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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Dec 26. 2024

 : 사랑할 줄 모르는 바보.

<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 조가람



제목 : 사랑할 줄 모르는 바보.


“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야 깨닫는다. 자신이 다시는 돌아 갈 수 없는 아름다운 나날을 보내고 있음을. 만일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다면 당시는 그에게 무슨 말을 전하겠는가. ”


세상을 떠나게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다면? 유령 열차를 타고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한번 더 만날 수 있다면 당신을 만날 수 있겠는가?


개인적인 입장으로, 나는 만나고 싶지 않다. 왜일까? 마지막이 불행해서 였을까? 날 자신의 도구로 이용한 목적을 깨달아서 일까? 사실 전부 맞다. 미운 감정으로 얼굴을 보기 싫은 것도 맞다. 하지만, 그런 미운 감정으로 싹피어난 그 이유들 뒤에 근본적인 이유로는 나에게 사랑을 알려준 그대에게 나보다 더욱 좋은 여자를 만나기 위한 기회를 주고픈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내 전남자친구는 너무 나빴다. 걔만 생각하면 찾아가서 떼리고 싶고, 지금 그 애의 여자친구의 뺨을 떼리고 싶을 만큼 정말 화가 나는 마지막을 안겨주었던 아이였다. 하지만, 그 아이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아무생각 없이 첫 말에서는 아무런 책임감과 자신감 없이 만날래 라고 말할 나지만, 이번만큼은 아니 라고 답하고 싶다. 보자마자 손부터 나갈 것 같아서? 보자마자 그 슬프지만 아름다웠던 추억에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지금의 나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 너인지 상상이 가지 않아서 일까. 너무나 많은 이유가 존재하지만, 나보다 더 좋은 여자는 어딜가나 존재하고, 나보다 더욱 좋을 사람은 아마 내 가장 가까운 친구일 정도로 그 애 옆에 많이 놓여져 있을 것이다. 그런 아이를 위해 내가 그런 기회를 주려고 이런 미친 짓을 하냐고? 왜일까. 정확히는 나도 모르겠다. 그저 그 아이의 눈을 보면 미안해질 것만 같다. 내가 미안해서. 내가 나쁜 짓 한거 같아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그 열차에 그 아이를 마주치고 싶진 않다. 내 마지막을 그 애와 맞이 하고 싶지 않는 것도 있겠지만, 그가 진정 사랑하던 사람은 내가 아니였기 때문이다.


“ 사랑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닌,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다. ” - 앙트완 드 생텍쥐페리


처음에는 이 글귀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서로 마주보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같은 곳을 보는게 사랑이라고? 대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처음에는 기가 찬 표정으로 이게 무슨 말이야 라고 생각하면 휙휙 넘기던 말이였지만, 사랑을 필요로 하던 나에게, 이번 만큼은 절대로 사랑없이 학기를 끝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누가 즉흥적 아니랄까봐, 서로 마주보고 사랑을 느끼라던 한 명언이 나의 머릿속에서 갑작스럽게 삭제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좋아, 지금부터는 이게 나의 사랑 좌우명이다! 라고 외친 나의 모습이 조금은 후회가 되는 듯 했다. 무슨 뜻인지도 몰랐던 구절을 좌우명으로 삼았으니, 얼마나 슬픈 뜻인 줄 모르고 그런 바보같은 짓을 저질렀을까 라고 안타까운 마음이 갑자기 젖어들었다.


