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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바람

by 제이티 Mar 24. 2025

김서윤




오랜만에 바깥에 나오니 칙칙했던 겨울 끝에 피어난 목련 꽃이 눈에 띈다. 겨울처럼 차갑게 보이던 나무가지 끝에 하얀 희망이 매달린다. 날카로운 가지 속에 터진 꽃송이는 봄을 알리는 시작의 종이다. 목련이 필 무렵 땅속에서는 이름모를 풀들이 땅에서 피어나기 시작한다. 봄이다. 분명 봄이다. 산수유가 만발하고 따뜻한 곳에 단아하게 세워진 매화꽃은 이미 완전히 개화하여 그 겨울의 아픔을 매꾸는 작은 반창고 같다.

내 채감으로는 오늘부로 정말 봄이 왔다. 다음주면 매화의 계절이겠지 하고 생각한다. 자연과 어울리는 법을 잊어도 그 꽃의 아름다움은 모두가 느낀다. 목련꽃은 그 누구도 모르는 사이 고스란히 피어나 아름답다. 저녁의 끝자락에 드리운 하얀 달빛같다. 그리고 새의 지져귐이 들릴 것이다. 어디서 온지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봄이다. 봄이라고 이리도 소리치고 있다. 집 안에서 나온 순간 이제 봄이라는 것을 완전히 피지도 않은 목련에게서 느꼈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꽃가루가 날리는 듯한 그 목련의 피어나는 광채가 가장 생생하게 남았다. 오늘 24시간이 행복할 순 없다. 담배처럼 행복도 무르익으면 어느새 떨어지고야 만다. 목련도 어느새 까맣게 타서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사라지니까 행복한거다. 달빛같은 아름다움이 찰나라 행복한거다. 내 손에 담을 수 없이 흘러가니까 행복한 것이다.

행복은 손에 담지 못하는 찰나의 순간이지만 흐르고 만나고 끊어지는것을 동시에 행하는 것이 행복이다. 행복만 한것도 두려워하기만 하는 것도 그 어느것도 인간을 낫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눈오는 날에 운전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다. 떨어지는 눈은 아름답지만 삽시간에 녹아 결국에는 빙판길이 된다. 달리는 차는 어느새 무너질 것이며 미끄러질지 모르지만 눈이 내리는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아름다움만을 따라갈 수 없다. 나는 현실이라는 도로를 달리는 차고 눈의 결정은 부서지고 끊어진다. 그러나 그 고유의 색과 힘을 지녔다. 눈오는 날에 내린 눈을 카메라로 확대해 보면 그 속의 아름다움이 보인다. 흐른다 떨어진다 부서진다.

오늘에 와서는 빠른 속도 탓에 새소리도 꽃의 개화시기도 다 놓쳐버린 것만 같다. 불빛을 보느라 전체의 상을 보지 못하게 된것만도 같다. 나도 버스의 전광판을 보느라 그동안 꽃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핸드폰 불빛은 현실적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없다. 정전이 준 선물이라는 시 속에서는 소리를 내던 기계들이 멈추자 자연의 소리가 들려온다고 했다. 새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나는 찰나라도 잠시 고개를 들어보고 싶다. 색이 있기에 고민하고 시간을 지체한다. 그러나 그것이 있어서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책을 통해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본다. 책도 그 인생의 함축이다. 만약 시간만을 따진다면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 작가만의 찰나가 있다. 남의 찰나를 어렴풋이 느낀다. 하여튼 우리는 떨어지는 꽃잎을 구경하고 아름답다 느끼며 나 조차도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존재는 시간의 객관적인 지표가 아니다. 누군가는 그 속에서 보물을 볼 것이고, 누군가는 아름다움만 따르다 넘어진다. 그 모순이 바로 나다. 모순의 굴레를 끝없이 반복하고 있다. 그것은 그저 흐름일 뿐이라고 믿는다. 버스정류장 속에서도 봄의 바람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정진아 - 정전이 준 선물


팟!

찿아온 정전에


와글와글 텔레비전, 먹통 됐다.

종알종알 라디오, 말이 없다.

위잉 컴퓨터, 잠들었다.


떠들던 기계들 입 다문 후

거실 한가운데

졸린 고양이처럼 앉아 있는데


쓰우 쓰우 쓰우

삐이 삐 삐이 삐

호이익 호이익 호이익

들려오는 새소리.


순간 우리집 거실은 초록 숲이 된다.

나는 한마리 새가 되어

숲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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