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하
''너희는 아름답지만 텅 비어 있어.'' 어린 왕자가 말을 이었다. ''너희를 위해 생명을 바칠 사람이 없으니까. 물론 지나가는 행인에겐 내 장미가 너희와 똑같아 보이겠지. 그렇지만 나에겐 내 장미 한 송이가 너희 전부보자 훨씬 소중해. 왜냐하면 내가 매일 같이 물을 주었거든. 유리덮개를 씌워주고 바람막이로 지켜주고, 그 꽃을 위해서 송충이들을 잡아주었거든. 불평을 들어주고 허영을 부려도 참아주고, 가끔은 아무 말도 안 하는 걸 참아준 것도 그 꽃을 위해서였어. 왜냐하면 내 장미니까.'' ....''네 장미가 중요한 존재가 된 건, 네가 장미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야.''-어린 왕자
현실적인 삶에서의 연애는 그리 로맨틱하지가 않다. 드라마와 만화에서 보이던 것처럼 운명의 상대를 만나서 장시간으로 연애를 하지도 않고, 사랑이란 감정 보다는 호감에 가까운 느낌으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면서 경험 치와 스킬을 쌓아가기 바쁘다. 같이 있을 때 편한 분위기를 제공하는 데 있어 최상위 급이 되기 위해 평판을 쌓아가고, 제약적인 모습만을 보이며 그저 그런 사이, 그냥 예쁜 사람과 잘생긴 사람의 조합이 잘 어울린다고만 보이도록 꾸민다. 드라마에서의 사랑이 연기라면 그 모습을 위장해보이는 현실도 한 편의 드라마처럼 착실하게 진행되는 영화관, 사진, 인형뽑기와 같은 스케줄로 구성된 두 평판좋은 배우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는 사랑이란 단어에 있어 그리 시간을 쏟아붇지 않는다.
''난 남자아이 열두 명을 준대도 너와 바꾸지 않을 거야, 앤, 알겠니? 남자아이 열두 명 말이다. 우리 딸.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우리 앤.'' -빨간 머리 앤
소중함은 길들여짐에서 부터 오곤 한다. 우리는 우리와 긴 시간을 보낸 무언가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때 비로소 그것의 죽음을 받아드리고 어린아이처럼 울곤 한다. 잃어버린 소중한 시간을 의미있게 꽉 채우고 싶어서 부리는 떼는 어느새 자신에게 향하는 후회스러운 자괴감이 되어 날아오고, 그 비수를 맞은 기억 속에서는 헛되게 보냈던 것 같은 나날들만이 스쳐지나가 무한의 아픔을 선사한다. 매일매일 맛있는 거, 즐거운 거, 노는 거.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들은 모두 미래를 위해서라는 단어 한 마디에 우리가 마치 불멸하는 존재라도 되는 냥 늘 양보되곤 한다. 왜 그랬을까. 도대체 왜 그랬을까...? 슬피 흐느끼며 바라본 차가워진 몸은 감정이 아주 착실히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어 그것에 얼마나 길들여졌는지를 새삼스럽게 알려주곤 한다.
코로나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엄청난 사람들이 사살되었다. 전두환 시대에는 광주 사람들이 거의 몰살당했다. 하지만 슬프지가 않는 건 무엇일까? 사람은 실질적으로 재앙이 시뮬레이션이 아닌 현실로 다가올때만 불안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는 불치병에 걸릴까봐 무서워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자동차 사고로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지만 여전히 자동차를 탄다. 이렇듯 공감은 시간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우리는 길들여짐과 경험이라는 주제 아래서 생각의 그물을 뻗칠 수 있고, 그렇지 않는 시뮬레이션에서는 남들이 경험했던 그 상황과 그걸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걸 암기해 그저 외우기만을 한다. 코로나로 사망자가 하루 몇 만명이 넘어도 우리에게 드는 생각은 주입된 걱정과 도덕적인 위로밖에 없다.
요즘 사람들은 공감이 참 줄었다고 한다. 친구가 아프고 힘들어서 학교를 못 나온다고 해도, 그 시기가 한 달이 지난다 해도, 더 이상은 그 친구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 아닌 빨리 내 편을 새로 만들어 그 친구 따위는 잊어버리는 게 중요한 게 되어버렸다. 관용과 타협보다는 이익을 챙기는 사회에서는 현재의 상황 따위는 더 이상 슬프지 않다. 그저 빠르게 극복해나가는 것이 답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도 진정한 친구가 필요하기는 하다. 공동체 속에서 끈임없이 가리고 다니던 나약한 자신의 모습을, 상처를 함께 나누어가질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난 인생이 패스트푸드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그저 빨리빨리 움직이고 남은 부스러기는 탈탈 털어버리면 되는 인생. 하지만 떨어진 부스러기가 발에 밟혀 파인 상처를 낼 수 있을 수도 있다...
''네모토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거야?''
''그야 당연히 너니까. 히구치니까.....''
순간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이 들었다. -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