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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Nov 07. 2024

-딜리트: 쓸모 없는 것을 지우다-

-딜리트: 쓸모 없는 것을 지우다-


박재영


학기 초, 2학년으로 올라가던 시절 전학 와 6학년,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머물렀던 갈매를 떠나 학교에서 주관하는 대회나 인창도서관 체험학습이 있을 때만 방문하던 동네, 인창동으로 이사를 왔다. 인창동인지 교문동인지, 그 사이에 있는 교문사거리의 아파트로 이사를 왔고, 아파트가 리모델링 되는 동안 주변 오피스텔에 잠깐 살기도 했다. 학기가 시작하고 21일이었나. 그 동안 오피스텔에 살았던 것 같다. 차츰 과거 살던 동네와의 인연도 정리하고 새 학기를 준비하던 시점, 나는 한가지 불안에 잠겼다. 지난 초겨울 그랬던 것처럼 혼자가 될까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내 멍청한 뇌로 나름대로 ‘찐따’ 가 되지 않을 방법을 열심히 생각했다. 그 결과, 내 머리에서 나온 방법은 바로 공통의 관심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공통의 관심사를 한참 생각해본 결과, 가장 널리 통하고 모르는 사람과도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깃거리는 바로 축구라는 것이었다. 내 나이 또래의 대부분은 축구를 많이 보기 때문에 처음 보는 아이와도 ‘축구 좋아해?’ 한마디면 같이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부터 열심히 축구를 보기 시작했다. 원래 좋아하던 프라모델 만들기나 밀리터리 서적 읽기따위는 전부 갖다 치우고, 새벽에 열리는 축구 때문에 내 생채리듬을 뜯어고쳐서라도 축구를 보았다.


개학 날, 삼육 재단에서 운영하는 우리 학교는 ‘벧엘관’ 이라는 소강당에서 신입생 환영회 겸 입학식을 열었다. 입학식에서 선생님은 번호순으로 앉을 것을 처음 우리에게 요구했고, 7반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가게 된 자리에는 옆 자리의 친구들과, 뒷자리에 친구들이 먼저 와서 앉아있었다. 시작하자마자 딱히 말을 걸 용기는 나에게 없었고, 옆 자리나 뒷자리에 앉은 애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주머니를 뒤져서 작은 사탕이나 마이쮸 같은 것을 하나 주면서 말을 걸었고, “축구 좋아해?”라는 말은 인터넷이나 전 친구들의 조언처럼 효력을 발휘해 나는 개학첫날부터 ‘찐따’ 가 되는 불상사를 만들지 않고 안정적으로 친구관계를 구축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룹은 개학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고, 수행평가가 점수화되어 성적에 기입되고 지필평가 성적이 그대로 성적표에 기입되기 때문에 예전처럼 놀지는 못하지만, 자유학기제 때는 정말 재미있게 놀았다.


학기가 시작되고 2주 정도 흐른 후, 담임선생님은 우리에게 자유학기제 과목을 선택하라고 하셨다. 나와 내 친구 그룹은 당연히 자유 학기 스포츠 부문에서 ‘축구’ 과목을 선택했고 1학기 내내 팀을 나눠서 축구만 하게 되었다. 자유학기에서 축구 항목을 맡은 선생님은 체육 선생님인 우리 담임선생님이었고 선생님은 우리에게 경기를 할지 아니면 기술을 배울지 선택하라고 하셨고 우리는 만장일치로 경기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때까지는 좋아하는 팀이 맨유라는 것을 알았고 단순히 클럽의 역사, 선수들의 역사 같은 것을 알지 못하고 단순히 보기만 하던 ‘축알못’ 시절이었기 때문에 가장 지원을 안했던 센터 미드필더 자리를 내가 자원해서 맏게 되었다. 그리고 한 분기 내내 경기만 했다. 3월부터 더워지기 시작했던 6월까지. 딱 좋은 시기였다. 적당히 추울 때 시작해서 적당히 끝난, 그것이 내 가장 아름다웠던 자유학기제였다. 자유학기제가 있었던 시절 오전 3교시만 교과과목을 수행하면 나머지 시간은 모두 자유학기제 시간이어서, 2교시는 영어 관련 학습을 진행한다고 했지만 태블릿으로 친구들과 몰래 삼삼오오 모여서 챔피언스 리그 하이라이트를 시청했고, 나머지 2교시는 운동장에 나가서 아킬레스건이 다쳐도 내내 뛰어다니며 축구를 하며 보냈던 것이 나의 1학기 기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만 같았다.


