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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작

by 제이티 Mar 23. 2025

-정서윤


우리가 떠나왔던 시간 속에서 내가 말했던 수많은 마디들과 선택들, 그리고 그 안에서 잔혹하게 그립던 친구들과 너무나 아팠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일률적인 상황을 지나서 나는 평행세계의 우주로 나아가고 있었고, 그저 획일화된 나의 자아들과 함께 이성의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던 것이 전부였지, 난 새롭게 나의 미래를 포장하고 있었다. 따뜻한 열기에 몸을 신속히 식혀가며 하루하루 보고 싶은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이 나의 남은 심심함의 무게를 대체할 수 있던 연약한 습관이었다. 그렇다, 난 언제부턴가 누군가를 마음에 두기도 하였고, 언제부턴가 누군가를 포기하기도 하면서 바쁘게 지내었다. 언제부턴가 불쑥 내 습관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혹시나 나의 이런 맘이 부담일까 주저했던 적도 많았다. 사실 힘겹게 하는 사랑표현이 그렇게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고, 그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쓰는 말투라 더욱 거부감이 느껴졌던 것은 왜일까. 내 하루에 스며든 그 사람들에게 내 모든 몽환기를 빌려 교감을 하는 것이 나의 가장 즐거운 일과였다.


사실 그들에게는 내 모든 것을 주는 것도 생각해 보았다. 그 한 순간의 웃음이 아무 이유 없이 행복해졌었고, 서툴렀었던 내 못난 표현에도 따뜻하게 안아주었던 친구들이 사실 좀 그리웠다. 그래서 한심하게 친구들 반 앞에도 찾아가보았고, 누구보다 널 위해 많이 노력도 해 보았다. 뒤돌아보면 언제나 그랬듯 비어있는 그림자의 공백을 메우는 것은 나의 역할이었다. 한참을 머뭇거리면서 따라간 친구들의 앞에는 무시가 기다리고 있었고, 새학기는 완전히 혼자로 낙인이 된 듯 보였다. 잘 몰랐었던 나의 작은 오해에도 하루종일 고민하며 그 안에는 나의 열기와 향기가 얼마나 묻어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그들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고, 혼자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나는 엎드리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내 친구가 말했다. "원래 진정으로 혼자인 사람들은 쉬는 시간에 엎드려서 자는 척을 한대, 아무도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들이 없으니까." 사실 그 말 듣고 많이 울었어, 나의 상황에 빗대어 은유적으로 고막에 치닫는 그 표현이 솔직히 감당할 수 없는 나의 첫 매듭의 시초가 된 것 같아서. 그 맘이 나의 심장에 비수가 되어 꽃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가장 예민했던 2학년 새학기, 지난 주 쯤에 우리 반에는 전학생이 한 명 왔었다. 그녀는 아름답지 않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예중 출신과 천재적인 피아노 실력에 아이들의 주목을 받을 만 했던 친구였다. 사람들은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기에 그 친구도 자연스럽게 분위기에 동참하였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고, 그렇기에 나는 학교에 가는 것이 죽도록 싫었다. 엄마 아빠를 걱정시킬까봐, 정말로 힘들어 보이는 게 눈에 보일까봐 솔직히 많이 숨기고 다녔다. 사실 힘들었다, 많이 힘들었다. 그렇게 엎드려 있는 나 자신이 처연해 보였고, 1학년 때의 혼자 있었던 친구들처럼 솔직히 아름답게 분위기를 만들 수 없었던 내가 슬펐다. 난 절대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없었던 것일까. 지난날의 무뚝뚝하지 못했던 나와 연관지어 보니, 배신당했었던 나의 어릴 적 경험의 기반을 통한 2학년의 새학기가 어쩌면 말이 되지 않아 보았다. 그래, 외로워, 외롭다고.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생각보다 이유 없는 겉도는 기름이 되기가 그렇게 쉽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타이밍을 잡기가 힘들었던 나는, 이제 의지할 데 없는 혼자이다.


무리에 소속된 사람들은 서로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간다. 나는 가만히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하고, 가끔 사회생활을 하려 다가갔을 때 그들은 갑자기 어떠한 완벽한 틀에 이물질이 끼었다는 듯 나를 반긴다. 나는 이야기를 포기하고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를 받아주는 존재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회색신사라는 것은 시간이 없어서 사용되는 개념만큼의 범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무리에 소속되고 소속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잔혹한 비교심을 느끼게 된다. 아무도 그것이 물질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지, 감성적이나 이성적인 영역으로 해결될 수 있는지 찾지 않는다. 고시대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이젠 반의 대표인 반장이나 부반장들도 혼자 있는 아이들에 관해선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동안 많이 봐왔던 틀이었는데, 왜 난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일까? 그렇지만 그것을 선생님에게 말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나의 잔혹한 사정이 공개적으로 누군가를 매개로 해 알려지는 것이 싫었다. 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누군가와 어울릴 수 있는 것일까? 난 남들과 다르게 최선의 노력을 해야지만 친구를 사귈 수 있었던 걸까. 라는 예시의 생각들이 여러가지로 생기면서 사람에 대한 믿음은 사라져가고, 지금은 그저 공부만 하고 있는 상태이다. 나를 피폐하게 만든 존재나 친구들에 관련된 미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고통스러울 뿐, 난 현실에 대해서 책망하고, 누군가는 원망하는 사람의 시선을 애써 외면한다.


