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leepers Summit Feb 17. 2021

<더 디그> 과거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디그>를 보고

김승민 큐레이터님을 비롯한 몇몇 지인들이 나에게 ‘<더 디그>를 봤어? <발견 그리고 덧댐과 이음> 프로젝트가 생각나더라.’라며 영화 <The Dig (더 디그)>를 추천해주었다. 누군가가 내가 요즘 하고 있는 활동과 관심사를 기억하고 알아준다는 건 굉장히 고마운 일이다. 설 연휴를 틈타 이 영화를 보게 되었고 영화가 남긴 여운은 고요했지만 강렬했다. 그 여운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 아직도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을 둘러보고 영화의 배경과 관련한 자료들을 찾아보고 있다.



영화 <더 디그>로부터의 응원과 지지


이 영화는 제목처럼 정말 땅을 파는(dig)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한 여성이 스스로를 ‘발굴자(Excavator)’라 소개하는 한 남자(그는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음에도 정규 교육의 학위를 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을 ‘고고학자’라 칭하지 않았다.)를 고용하여 자신의 개인 소유지의 둔덕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 아래에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직감과 확신을 가지고 시작한 발굴은 영국인의 기원과 관련된 중요한 역사적 실마리들을 발굴해내게 된다.

영화 <더 디그> 속 장면

이 영화의 배경은 1939년으로 2차 세계대전 직전의 영국 서튼 후(Sutton Hoo)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전쟁으로 인해 나라 전체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이 영화의 주인공인 앞서 말한 여성 이디스 프리티(Edith M Pretty) 부인은 건강이 점점 악화되어 죽음을 앞두고 있기까지 하다. 시대적으로도 개인사적으로도 암담한 환경에서도 그들은 묵묵히 땅을 파낸다. 심지어 그들은 바이킹 훨씬 이전에 역사적 사료가 부족하여 많이 알려지지 못한 ‘Dark Age’를 밝히는 엄청난 발굴을 하였음에도 영화는 이를 조용하고 세심하게 표현해낸다. 누군가의 요란한 성공담 엄청난 역사적 발굴의 형태가 아니라, 후대가 역사책을 넘겨보듯 담담하게 담아내었다.


영화 속 인물들의 대사들은 바로 노트를 펼치고 적어두고 싶을 정도로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왜 우리가 꼭 봐야 할 영화라고 다들 추천해주었는지 단박에 알 것 같았다. 이 영화의 주제가 나와 주혜림 디자이너 그리고 장비치 작가가 <발견 그리고 덧댐과 이음> 프로젝트로 들려주고픈 이야기를 관통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학위를 가진 큰 기관 소속의 고고학자가 아니란 이유로, 자신이 처음 발굴을 시작한 유적에서 물러나야 했던 바질 브라운(Basil Brown)은 속상한 마음에 현장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 버린다. 집으로 돌아간 그에게 아내가 던진 말들은 그를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녀의 대사들이 내가 맨 처음 <발견 그리고 덧댐과 이음>의 제목을 정하고 함께하자고 주혜림 디자이너를 설득하며 하였던 말들과 분명히 이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그 부분들은 우리가 매 작업 과정마다 가장 주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다.


“당신이 발굴은 과거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일이라고 했잖아.
후대에 그들의 뿌리를 알려주는 일이니까.
후대와 선대를 잇는 일이라고 입이 닳도록 얘기하지 않았어?
온 나라가 전쟁 준비로 바쁜데 왜 당신들은 흙에서 뒹구는데? 
다 의미가 있어서잖아. 곧 시작될 전쟁보다 더 길이 남을 일이니까.”

또한, 이 대사는 우리의 지난 시간과 앞으로의 여정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해나가고 있는 프로젝트가 그들의 발굴만큼 큰 의의를 지닌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거의 사실들을 애정을 가지고 발견해내고, 현재의 우리가 작은 실천과 견해들을 덧대어 나간다면, 현대의 더 많은 사람들 그리고  미래에까지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발견 그리고 덧댐과 이음> 프로젝트를 이어나가고 있다.


