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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연희 Dec 02. 2022

영국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이 왔어요!

미국에서 영국 물건 직구하는 이 기쁨!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글의 제목은 다분히 낚시 성격이 내재되어 있다. 만약 다 읽고 나서 그렇게 느끼신 분이 있다면 사과의 말씀을 미리 드린다. 하지만 끝까지 읽어 보시면 절대로 의도된 낚시질이 아님을 아시게 될 것이다.


물건을 구입한 곳이 영국이고, 누군가에게 드릴 크리스마스 선물들이므로 나는, 영국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이 왔다고 얘기했지만, 혹시 영국에 있는 누군가가 나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국제우편으로 부쳐 왔다고 생각하신다면 아마도 속은 느낌이 드실 것이다. 


그런데 반전은, 나에게 설사 영국 사는 지인이 있어 크리스마스 선물을 부쳐왔어도 내가 직접 구매한 물건들을 받아보는 기쁨보다 못했으리라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 취향에 빠져 사는 인정머리 없는 나의 한계이다. 


몇 시간이고, 혹은 며칠이고 공을 들여 고르고 고른, 나의 마음에 쏙 드는 아이들이 배달되어 올 때면, 인터넷 쇼핑의 실물 오차 범위에 대한 후달림과 실물 영접에 대한 극강 설렘이 뒤섞여 DHL Express와 Fedex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계정 파고, 혹시나 사인받지 않고 그냥 문 앞에 놓고 가게 하는 옵션이 없나 샅샅이 훑어가면서 - 해외 배송이나, 고가의 물건들은 꼭 사인을 받으려고 하는데, 부재중이면 자기네 대리점으로 가져가 버리거나 삼사일 후에 다시 배송시도를 한다. 그 어느 쪽도 한번 놓치고 나면 아주 번거로워진다 - 최대한 배송을 내 상황에 맞게 조정하는 노력을 하며, 온갖 알림 창구를 다 등록해서 이메일과 문자로 시시각각의 배송 상황 업데이트를 '띵동', '띵동' 받아 놓는다. 그리고 대망의 순간, 초인종이 아름답게 "띠잉도옹" 하고 울릴 때 혹시라도 배달 아저씨가 그냥 가버릴까 봐 슬리퍼도 신지 않은 맨발로 마룻바닥을 숏트랙 자세로 미끄러지며 완주하여 삼초 미만 찍고 현관문에 도달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의 나라' 미국에 이십 년 넘게 살았어도 딱히 이 문화에 발맞추어 살지는 않았지만 올해 유독 감사하고 수고하신 분들께 작은 성의 표시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달러 가치가 상승하여 유로나 엔화 등등의 환율이 달러화를 버는 나에게 유리한 시점에서, 유로를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쇼핑은 지인들께 드릴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려고 영국 해로드 백화점(https://www.harrods.com/)에서 시작하였으나 동서고금의 쇼핑이 그러하듯이 내가 쓸 물건도 두어 개 추가로 담았다. 그래서 선물드릴 물건도 궁금했고 내가 쓸 물건도 궁금했던 것이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실측으로도 쓸모 있고 좋은 물건이기를 기대하는 마음은 같지만 내가 쓸 물건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감사의 표시로 드릴 물건은 몇 번 더 신중할 수밖에 없어서 이번 쇼핑은 평소보다 더 기다려졌던 것 같다. 또 한 가지 노심초사했던 이유는 내가 구입한 물건이 디테일 장식이 수려한 고가의 큰 사기그릇이어서 혹시 칩이라도 생길까 전전긍긍한 것도 있다.  


영국에서 도착한 크리스마스 선물 첫 번째 박스의 내용물


다행히도 지인분께 드릴 선물과 사기그릇이 따로 배송되어 왔고 며칠 시간차를 두고 나중에 배달 온 그릇들을 더 기다린 것은 비밀이 아니다. 


평소 아마존 강박이나 자라의 얄팍한 상자에 익숙해있던 나에게 해로드의 뚜껑 오픈형 박스 디자인은 신박하였다. '역시'를 연발하며 완충제들을 마구 집어던지자 우아하게 드러난 나의 티 틴캔들과 파우더 아몬드 선물 상자들... 위 그림의 맨 왼쪽에 리본 탑 원형 상자들이 바로 코코아 파우더를 살포시 입힌 아몬드들로서 구입 당시에 쿠폰도 있었지만 약간의 할인 중인 제품이라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개당 무려 1킬로그램짜리 아이인지라 박스에서 들어내는데 정말로 묵직하게 안겨온다. 



연말이라서 그런지 내가 구입하자마자 품절된 제품이라 원래 제품 페이지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적은 용량에 리본 장식은 없어도 내용물은 비슷한 제품의 사진을 가져왔다. 아래 제품의 세배 용량인데 부가세와 20% 할인쿠폰을 적용하고 나니 18불이라는 놀라운 가격에 득템. 두 개만 구입했다는 사실이 속이 쓰릴 정도. 크리스마스 선물드릴 두 분을 생각하며 두 개를 구입했는데 지금 한 개를 까서 먹고 싶은 생각이 매일마다 요동치는 것을 애써 참고 있다.  