”선생님 시간을 어떻게 아끼셔야 하는지 잘 아시잖습니까! 예컨대 일을 더 빨리 하시고

불필요한 부분은 모두 생략하세요. 지금까지 손님 한 명당 30분이 걸렸다면 이제 15분으

로 줄이세요. 시간 낭비를 가져오는 잡담을 피하세요. 나이 드신 어머니 곁에서 보내는 시

간을 절반으로 단출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어머니를 좋지만, 값이 싼 양로원에

보내는 겁니다. 그러면 어머니를 돌볼 필요가 없으니까 고스란히 한 시간을 아낄 수 있지

요.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앵무새는 내다 버리세요!"


나는 앵무새와 같았다. "진짜"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울부짖는 새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실패하자 어딘가로 홀연히 날아가는 존재에 불과하였다. 나는 광대와 같았다. 외롭고도 아름다운 삶 속에서 의미를 잡으려 아등바등대면서 여러가지 정의를 찾으려 생각해보았다. 난 그림자와 같았다. 사람들이 걷는 앞쪽은 넘보지 못했지만, 그 뒤쪽은 항상 내 것이 될 수 있었다. 난 그렇기 때문에 그림자들과 행복하게 말 없이 걸어다녔다. 난 공기와 같았다. 친구들의 옆에 머물 수 있었지만, 무생물이었기 때문에 그들과 말을 나눌 수도 없었고 애초에 말을 나눌 자격조차 쥐여지지 않았다. 난.. 인간의 기본 조건을 상실하였던 인간이었다. 대화를 잘 하지 않아 아이들이 그저 공부만 하는 아이라고 생각하여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독약과도 같았다. 나의 상황을 더욱 더 내면적으로 악화시키는 잔혹하고 치명적인 독약. 나는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굳건한 방해석이 될 수 있었으며, 어디선가 누군가의 눈물을 조용히 덮어주는 수도꼭지가 되기도 하였으며, 터덜터덜 걸아가는 내 옆을 지켜줄 자그만한 열쇠고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래, 난 모든 것이 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의 결론은 모두 다 초라했다고 정의할 수 있을 만큼 하찮은 인생을 살고 있었기에, 누군가의 성화를 받아줄 여력도, 옆에서 점점 변화해가는 세상과 단절하면서 그저 살아가려고 노력하였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던 마음도 이제는 점점 식어갔다.


그래, 난 광대와 같다. 누군가 앞에선 슬프더라도 웃어야 하며, 싫어해도 괜스레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속으로 증오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난 새로운 나의 작품을 펼칠 수 없었다. 내 앞에서는 어색해지는 분위기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 이제 그리 힘들진 않다. 처음에는 나의 이러한 모든 것이 힘들었다. 난 모든 것이 될 수 있었지만, 그렇기다기엔 그곳에 붙여지는 의미들이 너무나 부정적이기에 힘들었다. 자신들의 얘기를 하기에 바쁜 친구들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들까리 교실 밖을 나가기에 난 그저 힘겹게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누구보다 노력하고 있는 나를 그들은 봐주지 않았다. 그저 찰나의 순간을 잡지 못했다는 이유로. 나는 실패작이라는 생각도 하고, 사실 안좋은 생각도 어둡게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말투로 메모장에 적어보며 온갖 망상에 상상은 다 했던 것 같다. 난 리골레토였다. 귀족의 옆에 붙어서 누군가를 조롱하고 놀리며 고통받는 피해자 앞에서 또 한 번 고통을 받는 광대. 그는 처연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초연적이기도 하였다. 언제나 그랬듯 만토바 공작 앞에서 그들을 헐뜯고 놀리면서 생계를 유지해왔던 그는 마치 지금 상황의 나와 다름 없었다. 아무도 나의 대답을 들어주지 않는다. 흉측한 모습으로 있었던 모모와 같이 세계에서 받아볼 무시는 다 받아본 듯, 솔직히 이제는 별로 지겹지도 않다. 나는 언제나 혼자였고, 앞으로도 혼자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편했다. 누군가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마음껏 취기에 허우적대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갈등의 늪에 빠져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 굴레를 걷고 있을지도 몰랐다. 난 그 둘 중 둘 다 아니었다. 그저 그 옆에서 치이면서 살아가는 존재감 없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나는 혼자만의 세계를 만들고 혼자서 대화하기로 결심하였다. 모모는 해결하려고 노력했으니, 나도 어쩌면 이 굴레를 해결해볼 수 있지 않을까 다짐해보았다. 가장 좋아하는 것이 일광욕이라는 나의 취향을 아직까지 친구 중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했던 나의 그 소심함과 분위기를 깰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 번 더 새학기의 기분처럼 설렐 수 있도록. 누군가의 뒤에서 장난치며 사람들을 비판하는 잔인한 운명의 광대 리골레토처럼 되지 않도록. 자신만의 운명을 개척해간 모모처럼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었으면. 나도 그렇게 초연작을 다시 한 번 더 선보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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