<밸롱벨롱나우 페스티벌>도 마찬가지였다. 벨롱벨롱나우 페스티벌은 환경, 전통, 예술생태계 그리고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의 지속가능성을 예술을 매개로 꿈꾼다. 제주 방언으로 반짝반짝 그리고 NOW, 그 이름처럼 지금을 비추어 '현재'를 '미래'에 전달해줄 수 있는 창작을 전시, 워크숍, 플리마켓, 레지던시, 컨퍼런스 등의 형태로 만들어나갔다. 코로나 19의 시작으로 매일 달라지는 상황 속에서 축제를 개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지만, 우리는 매 순간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남기게 될까를 종종 고민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우리의 든든한 멘토이신 스티브 감독님이 해주셨던 말들이 생각이 난다. '슬리퍼스써밋이 이번에 만든 축제는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그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자신들이 무엇을 해냈는지 모르지만, 아주 의미 있는 큰일을 한 거다. 아마 2년, 3년이 지나고 난 뒤 알게 될 것이다.' 감독님이 말씀하신 우리가 해낸 아주 의미 있는 큰일이 정확히 훗날 어떤 형태로 느껴질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며 아마 위의 대사 속에 그 힌트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디그> ‘서튼 후 배 무덤 유적과 유물(Sutton Hoo Ship Burial)’ 그리고 ‘무령왕릉’


이 영화를 보며 개인적으로 더욱 공감이 갔던 이유는 아마 <발견 그리고 덧댐과 이음>의 세 번째 주인공을 '무령왕릉'으로 결정하고 무령왕릉에 대해 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디그> 속 서튼 후의 유적과 유물은 배를 이용해 시신을 안장한 배 무덤이다. 무덤의 주인은 이스트 앵글리아(East Anglia)의 왕으로 추정된다. 왕들 가운데에서도 왕권이 상당히 강한 왕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배 형태 무덤의 흔적과 함께 왕족의 화려한 생활과 얼마나 먼 곳까지 해외 무역을 하였는지 흔적들을 남긴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 웹사이트에 거론된 'Dark Ages'와 서튼 후 배무덤 유적

영국인의 뿌리이자 기원인 앵글로색슨족의 유물이 발견된 것인데, 브리티시 뮤지엄의 웹사이트에서는 이 유물과 유적을 A light on the ‘Dark Ages’라 소개하고 있다. 이전까지 깊이 있게 알아갈 수 없었던 시기에 대한 한줄기의 빛을 비춘 발굴이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던 듯하다.


무령왕릉의 모습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발견 그리고 덧댐과 이음> 프로젝트로 소개하는 세 번째 유적이자 유물인 무령왕릉은 1971년 이전에 발견되거나 발굴 혹은 도굴된 적 없는 완전한 백제의 왕릉이다. 무령왕릉의 발굴 또한 단편적 기록이 전부였던 백제사와 백제의 풍속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무령왕릉은 무령왕과 왕비가 생전에 사용했던 물건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후대가 남겨준 물건들을 총 4,600여 점을 쏟아냈다. 그 수많은 유물들은 백제의 문화, 사상, 장례문화, 사회, 외교 등 백제사 연구에 크게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백제 특유의 미감을 담은 유물들은 한국의 미술사적으로도 중요한 의의가 있다. 또한, 무령왕릉은 함께 발굴된 지석에 적힌 내용을 덕분에 삼국시대 무덤 중 유일하게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있는 무덤으로 더욱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두 발굴 모두 부족한 자료들로 추적해왔던 시기를 후대들이 알아갈 수 있도록 이어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신기하게도, 둘 다 각 나라의 6세기를 남겨두었다(정확히는 무령왕릉이 역사적으로 수십 년 앞선 시대이지만). 6세기 후반과 7세기 초의 앵글로색슨과  6세기의 백제, 비슷한 시대에 지구 반대편에 묻힌 두 무덤들이라니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 서튼 후 유물들이 전시된 전시관  VR투어 이미지
국립공주박물관의 무령왕릉 출토 유물들이 전시된  전시관 VR투어 이미지



