 골반을 잇는 근육이다. 고관절 움직임에 관여하는 중요한 근육이다.



"회원님은 그렇다고 복근 운동을 따로 챙겨서할 필요는 없으세요. 장요근 둔근 척추근육을 더 강하게 만들고 근육들이 서로 협응하는 걸 조금씩 느끼셔야해요. 그래서 오히려 하체운동을 잘 하셔야됩니다. 스쿼트랑 데드리프트 같은 걸 열심히 하셔야 해요."



"알겠습니다."



분명 나에게도 코어근육이 서로 협응을 잘하던 시절이 있었을 거다. 초등학교 때 시대항 수영대회를 나갔던 시절이나...태권도장 1박2일 합숙할 때 피구 최후의 생존자로 살아남아 요리조리 잽싸게 굴러서 공을 피하는데 성공해 팀 맴버 전원을 부활시켰던 짜릿함을 기억한다. 그런데 그 후로 다 내가 망쳤지 뭐...ㅎ...



"운동루틴을 바꿔보시는 것도 추천해요. 회원님 경우는 유산소를 줄이고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에 시간을 더 쏟는 식으로요. 여태까지 스텝밀도 열심히 타시는데, 타다보면 머신에 몸이 적응을 해서 이게 생각보다 운동효과가 더딜 수도 있어요. 차라리 바깥에서 러닝을 뛰면 내가 발을 디딜 곳을 보고 뛰니까 집중을 하게되고 이러면 운동효과가 더 나아질 수도 있어요."



"먹고 운동한 거에 비해서 체중이 진짜 너무 안내려가는데, 뒤집어 말하면 연비가 정말 너무 쓸데 없이 좋네요.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남들보다 유리한 몸인데 말이죠. 으하하"


다른 건 다 노력하면 고칠 수 있다 치자...기본 기초대사량이 낮다는 게 참 슬펐다. 이건 사실 노력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캐릭터. 선천적 체질이 시대를 잘못만난 불운 아닌가? 흑...아쉬워하면 안되는 거 아는데 아쉽다.


3.

들인 노력에 비해 성과를 얻기 힘든 몸. 남들보다 가성비가 떨어지는 몸을 갖고 산다. 그것을 확실하게 체감하는 2024년 상반기였다. 하필이면 이런 시기에 정체기가 찾아오는가! 광복절 연휴. 200일 동안 꾸준히 하향 곡선을 그리던 체중은 갑자기 상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세부지표도 나쁘다. 먹고 싶은 걸 마음대로 먹었다면 억울하지라도 않은데.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내 몸은 왜 벌써 체지방률 20퍼센트 후반대에서 안주하려 하는가.


4.

그래서 도전했다. 몸이 허락하는 선에서 최고강도의 운동을 펼쳐야겠다고. 지난 일요일, 한양도성 반시계방향 트레일 러닝에 나섰다. 완주시 23km를 기록하는 하프마라톤급 도전. 지난 2년 간, 서울 강북의 2~300m산을 오르락 내리락하는 하이킹 코스를 띄엄띄엄 즐겼는데, 이번에는 한꺼번에 완주하기로 결심했다.

강남에서 올라오고 있는 소나기구름들. 저 멀리 있던 구름이 인왕산 내려오고 북악산 오를 때 비를 뿌리기 시작하더라

처음부터 전력질주다. 뛸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면, 중간중간 최선을 다해 뛰어보기로 결심했다. 내 몸에 있는 글리코겐을 싹 다 써버리겠다는 의지로...그리고 막차를 놓치면 지갑이 텅빈다 6시간의 대장정을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 (세시간을 목표로 잡은 건 터무니없긴 했지만 ㅋㅋ)

대자로 누웠던 자맄ㅋㅋㅋㅋ명탐정 코난 범인 누워있던 자리같네 ㅋㅋㅋ
제일 힘든 인왕산-북악산 구간 끝내고 용기가 나더라. 장충체육관까지는 어찌저찌 뛰었고, 남산에서는 뛸 수 있는 체력이 1도 안남아서 열심히 걸었음

제일 힘든 인왕산-북악산 구간 끝내고 용기가 나더라. 장충체육관까지는 어찌저찌 뛰었고, 남산에서는 뛸 수 있는 체력이 1도 안남아서 열심히 걸었음

5.


혼자의 힘으로 완성시킨 도전이 아니다.



소나기 내린 등산로에서 적절한 접지력을 제공한 뉴발란스 트레일 러닝화 more trail v3.

에어팟에서 흐르는 페기 구+악동뮤지션 플레이리스트 .

편의점에서 틈나는대로 마시고 치워버리는 PET병 생수 5병

참치마요로 꽉찬 CU 3XL 삼각김밥 1개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마신 포카리스웨트 1.5L.



먼저 인류문명의 위대한 발명품에 찬사를!



6.

도전을 끝낸 다음 날.

지금 이 기록을 끄적끄적 쓰고 있는 지금.


체중은 2kg가 줄었고, 다시 체지방량은 20%대 진입. 대신 근육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점심시간 되자마자 헬스장가서 폼롤러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부착형 파스는 덤이다. 오른쪽 무릎 컨디션이 조금 나쁘긴 하지만, 일상에 지장을 주는 수준은 아니다. 푹 자고 다시 일어나면 씻은 듯이 고통이 사라진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2024년 8월의 나. 시티보이 ㄴㄴ 시티삼촌 ㅇㅇ

7.

그렇다. 슬슬 잘 시간이다. 생각나는대로 뭐라도 쓰다보니 잠이 솔솔 온다.


다음 달이면 만으로 서른하고도 다섯에 진입하는 내 몸뚱아리는 알고보니 가성비도 나빴다. 같은 노력을 쏟더라도 남들 반년 걸릴 다이어트가 1년 2년 걸리는 몸이다. 근데 뭐 어쩌겠나. 그게 현실인 걸.  그럼에도 현실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한 하루하루의 노력은 30대 중 가장 나은 몸상태를 만들었다. 


잊지 말자. 지금보다 훨씬 젊었던 20대 10대 때보다 지금이 훨씬 나은 컨디션이라는 사실을. 매주 하루 정도는 바깥에서 10km를 쉬지않고 뛰고 언젠가 레슬링 학원에 등록하고 싶다는 의지는앞으로도 계속 지키고 싶다.



내가 오늘 가진 몸은 오랜 생활습관의 결과다. 

결과를 순순히 인정하되, 바꿀 수 있는 건 하나라도 

차근차근 바꾸면 된다는 걸.


나는 이 개념을 바디 포지티브라 부르고 싶고

그런 걸 소중히 하게 됐다는 걸 적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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