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영
벨기에의 前 축구 선수 에덴 아자르는 1991년 1월 7일 벨기에의 왈롱에서 태어났다. 축구 선수 부모님 밑에서 자라 언제나 축구를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아자르는 로얄 스타드 브라이노 라는 작은 클럽의 유스팀에서 유소년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투비제 유스팀을 거쳐서 프랑스의 명문 유스팀인 릴에 도착해 2007년, 16세의 나이로 그곳에서 첫 프로 데뷔를 했다. 리그앙(프랑스 리그) 올해의 영 플레이어 상을 2번 수상하고 올해의 팀 선정, 역대 최연소 MVP를 들고 아자르는 첼시 FC로 이적해 그곳에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최고의 드리블러 아자르로 거듭나게 된다. 비롯 본인의 나태와 식습관 문제로 레알 마드리드 CF로 이적해 급격한 몰락을 겪은 선수기도 하지만, 아자르가 첼시에 있었던 전성기는, 메시를 연상케 하는 드리블과 깔끔한 마무리,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나 상대 수비의 예상을 깨버리는 ‘천재성’으로 프리미어 리그 최고의 크랙이 된 선수가 바로 에덴 아자르였고, GOAT 논쟁이나 신계에 들어오기에는 조금 하자가 있지만 천재성만 놓고 본다면 여러 쟁쟁한 발롱도르 수상자 위라고도 할 수 있는 선수가 바로 아자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자르와 같은 천재는 신이 주시는 재능이라서, 그러한 영감과 직관, 창조적 상상력은 한 세대의 몇 명에게만 주어지는 특정한 능력인 것 같다. 이 밴드의 멤버 중 누군가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제시문을 읽어보고 관련된 책과 경험, 사례를 한번 생각해보는 과정 없이 바로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날아다니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까놓고 말해 없을 확률이 존재할 확률보다 몇 십 몇 백배는 더 높다. 이것이 바로 기본적이며 자격 있는 천재의 정의다. 우리와 같은 일반인들이 아무리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노력을 한다고 해서 천재들을 넘을 수는 없다. 이러한 점은 단순히 천재성을 가진 이들이 교육을 받아 이를 꽃 피우는 수준을 넘어, 교육의 부재 상황에서도 개인의 창의성으로 새로운 능력을 창조해낸다는 점에서 천재성이라는 능력은 교육이라는 사회적 시스템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며 교육은 시대를 위해 필요한 인재를 양성해내지만, 천재성은 그러한 시대를 만들어내는 밑거름이 된다는 주장이 바로 핵심 내용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나는 언제나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뚫기 위해서 유튜브에서 웨인 루니의 드리블을 보면서 나의 무거운 몸무게를 이용해 드리블 할 생각을 하고 머릿 속으로 언제나 운동장의 상상도를 그려놓고 그 결과 수비수를 뚫고 멋진 골을 만들어내지만, 천재들은 내가 유튜브를 보고 절구통 드리블을 배울 동안 새로운 드리블을 창조해낸다는 것이다. 이처럼 천재성이란 요소는 단순히 개인의 기량과 그를 꽃피워줄 교육, 시대의 필요한 인재를 양성한다는 수준을 넘어서 그 시대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할만큼 중요하다는 것이 바로 핵심이다.