삶과 죽음, 그러나 역사


요즘 무령왕릉 관련 사실들을 리서치하며 ‘발견’ 해 나가고 여러 차례 워크숍과 답사를 통해 ‘역사’와 우리가 매개자로서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사실 처음 무령왕릉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을 때에는 누군가의 삶과 그의 죽음이 무섭기도 하고 무겁기도 했다. 먼 훗날 나와 내 주변인들이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것도 알고는 있지만 체감하고 싶지 않았고, 죽음은 아직 담담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주제인 것 같다.


남편을 잃고 자신의 몸도 점차 쇄약 해지는 것을 느끼며 홀로 남을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는 프리티 부인은 다가오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유물의 소유권을 인정받은 평결 직후임에도 프리티 부인은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며 허무한 마음에 눈물을 흘린다.


영화 <더 디그> 속 장면

그때 자신의 생각은 다르다며 바질 브라운이 아래와 같은 말을 한다.


“인간이 최초의 손자국을 동굴벽에 남긴 순간부터 우린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언가의 일부가 됐어요. 그러니 정말로 죽는 게 아니죠.”


지난 시간 동안 프로젝트를 이어오며 역사에 대한 그리고 나의 삶에 대한 질문을 이어오다 보니, 그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가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그들의 삶은 수많은 이들의 덧댐과 이음을 불러일으켰고, 2021년을 살아가고 있는 한국의 한 청년 기획자에게도 이어졌다. 영국박물관의 VR 투어와 웹사이트의 소장품 검색을 통해 그 둘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을 보고, 바질 브라운이 말한 ‘이어짐’에 대하여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다.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 웹사이트에 소장품 소개에 적힌 기증인 Mrs Edith M Pretty

수백 년을 거친 발견, 덧댐 그리고 이음

(6세기 후반, 7세기 초반 앵글로섹슨족의 흔적 -> 2차 세계대전 직전의 발굴 -> 2007년 소설로의 기록 -> 그리고 2021년 영화 -> 지금 우리)


6세기 후반, 7세기 초반에 존재했던 나라와 인물들의 흔적. 그 유적들을 발굴하게 된 1939년, 이디스 프리티, 바질 브라운, 발굴 소식이 알려지자 현장을 접수해버린 캠브리지 대학의 고고학자 찰스 필립스(Charles Philips) 그리고 처음으로 금장 유물을 발굴한 페기 피고트(Peggy Piggott)와 그의 남편(Stuart Piggott) 등 2차 세계대전을 앞둔 시대상에도 자신들의 견해를 덧대며 발굴을 해나간 사람들.

영화 <더 디그> 속 발굴에 함께한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또다시 역사가 되어버린 그들의 이야기. 그 이야기를 2007년 그 발굴의 사실들을 작가 존 프리스턴(John Preston)의 시선에서 풀어나간 소설 <The Dig>.


나아가 2021년, 영화로 재탄생한 <The Dig>.


그 영화를 보고 발굴 이후 바질 브라운의 여생, 현재 영국박물관에 전시된 모습, 소설과 영화의 제작과정, 그리고 유적지의 현재 모습 등이 궁금해진 나를 비롯한 많은 관객들까지.


이 모든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의견과 견해가 덧대어지고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되었을지 상상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모든 프로젝트들도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연결이 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영화 <더 디그> 속 장면

이끼 위에 부장품들이 놓여있는 이 장면은 나로 하여금 지난 브런치 글에 소개한 우리의 신라 금귀걸이 룩북의 목업 이미지를 떠오르게 했다. 배치와 색감 때문일까?


보문동 합장분 출토 굵은고리 금귀걸이의 덧댐 - 룩북의 목업 이미지 (by 주혜림 디자이너)





도연희 문화 기획자/기업가, 슬리퍼스 써밋

작가의 이전글 꿀벌들은 로봇 양봉가를 꿈꿀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