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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eepers Summit Jul 12. 2020

코로나 시국 우리가 과거를 여행하는 방법, 머천다이즈

만질 수 있는 기억

영국에서 나는 Creative and Cultural Entrepreneurship 라는 전공을 했다. 누군가 내 전공을 물을 때면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전공이라 바로 전공 이름을 말하곤 하지만,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하기에 예술경영 또는 문화경영이라고 소개한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예술 경영과는 조금 다르다. 정책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기보다 예술과 문화를 기업가 정신으로 해석하고 실질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공부를 한다. 쉽게 말해 창조경제의 관점에서 예술과 문화를 바라보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창조 경제라는 단어는 뉴스를 통해 먼저 접한 사람들이 많아서, 창조경제라는 말을 꺼냈을 때 사람들은 그 학문에 대한 궁금해하기보다는 자동적으로 반감을 가지고 이해하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있지 않는 한 설명하지 않는 편이다. 


아무튼 경제적 가치를 낼 수 있는 비즈니스를 만들어 내는 목적을 가진 전공이기에, 나는 예술사지만 예술에 대한 수업 이외에 경제와 비즈니스에 관한 수업을 추가로 배웠다. 그리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실제로 출시 전까지 만들어보는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했다. (이후 몇몇의 친구들은 이를 진짜로 실행해서 실제로 자신의 기업을 만든 친구들이 많다. )


나는 사장이 되기보다는, 리더십과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있지만 많은 리더들이 탐내는 팔로워 그리고 인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수업은 마치 내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사장이 된 것 같아 부담이었고 다른 수업과 달리 즐기기보다는, 내가 항상 잘 모른다는 생각으로 더 진지하게 임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실질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중간 지점을 찾아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내가 좋아하는 산업의 전문가들이 발표하는 트렌드 예측을 분석하고 그 흐름을 믿고 따라 보는 것이었다. 


따라서 최신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서 여러 콘퍼런스나 엑스포를 눈에 불을 켜고 참가했고, 그중 가장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은 영국에서 진행되는 전 세계의 이벤트와 페스티벌의 프로덕션들이 모이는 엑스포인 'Event Production Show'였다. 2017년 그 당시 Event prodcution show에서 내가 내 식으로 트렌트 예측을 해석하고 도출해낸 키워드는, '친환경', 'RFID*' 그리고 '안전(Safety)'였다. '안전'같은 경우는 2015년 파리 바타클랑 극장에서 테러가 난 이후였기에 테러에 관련된 맥락에서의 안전을 주로 다뤘고, 한국에서 오래 자란 나는 이에 대한 이해도가 얕은 편이었기에 자료가 상대적으로 많은 '친환경'과 찜질방의 나라에서 자라 익숙한 목욕탕 열쇠 팔찌에 내장된 'RFID'의 키워드를 이용해 비즈니스를 만들기로 했다.

*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 무선 인식이라고도 하며, 반도체 칩이 내장된 태그(Tag), 라벨(Lable), 카드(Card)등의 저장된 데이터를 무선주파수를 이용해 비접촉으로 읽어내는 인식 시스템이다.



Event Production show에서 영국의 유명한 페스티벌 Glastonbury festival, All points east 담당자들의 발제



나는 "종이가 없는 (Paper-free)"라는 목표를 가지고, 페스티벌 내에 종이가 사용되지 않도록 모든 티켓, 지도, 안내문, 그리고 팔찌를 없애 버릴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비즈니스를 계획했다. 그리고 거의 반년 동안 교수님과 학과 친구들의 피드백이 오갔고, 데드라인보다 조금 일찍 과제를 마무리하는 듯했다. 


시간이 여유롭다는 생각이 드니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싶고 내 비즈니스 모델에 설득력을 더하고 싶었다. 그래서 주변의 페스티벌과 콘서트광인 친구들의 의견을 넣기로 하고, 정말 그 산업에 관심이 많은 그들에게 의견을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만장일치로 부정적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비즈니스는 더욱더 설득력 있어지고, 교수님의 긍정적인 코멘트가 늘어나고 나의 논리는 단단해졌지만 고객들이 원치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팔찌를 입장의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그 시간을 기념할 수 있는 물건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 산업의 충성스러운 고객이었는데, 내가 내 모습을 분석해 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머천다이스(Merchandise);굿즈(Goods)의 역할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 머천다이즈(Merchandise) : 브랜드나 행사의 설정과 배경을 토대로 기획한 상품, 기념품




남는 건 중요하다.


<2018년 투모로우 랜드에서 구매한 굿즈> 출처: 제 거예요. 자랑하고 싶어요. 