너와 내가 서로를 바라본다는 그것이야 말로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였다. 서로를 마주보고,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며, 서로의 의견을 받아드리고 때로는 어느 한 쪽이 양보하며 서로의 사랑의 무게를 균형 맞추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닌가 싶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것이 내가 받아드렸던 근본적인 사랑의 정의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여기서 더 앞서나가게 된 우리 사이는 어느새 서로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허공을 응시 한채, 한쪽은 땅을 응시한채. 사랑이 식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나는 매달렸다. 제발 나를 떠나지 마 라고 말했다. 구슬 같은 눈물이 통하지 않았던 그의 눈동자에 생기있게 비춰진 것은 다름아닌 그의 전 애인이였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때에는 그가 이미 나를 떠난 상태였다. 어느 한쪽이 놓으면 끝나는 관계였다. 그 놓아야하는 쪽이 바로 나의 쪽이였다. 평생 나만을 사랑하겠다며. 우리 다신 만나지 말자. 다신 만나지 말자는 말과 함께, 나는 그와 타고 있던 열차에서 내렸다. 그의 옆에는 다른 아이가 앉아있었다. 눈물만이 쏟아지던 나의 최근 사랑은 나의 그 글귀의 의미를 놓고 떠나버렸다. 그 의미는 나도 알고 있던 의미였다. “ 지금의 나에게 너보다 더 좋은 사람은 쟤야. ” 그 쟤가 내가 될 수는 없었을까. 나는 단지 그가 외롭고 무섭지 않도록 옆에서 잠시 토닥여주는 진눈깨비에 불과했다. 하긴 누가 진눈깨비를 사랑하겠는가. 초가을의 내리던 진눈깨비의 사랑은 참으로 찬란했다. 난 내가 그에게 진눈깨비 였다는 사실도 모른채 아픈 이별을 맞이했다. 절대 지워질 수 없는 사랑의 상처. 그리고 내가 못났다는 나를 향한 죄책감과 비난. 다시 돌아오길 바랬던 너는 상처만 두고 떠나가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쓰레기를 주운 거지 뭐, 하고 말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땐 정말 죽을듯이 아프던 상처가 지금은 독감주사를 맞고 꾹 누른 듯이, 손가락을 떼기만 하면 아픔이 그치는 가벼운 상처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작은 상처도 용납할 수 없던 그 당시에 나는, 그가 모르는 그를 향한 증오를 품고 사랑을 시작했지만, 왜인지 그때처럼 진심인 사랑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왜일까. 단순히 너가 아니어서? 그것도 아니면.. 너에게 전부를 주고 다음 이에게 줄 사랑이 없어서 일까. 난 왜 또 이런 사랑을 너가 주는 것으로 채우려고 했을까. 나에게 사랑의 기준이 되어버린, 나에게 첫사랑이 되어버린 그는 나의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을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비열한 꾀를 남기고 갔다. 자기 아니면 받아먹지 못하는 사랑이라는 꾀. 그리고 그 사랑의 꾀는 너의 얼굴. 너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던 나에게 너는 다시는 남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도록 나의 눈에 안대를 묶고 도망갔다.


그러니까, 우리는 마지막까지 독이였으니까. 다신 아프지 말자는 의미로 만나지 말자. 나보다 더 좋은 아이가 생겼으니, 서로 무시하면서 살자. 우리는 잠깐의 만남이자 사랑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금방 잊자. 너는 되겠지만 나는 불가능한 숙제야. 그러니 여기서 더 꼬이기 싫으니, 너가 죽어서도 내가 죽어서도 우리는 절대로 만나지 말자. 우리가 서로에게 그만 상처 입히는, 우리가 서로에게 아픔으로 지워지기 위해 유령 열차에서 너의 얼굴이 보인다면 바로 내릴게. 다시 재회한다면 나는 너를 히구치와 네모토의 사랑처럼 너를 격렬히 사랑해줄 자신과 용기가 없으니까. 너로부터 도망치기 바쁜 나는 비겁이라는 포대에 숨어 너에게 추하게 보여지기를 선택했다. 나에게 사랑을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라는 걸 알려줘서 고마워, 그리고 그 방향 끝에 향하는 시선이 우리의 미래이자, 우리에게 최고의 선택이라는 걸 알려줘서 고마워. 너의 얼굴을 보는 것이 사랑이 아니란 걸 알려줘서 고마워. 마냥 고마운 게 많은 나는, 너를 피하기 바쁜 도망자. 사랑으로부터 상처 받은 약자. 또 사랑하기 버겁지만, 사랑의 목매여 새로운 만남을 향해 떠나는 여행자. 그런 너가 다시 만나기 싫다고 말하는 나지만, 또 너가 꿈에서 나를 반기는 꿈을 꾸며 눈물을 흘리는 나는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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