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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연희 Nov 17. 2022

미국 치과조무사의 하루는
이렇게 끝이 나고...

멘붕 와서 집에 뛰쳐 오고 싶었던 하루, 잘 넘기고나서 푸살이

지금 근무하는 치과에서의 경력이 벌써 10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짧은 기간 동안 세 번의 이직을 경험했고 여기가 네 번째 치과인 셈인데, 이직하고서 처음으로 오늘, 그만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도 하루에 6~70명의 환자가 내원하는 대형치과이긴 하지만 어쩌다 보니 세 명이서 일해야만 하는 프런트(환자의 첵인, 워크 아웃을 도맡는 데스크)에 나 혼자만 출근한 것이다. 몇 주 동안 타국에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한 동료는 여독이 풀리지 않아 이른 아침에 문자로 스케줄을 조정했고 다른 한 사람은 벌써 지난주에 조용히 오프(off, 일 하지 않는 날)를 신청했었던 것. 이미 임시로 출근했던 지난주 금, 토에 백 명 가까운 환자를 경험한 터라 평소에 주말에 비해 스케줄이 조금 한가한 월요일을 기대하면서 출근했다가 대환란을 맞닥뜨린 것이다. 


대부분의 여성분들처럼 멀티태스킹에 능하다고 자부하는 나도, 동시에 다섯 개가 넘는 일이 쏟아지고 앞과 옆, 뒤까지 프런트를 둘러싼 몇 평 되지 않는 공간에 나만 바라보고 있는 환자들이 에워싸는 상황이 벌어지자 머릿속 어딘가에서 전선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가늘고 예민한 구리선이 스파크를 내며 내려앉았다고나 할까.


프런트에 있다 보면 전화응대, 이메일 응대, 첵인(check in, 내원)하는 환자, 워크아웃(walk out, 퇴원)하는 환자, 수금, 보험 확인, 진료상담까지 한꺼번에 파도처럼 몰려오는 일이 있는데 그날 일하는 의사의 숫자가 적거나 하이진(hygiene, 치위생사)이 적으면 그럴 가능성이 낮아지기는 한다. 


오늘은 그 모든 경우의 수를 빽빽하게 채운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직하면서 의사를 보조하는 업무(chair side assisting, 체어사이드 어시스팅) 보다도 프런트에서 일을 배우기를 희망했고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만족하면서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신 없는 일의 영역, 그리고 영어로 하는 일들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서 이렇게 여유 없이 들이닥치는 상황을 극복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처음에 일을 배웠던 일반 치과에서 너무 짧게 일해서 전체 시술 기간이 긴 임플란트의 전체 과정을 경험하지 못했고 그래서 아직도 시술과 보험청구용 코드 사이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고, 이 병원에서 처음 접하는 periodontist(치주과 의사)의 잇몸 관련 수술들 또한 보험 청구와 환자 상담에 공부할 부분이 아직도 있다. 제2 외국어로 일을 할 때는 모국어로 달성할 수 있는 업무력의 1.5배 이상을 장전하여야 두렵지 않게 일처리를 할 수 있는 점도 함께 작용했으리라. 설 아는 것을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설명하고 상담해야 하는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나는 몇 가지 득을 보기는 했다. 

아직도 프런트에서 주니어 직원 정도로 여겨지던 나의 업무력을 어느 정도 인정받았으리라 사료되는 점(확인된 바 없으므로 혼자 헛물켜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 바쁜 와중에도 몇 가지 새롭게 터득한 사실들, 오늘 이렇게 혼자 고생했으니 나중에 오프 신청할 때 당당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급하게 몰아쳤던 하루였지만 오늘 일이 뼈가 되고 살이 되기를 희망하며 오늘도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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