'남는 건 사진이다.'라는 말이 있다. 요즘같이 이 말을 지지하는 때가 있었나 싶다. 코로나 19가 시작되고 사람들의 이동이 어려워졌고, 여행을 가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SNS에는 그 여느 때보다 여행 사진과 자신이 모았던 머천다이즈나 기념품을 찍어 올린 포스팅이 가득하다. 남겼던 사진이나 머천다이즈로 떠올릴 수 있는 과거의 기억이, 지금 움직이지 못하는 우리를 위로하는 것이다. 이를 경험 경제(Experience economy)에서 말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말하는 만질 수 있는 기억(Tangible memory)이라 말할 수 있겠다.


코로나 전문가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시국이 잘 맞았고 포스트 코로나는 내 세상이 될 것이다고 떠들어 대던 나도, 코로나 블루를 피해가지 못했고 나무에 걸린 헬륨 풍선처럼 안달복달거리다 모았던 굿즈들를 만지작대고 있는 걸 보면 확실히 만질 수 있는 기억은 중요한 것 같다. 나는 이 만질 수 있는 기억으로 역 향수를 느끼고 그때를 떠올리며 위안을 삼는 게 요즘 삶의 낙중 하나다. 




선(先) 나만 알기, 후(後) 알리기. 


관객 개발 (Audience development)의 관점으로 관객 세분화(Culturual Segments)를 분석해 굿즈를 가장 구입을 많이 하는 관객 유형을 살펴보면, 머천다이즈가 관객들에게 어떠한 존재인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Cultural Segments (관객 분석)>  출처 : mhminsight.com



머천다이즈에 소비를 많이 하는 관객의 유형은, 주로 표현형(Expression)과 Affirmation(어퍼메이션, 한국어로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해 그대로 두기로)형 관객이다. 그중 오늘은 '표현형'만을 잠깐 엿보기로 한다. 이유는, 그게 더 설명하기도 이해하기도 쉽다. 히히.



<자신이 참여한 페스티벌의 팔찌를 옷에 붙인 페스티벌 고어들> 사진 제공 : 레드 포인트



'표현형'으로 분류되는 자신을 표현을 하기 좋아하는 관객들은, 머천다이즈로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고자 한다. 특히, 페스티벌이나 콘서트와 같은 이벤트형 엔터테인먼트는 반복이 되지 않는 정말 시간적 콘텐츠이기 때문에 그때 그 장소에 있는 사람만 경험할 수 있다. 따라서, 나만 알 수 있는 이 희소성은 이들의 표현하고 싶은 자랑거리가 된다. 또 이 관객들은 커뮤니티 또한 사랑한다. 머천다이즈를 통해 내가 이 희소성 있는 콘텐츠의 관객이었다는 것을 알림을 동시에, 같은 머천다이즈 시리즈를 표현하고 있는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을 발견할 때면 이들은 금방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감을 얻고 즐거움을 얻는다. 



지속 가능하게 하는 수익 제조마, 머천다이즈


흔히들 페스티벌과 이벤트는 티켓 가격으로 운영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티켓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헤드라이너의 개런티, 저작권 그리고 시스템에 들어가는 비용을 충당하기에 이는 어림도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페스티벌은 기업의 스폰서십에 많은 부분을 의존한다. 그리고 머천다이즈 또한 수익에 있어 부수적으로 든든한 역할을 한다. 


한 예로, 일본의 후지 록 페스티벌은 자신들의 신념이 브랜드에 의해 흐려지지 않도록 스폰서십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디자인화 시켜 머천다이즈 만들어 적극 활용한다. 


<후지 록 페스티벌에 가기 전, 머천다이즈화 되고 있는 캐릭터를 응용한 패디큐어> 출처 : 머천다이즈의 노예, 나



실제로 머천다이즈는 앨범이나 티켓에 비해 순 수익이 높은 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벤트 산업뿐 아니라 뮤직 비즈니스에서도 워너 뮤직과 같은 대형 레이블에서는 아예 머천다이즈 회사들을 인수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분야다. 


또, 이러한 방법은 코로나 19에서 업계가 살아남을 수 있는 영감을 주기도 했다. 올해 50주년으로 전 세계인들이 주목하고 있던 세계 정상급 페스티벌 글라스톤베리(Glastonbury Festival)는, 코로나로 인해 대면 축제는 취소되었지만 가상으로 축제를 진행했고 이 머천다이즈들를 통해 기부금을 모금하였다. 물론, 이번에는 글라스톤베리의 수익이라기보다는 자선단체에 전달되었지만, 당장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영세한 축제기관이나 지역 축제의 단위에서는 이 방법은 그들이 비즈니스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대안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자체 PPL : 이는 마치 조윤지의 The show must go on에서 고민한, 산업의 안정성을 위한 무형 콘텐츠의 유형화 방법 중 하나랄까? https://brunch.co.kr/@sleeperssummit/4 )




이처럼 머천다이즈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참 많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또한 예상치 못한 영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무형 콘텐츠 산업에 작지만 소중한 힘과 희망을 주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 나는 만질 수 있는 기억, 이 머천다이즈를 통해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위로하고 있다.






조윤지 문화 기획자/프로그래머, 슬리퍼스 써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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