사실 자유학기 기간동안 무언가 학습적인 일을 하거나 나의 창의성에 도움이 되는 학습을 하진 않은 것 같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기간동안에는 태블릿으로 축구를 보거나 나가서 축구를 하거나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는 등, 축구에 빠져 살고 주말에는 무리와 몰려다니며 영화를 보고 햄버거를 먹고 축구를 하는, 속칭 ‘완전히 풀린’ 생활을 보냈던 것 같다. 최근 자유학기제가 완전히 폐지되는 수준을 교육부에서 논의하고 있다. 또 작년에 중학교를 보냈던 선배들은 1학년 내내 시험을 보지 않는 ‘자유학년제’ 기간을 보냈지만 우리는 그 자유학기제 기간이 한 학기로 줄어들었고, 후배들은 아예 그런 것 없이 1학기 때부터 지필 평가 및 어려운 수행평가를 보아야 한다. 내가 위에서 말한 모든 것이 바로 교육부에서 자유학기제에 관한 폐지 논의를 밟고 있는 첫 번째 이유다. 바로 대한민국의 수치화된 입시 환경에서, 중학교 1학기 또는 한 학년을 마음 편하게 놀 수 있다고 아이들에게 알리는 것은 앞으로 남은 3년간의 중학교 생활을 아이들이 공부에 매진하는 면학 분위기 대신 편하게 웃고, 놀고, 공부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할 수 있다는 학부모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커짐과 동시에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의 성적이 과거 자유학년제 및 학기제 미 시행 시기보다 현저히 하락했기 때문에 이러한 폐지의 논의에 관한 목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다. 또 이러한 자유학기제가 비판받고 폐지에 관한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두 번 째 이유는 바로 ‘객관성’ 에 있다. 자유학기제를 시행할 때 학생들의 성적을 파악하는 지표는 대부분 수행평가고 게다가 그 수행평가 역시 점수로 객관화 되어 성적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들 별로 학생의 세부적 특기사항 란에 수기로 작성해 학생의 세부사항 및 수행에 관한 성취 여부를 쓰는 것이기 때문에 학부모 및 현장의 교사들에게 과거보다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러한 객관화 역시 대한민국의 입시와 연결된다. 대한민국의 입시 체제는 중학교 때부터 생기부를 꾸준히 챙기면서 수행평가와 지필평가,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아야 하고 고입을 위해서는 수능과 같은 시험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히 ‘세부적 특기사항’ 과 같은 교사와의 항목에서 점수를 잘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교사와의 관계가 좋지 못하거나 학생이 그 수행평가를 정상적으로 수행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지필평가라는 세컨드 볼과 같은 기회는 없다. 그 학생은 그저 그런 세특을 받아야 하고 이는 그 학생에 관한 객관적인 평가가 아니라 잘못된 평가가 된다. 이는 입시에 매우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며, 그렇기 때문에 이를 시정하고 자유학기제 대신 다른 방법을 강구할 것을 요구하는 학부모들의 아우성이 점차 커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교사에 대한 불신과 자유학기제에 대한 불신은 궁극적으로 입시 문제로 귀결된다. 고교 입시와 대학 입시가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자유학기제는 학부모들에게 ‘잠시 스쳐가는 경험’이 아닌, 중학생 초기의 공부 습관을 잡기 위한 중요한 시기에 방해가 된다고 인식된다.