반면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반론은 천재성을 가진 에디슨의 사례를 통해 시작한다. 에디슨은 학교에 입학하였을 당시 지능 미달로 퇴학당했을 정도로 당시 시대가 요구하였던 기본적인 지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에디슨은 추리하는 능력과 문제해결력이 탁월했으므로 당시 시대가 요구하였던 기준에 미달하였을지라도 우리가 기억하는 위대한 발명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에디슨이 만든 새로운 시대보다는 에디슨이 이러한 천재성의 꽃을 피울 수 있게 만들어준 에디슨의 어머니의 교육 방법에 대해 초점을 두고 있다. 학교에서 퇴학당한 에디슨을 그의 어머니는 따뜻하게 품어주었고 그 결과 에디슨이 자신의 천재성을 더욱 길러 이 같은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이 바로 핵심이며 위의 주장과 비교되게 천재성을 가진 에디슨보다는 이를 잘 키워낸 어머니에 집중한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아자르를 한국인이라고 가정하면 된다. 한국에서 태어난 소년 아자르는 부모님이 모두 축구선수로 황금 유전자를 물려받았고 엄청난 재능을 보유한 선수다. 하지만 아자르는 드리블 후 패스, 공격 교범에 맞는 움직임을 추구하는 한국 축구 아카데미에서 방출을 당하게 되었지만, 아자르의 재능을 알아본 아자르의 어머니가 아자르를 잘 교육시켜서 아자르의 천재성을 꽃피우게 해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선수로 만들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단순히 천재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천재성을 뒷받침 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천재성과 교육의 우선순위 중 천재성이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설 <1984>를 읽어보면 당 내 고위 간부들 중 머리가 비상한 몇몇이 대중을 통제하기 위한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연구를 가속화해 언어를 통해 대중의 사고력을 죽이고 또 세뇌를 시키는 작업을 반복해 궁극적으로 당의 통치력을 확립시킨다는 계획을 세운다. 이러한 계획을 바탕으로 신어는 만들어졌고 대중은 늘 틀어주는 증오 영상과 당의 선전으로 신어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저항을 꿈구던 조직들 역시 모두 소탕당하게 되면서 당의 지배력은 더욱 막강해진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천재성이 디스토피아던지, 유토피아던지 반드시 쓰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사회에게 언어를 없앰으로서 대중의 사고력을 저하시킬 수 있고 이를 통해 당의 지배력을 공고히 할 수 있다라는 학술자료를 제작하고 발포한 한 천재 내부당원이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과연 이 내부당원을 처음에 지지해 준 간부들이 몇명이나 될까? 분명 처음에는 몇 안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부의 영향력 있는 천재는 이 당원의 안건을 지지해주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당은 대중 선동 방면에서 성공을 거두고 당의 지배력에 대한 최후의 평정이 끝나면서 세상은 완벽한 빅 브라더의 것이 되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신어를 만드는 훌륭한 교육 코스를 밟은 사람들은 반발심을 품으면 죽을 수 있고 곧 완벽한 교육기관에서 만들어 온 새로운 대체품이 그 자리를 체울 것이다. 언제든지 대체품으로 변환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천재는 다르다. 천재를 죽이면 그 천재를 대신할 다른 천재는 이 세상에 없으므로 대체품 없는 천재는 결과적으로 새 시대를 만드는 것이다. 조금 과장되긴 했지만 나는 이러한 해석을 통해 천재는 시대를 만들고 교육은 그 시대에 맞는 부품을 생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대가 있어야 공장이 있고, 공장은 시대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다. 나는 그렇기에 천재성이라는 것은 교육이 넘볼 수 없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지금 현실을 보면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 천재들을 찾아보기는 매우 힘든 것 같다. 우리는 늘 해외의 천재들이 만드는 시대에 살아왔다. 스티브 잡스라는 천재가 개발한 스마트폰의 시대에 우리는 그저 묵묵히 따라들어왔고 아마 앞으로 AI시대에도 우리는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천재 엔지니어들이 만든 세상에서 하나의 교육을 잘 받고 잘 다듬어진 부품이 되면서 살아갈 것이다. 조금 헛된 희망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넘볼 수 없는 야성을 가진 천재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절구통 드리블과 아자르의 드리블 영상을 보면서 내가 이 둘을 내 신체로 섞는 방법을 생각할 때 새로운 드리블을 창조하는 그런 사람이, 남들이 기존의 시대에서 자신의 개인적 성공을 생각할 때 새로운 시대에 대한 구상을 끝내고 새로운 시대의 커튼을 열어젖힐 그런 천재가 말이다. 우리나라의 축구선수들을 보면 박지성, 손흥민과 같이 전체적으로 바른 이미지고 팀에 언제나 기여하는 선수들이 많다. 좋게 말하면 이타적인 선수들이 많다는 것이지만 어떻게 보면 이는 천재의 부재라고도 할 수 있다. 넘볼 수 없는 야성. 다룰 수 없는 야성. 이타적이고 잘 다듬어진 부품은 언제나 공장에서 새롭게 만들 수 있지만, 그 공장을 설계하는 사람은 새로 생산할 수 없다. 우리도 생산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부품에만 머물러 있을 순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