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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Apr 28. 2024

어서

어서


백지원



사람들은 살기 위해 기억을 왜곡시킨다. 진실된 기억으로는 사는데에 아주 많은 불편함을 주기 때문이다. 남에게 고백했을 때, 차인 기억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이건 그저 조크였다’ 라는 장난스러운 기억을 가지고 있듯이, 우리들은 절대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드라마에서나 다른 영화같은 경우에는 항상 뒤에 반전을 주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 등 뒤는 정말 따갑기만 하다. 아주 얼얼하게 한 대 맞은 느낌으로 말이다. 그 기억은 아주 오래 남는다. 그런 것들은 아름답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실된 기억은 좋은 기억이 아니다. 



사람들은 고민을 상담한다. 자신의 아픈 기억을 털어놓으면서 말이다. 국어 수행평가 중 하나였던 팟케스트. 그것은 반 학생 29명이 자신의 고민을 익명으로 하나씩 쓴 후에 그 포스티잇 중 한 가지를 골라서 고민사연을 듣고 대답해주는 라디오처럼 녹음하는 수행평가였다. 그 수행평가는 모둠으로 진행되었고, 우리 모둠이든 다른 모둠이든 다 학업에 관련된 고민을 뽑았다. 2학년이 된 시기의 고민은 외모 아니면 성적 빼고는 없었고, 나 또한 고등학교 진학에 관련하여 사연을 적었다. 내 약점 중 하나는 공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걱정이 있다. “이걸 틀리는 사람이 있어?” 라는 말이 학생들 사이에서 오가는 문제를 틀리는 사람으로써 그 사이에서는 “그니까”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공부를 못하지만 그럼에도 “나 이 문제 틀렸는데” 라고 말하는 학생도 당연하게 있다. 그런 학생의 주위에서는 너는 기대도 안 했어, 당연한 결과 아니야? 등의 의견으로 친구들이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시험 공부를 시험 3일 전에 했기 때문에 정말 진심이 담긴 “나 진짜 공부 안 했어” 의 말을 듣고 친구들은 “거짓말 하지마.. 내가 더 안 했다고. 너는 그래놓고 잘 보잖아.” 라는 반응을 보인다. 나는 정말 안 했는데도 주변인들의 기억은 나의 기억과 아주 다르다. 



이것은 마치 일본과 한국의 반응같다고 볼 수 있다. 6.25전쟁을 예로 들어보자면, 대한민국에서의 6.25전쟁은 일본인들의 나쁜 행위로 인해 벌어진 일이며, 죄 없는 시민들을 희생하게 만든 일본의 짓이라고 인식되어 있다. 하지만 일본의 입장에서의 6.25전쟁은, 대한민국의 이승만 대통령이 먼저 잠자는 일본의 코를 계속 간지럽히듯이 도발을 해 왔기 때문에 발생한 전쟁이라고 인식되어 있다. 이 말을 듣고서의 나는 일본이 다 잘못한 게 아니었나, 라는 생각에 깜짝 놀라게 되었다. 마치 유관순 열사를 지독하게 괴롭히고, 벌하게 만든 것이 일본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느낌이었다. 



이처럼 사람들의 기억은 누가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또 하나의 예시가 있다면 기억전달자의 책을 예로 들어볼 수 있다. 책 기억전달자의 마을은 아주 평화로운 것을 알 수 있다. 그 속에서 혼자 과거의 현실을 알게 된 조너스는 세상에 색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사실들을 절대로 남들에게 말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조너스가 사는 마을은 아주 간단명료하고, 단색보다 더 단색인, 검정색도 생각을 하게 만든다며 없애버릴 것 같이, 기억을 통제시키고, 사람들의 기억과 생각회로를 단순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일들은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세상속에서 만약 조너스가 “옛날에는 립스틱에 빨간색이라는 게 있었다?” 라고 말하게 된다면, 마을 주민들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라며 놀라고, 기억하려고 할까? 분명 우리에게 공룡이 살았던 시대가 있었다며 공룡 이름을 하나하나 알려주는 것처럼 들릴 것이다. 지금 현재에서는 볼 수도 없고, 애초에 본 적도 없는 생명체의 존재를 말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빨간색이 도대체 뭔데. 원래 없던 거 아니야?” 라고 기억하게 된다. 조너스에게는 분명 빨간색이 썰매에 묻어있는 강렬하고, 화려한 물체로 기억되겠지만, 마을 주민들에게는 수학보다 훨씬 현실성 없고, 쓸모도 없는 것으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너스는 그 누구에게도 고민상담을 할 수 없다. 자신은 소수에 불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장점이 소수라는 이유로 단점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고민상담을 할까? 왜 학교에는 또래상담부라는 동아리가 있으며, 고민사물함이 빨갛게 칠해져 있을까. 



나의 고민은 그 누구도 나를 좋아해주는 것 같지 않고,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것 같은 마음이 한 쪽 구석에서 불을 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진실인 것 보다도 진실이 아닌 것이 더 나에게 좋다. 항상 ‘내가 잘못한건가’ 하면서 자책하곤 한다. 그렇기에 기억을 왜곡시키는 것 외에는 나에게 치료법이 없었다. 



학교 화장실 앞에서 친구들과 한참을 시험 얘기로 떠들면서 나도 모르게 화장실 문 앞을 막고 있던 적이 있었다. 그 외의 학생들은 거울 앞에서 화장을 고치며 수다를 털어냈다. 그렇게 인식도 못하고 화장실의 분위기가 한참 달아오를 쯤에, 어떤 한 친구는  “2학년이 이러니까 1학년들이 못 들어오고 에스크에나 올리는거 아니야 .” 하면서 대놓고 말했다. 그 말을 하던 도중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뭔가 본능적으로 알았다. 내 얘기를 하는 건가 라고 말이다. 나에게 그러한 진실은 아주 불편하다. 지난 일이라도 계속 내 뇌에 늘러붙어서 기억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기억을 왜곡시킬 수 밖에 없다. 피해 의식이 어쩔 수 없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약점을 과연 사람들에게 말할 수는 없다. 나를 신뢰할 것이라는 확신조차 없으니까, 마음을 자물쇠를 걸어 잠글 수 밖에 없었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진실을 기억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 



내 친구 중 멘탈이 아주 약한 친구가 있다. 선배에게 조금의 철벽을 받았다는 이유로 울었다. 그냥 훌쩍훌쩍 우는 것도 아니라 대성통곡을 하며 울었다. 그 때 하필이면 우리가 3학년 심판을 보는 날이었기에 3학년 선배들이 주변에 깔려있었고, 그녀들은 우는 친구를 보면서 호들갑을 한 번씩 떨기 시작했다. 그녀는 기억을 왜곡하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라도 가장 좋은 선택일 것이다. 사랑이 그 친구의 큰 약점이었기 때문에 그 친구 또한 차라리 기억을 왜곡하는 편을 선택한 것 같았다. 그녀의 디엠 말투는 아주 고마웠다는 말투였지만, 별거 아니었다는 말투도 섞여들어있었다. 그렇게 서럽게 울어대던 모습이 사라져있었다. 



기억은 차라리 평생 진실을 떠올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언젠가 날아갔던 기억은 수증기 사이로 껴서 하늘로 올라가 큰 구름이 되어서 비를 내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수증기보다 더한 비를 맞는 것은 훨씬 더 기분이 좋지 않다. 촉촉한 수증기에서, 따갑게 내리는 비로 바뀌면 버티기 버겁다. 그러니 어서 비가 내리지 않는 곳으로 떠나야 한다. 어서 피해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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