배송상자 안에 가득 들어 있는 나머지 애들은 모두 티가 들어 있는 틴캔들이다. 어쩌다 제니 쿠키에 중독된 이후로 예쁜 틴캔의 노예가 된 나. 커피를 멀리한 후로 취향에 맞지는 않지만 티를 열심히 모으는 중인데 예쁜 틴캔에 들어 있는 티만 산다는 소문이 있다. 나중에 심플한 장식장을 사게 되면 나의 그릇과 함께 그동안 모아 온 틴캔들을 주르륵 전시하고 싶은 아주 작은 소망이 있다. 



비닐을 뜯고 보면 내가 좋아하는 Teal 칼라가 정말 심오하게 예쁘다. 태어나서 여태껏 이렇게 예쁜 칼라를 본 적이 없는 것처럼 하염없이 틴캔을 쓰다듬고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서로 다른 세 종류의 티들 중 이 아이만 네 개를 구입해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돌리려고 했는데 틴캔이 너무 예뻐서 역시 계획이 바뀌어 가고 있는 중이다. 

 


이 아이들도 예쁘고 값어치 있지만 나의 Teal을 당해낼 수는 없다. 티를 틴캔으로 감정하는 어처구니없는 나. 

전에 어딘가 다른 글에도 썼지만 나는 역시 티, ‘茶’ 와는 친해지기 힘든 것이, 분명히 커피의 카페인보다는 콩팥에 주는 부담이 적은 듯하면서도 마시고 나면 어딘가 불편하고, 마시면서 커피만 한 만족감도 쌓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미각이 뛰어나고 예민한 성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차는 어울리는 듯싶다. 입맛도 동네 에버리지에 음식 빨리 먹기 대회 대표선수인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다만, 이 티와 틴캔들은 손님 접대용이다. 식사 대접을 한 후에 커피와 티를 대접할 때 근사한 트레이에 몇몇 틴캔들과 차를 마시기 위한 도구들을 세팅해서 내어 놓으면 식탁도 세련되고 대접하는 느낌이 살아난다. 



틴캔들의 향연을 만끽하고 있을 때쯤,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나의 그릇들이 도착하였다. 급커브를 회전하는 숏트랙 선수처럼 한쪽으로 쏠린 엉거주춤한 자세로 슬라이딩하여 현관문에 착지, 문을 활짝 열자 나의 희열과 상반된 표정의 페덱스 아저씨가 짐짓 놀란 표정을 숨기며 - 한껏 상기되어 텔레토비처럼 웃고 있는 동양 아줌마가 문을 벌컥 열고 나와다 - 서명용 단말기를 재빨리 내민다. 


종이를 구겨 넣은 완충제 몇 개를 들어내고 나니 두 개의 박스가 나왔는데 순간, 마음이 다박다박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사이즈가 큰 사기그릇인데 포장을 이렇게 부실하게 했단 말인가. 나의 코페니들을...

본 박스를 백화점 측에서 오픈하지는 않았을 테니 본 박스 바깥에서 충분하게 완충 뽁뽁이를 몇 겹으로 싸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대충 넣은 종이 완충제가 전부였고 본 박스들도 외관이 매우 부실해 보였다. 조금이라도 칩이 났을까 두려운 마음에 하나하나 떨면서 뚜껑을 열었다.




다행히도 흠집 없이 무사히 도착한 나의 아이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절로 입에서 새어 나오는 감사인사 퍼레이드. 

많은 양의 요리를 내어 놓는 큰 접시나 볼을 플레터라고 하는데 35cm짜리 플레터 접시 하나와 - 사실은 두 개 정도는 사야 구색이 맞지만 자금의 압박이 있어 눈물을 머금고 하나를 뺐다 - 케이크 스탠드를 구입했다.



용도는 분명히 케이크 스탠드이지만 동파육이나 해물파전을 가지런하게 올려놓을 요량으로 구입했다. 발 달린 볼들을 컴포트라고 하는데, 식탁 위에 크고 작은 접시들이 수평을 이룰 때 우아하게 솟아오른 컴포트들은 샹들리에처럼 디테일과 입체감을 주는 귀함 아이템이다. 


12월에는 두 번 정도 손님 초대가 있을 것 같다. 새 그릇을 장만하였으니 정성스럽게 메뉴를 고민하고 그릇을 개시할 날을 설레며 기다릴 것이다. 한동안 허리띠를 졸라매야겠지만 딸에게 물려줄 그릇이라 생각하며 - 나 죽기 전에는 절대로 줄 수 없다 - 기쁨으로 견뎌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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