반면, 자유학기제 폐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는 편 역시 존재한다. 나는 아까 위에서 언급했듯이 자유학기제에서 배운 것은 딱히 없고, 어떻게 하면 태블릿을 더 몰래 비교육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교육청 와이파이라서 ‘비교육성 사이트’ 차단 벽을 어떻게 뚫는지와 같은 방법만 컴퓨터를 잘하는 친구들과 더욱 발전시켜 왔고 축구하고, 축구를 보고, 주말 및 점심시간에는 또 축구를 하고 영화를 보는 생활을 해왔다고 했지만 나는 그 속에서 아주 중요한 가치를 하나 깨닫았다. 바로 사람을 대하는 기술이다. 자유학기제에는 교과보충 자유 프로그렘도 있었는데 나는 다니던 수학학원 까지 끊고 축구를 신청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삼육중 출신 고등학교 선배들과 경기를 하기도 하고 2~3학년 선배님들과 같이 팀을 맞춰서 경기하기도 했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나는 선배들과 제법 괜찮은 관계를 맺은 것 같다. 그때부터 미드필더로 뛰면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공격을 봉쇄하고 골키퍼의 골킥을 받아 전방 공격수 선배들에게 볼을 배급하고 경기를 순환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선배님들과 대화할 기회가 늘어났고, 자연스레 선배님들과 사적으로 어울릴 시간도 많아지면서 학교 생활의 방법이나 수행 준비, 이런 비법들을 많이, 일종의 ‘전수’ 받았다.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은 안타깝게도 진정한 교육의 방향성을 잡고 인간 존엄성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고 전체적으로 학생 개인의 지적 특기를 최대한으로 발휘시키도록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문제를 많이 빠르게 짧은 시간 안에 푸는 문제 해결력과 ‘변별력’을 기른다는 명목으로 어려운 문제를 단시간에 내게 하는 ‘킬러 문항’을 출제시키는 교육이다. 이러한 교육 상황은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도 잘 묘사되어 있다. 주인공 지우가 수학을 어려워하자 선생님은 전학을 권유하는 것부터 지우의 개별적 특기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대입에 필요한 학문, 나중에 한번도 돌아보지 않을 학문에 집중하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 교육의 현 주소인 것을 영화는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어쩌면 한번 배우고 잊어버릴 거를 한 학기 먼저 배우기 시작하는 것보다는, 수행평가를 잘 보는 방법, 선생님들 개인의 취향과 성격, 그리고 조심해야 될 선생님들 과 같은 학교의 소중한 정보를 배우고 앞으로 같은 학교를 쓰게 될 선배들과도 좋은 관계를 쌓을 수 있는 자유학기제 프로그렘이 이러한 입시 위주의 교육을 조기 시작하는 것보다 더 차선책이 아닐까?


내가 만약 대한민국의 교육부 장관이라면 나는 자유학기프로그렘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유지시킬 것이다. 소설 <딜리트>에서는 대한민국 고등학교에서도 얼마나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개인의 정신적 피해와 사회적 배려자에 대한 차별과 교육 시스템의 문제 등을 지적하면서, 작가의 의도인 경쟁적 교육 시스템의 폐해를 잘 들어내고 있다. 영단어 ‘딜리트’의 사전적 의미는 ‘지우다’ 라는 단어다. 나는 어쩌면 진정한 교육과는 거리가 멀고, 사회적 배려자를 차별하고,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는 진흙탕 싸움에 아무런 시험도 수행도 없는 초등학교에서 갓 벗어난 어린햇병아리 중1 들에게 한 학기, 1년 빠르게 경험하게 하는 것이 그다지 유익하다고 바라보지는 않는다. 그 때 배우는 1차방정식은 중2때 배우는 2차방정식, 중3~고1 때 배우는 3차방정식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있고 이후 고등 수학 수원이나 수투때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 이후에는 딱히 중요하지 않다. 최고차항의 함수가 2인 다항함수를 과연 사회에 진출해서 쓰게 되는 날이 올까. 나는 나사나 이러한 공학 기업에 취직할 것도 아닌데. 그것보다 선생님을 대하는 방법, 선배를 대하는 방법, 학교의 꿀팁과 같은 여러 중요한 정보를 얻고 여러 사람과 두루 친해질 수 있는 경험을 한 학기 더해서 중학교 생활에 대한, 그리고 더 나아가 고등학교 생활과도 연결되는 중학교 1학년 생활을 일종의 ‘오리엔테이션’ 하면서 보내게 해주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선택지 아닐까? 솔직히 조금 오글거리기도 하지만, 나는 중학교 1학년만이라도 자유학년제를 보내게 해서, 조금이라도 더 늦게 이러한 경쟁의 진흙탕 속에 빠지게 했으면 좋겠다. 시험을 1년 정도 딜리트하고, 그 기간을 일종의 ‘적응기간’ 과 중학교의 남은 2년을 보낼 일종의 ‘준비기간’ 으로 삼기 위해서, 어쩌면 우리는 1년을 딜리트하는 것이 제일 최선의 선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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