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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홀로 남겨진다면?

-영화 '마션'을 보고-

by 제이티

우주에 혼자 남겨진다면 어떨까? 얼마 전 아이들과 영화 '마션'을 보았다. 물론 내가 영화 주인공처럼 무인도나 우주에 홀로 남겨지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상상은 자유고 돈이 들지 않으니까 어떨지 토론하며 글을 써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예상외로 아니면 어쩌면 당연한 대답이 나왔다.


"그냥 죽을래요."


영화처럼 감자를 먹고 산다는 보장도 없고, 저는 주인공만큼 과학지식이 많은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정부는 나를 구조하러 오지 않을 것 같아요. 조소 섞인 반응 와 다소 현실적인 대답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남겨진다는 상상을 하면 어떨까?


우주는 어떤 곳일까? 가본 적도 없고, 영화에서만 봤고 실제로는 있을지 없을지 상상조차 되지도 않는다. 영화에서는 혹독한 추위와 더위는 나오지 않고, 그 분화구 파진 곳을 걷는 발의 촉감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질 수 없고, 몸으로 느껴 볼 수 없는 곳을 상상하는 것은 마치 총 게임만 해보고 군대를 갔다 왔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현실의 군대는 태양의 후예 송중기처럼 생긴 중대장은 없을뿐더러, 그렇게 의리와 정이 넘치지도 않고, 내무반은 겨드랑이 냄새와 땀 냄새가 진동한다. 무엇보다 그들은 사격을 하고 총을 닦지 않는다. 그런 티브이 넘어 존재하는 이데아의 공간을 상상하면서, 내가 주인공이라면 나는 그런 상황에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대부분의 미국 영화가 그렇듯이 주인공은 지나치게 낙천적이고, 긍정적이고 쿨하다. 그다지 생각이 복잡하지 않고, 어려운 일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어차피 영화에서는 끝이 좋을 거라는 것을 그들은 미리 알고 있는 거 마냥, 과정이 어찌어찌 힘들어도 결과는 웃음 짓게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정말 한 치 앞을 모르고,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다. 그러한 상황에 주인공 마냥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감자 농사도 짓고, 통신장비도 복구하고, 지구랑 끊임없이 연락을 시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조금 더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 측은하고 덧없지 않을까?


냉소적인 나의 태도와 다르게 주인공 멧 데이먼 형님은 이상한 짓을 한다. 바로 '기록'이다. 그날그날 브이로그처럼 기록을 남기고 어딜 가나 자신의 이름을 남긴다. 후대의 탐사대가 왔을 때 내가 먼저 여기 있었노라. 나를 기억해라 달라는 메시지일까? 어쩌면 아무도 못 찾을지도 모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쓸데없이 기록을 남기려고 할까? 아무도 보지 않는 일기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생각할 순 있지만 그 행위는 대단한 의미가 있다.


담담하게 하루에 있었던 일을 가감 없이 적는다. 그날의 기분과 상태 날씨마저도 훗날 다시 꺼내 읽어 보면 싸이월드 일기장처럼 오글거릴 순 있지만 그 오글거림이 나를 만든다.

복잡한 마음과 심경과 다사다난했던 지난 일은 막상 글로 적어보면 그렇게 비참하지가 않다.


나의 예를 들자면 "오늘 하루는 아침에 눈 뜨는 게 너무 힘들었고, 직장에 가기 싫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수업을 하고, 점심이 지나니까 어느새 퇴근시간이 되었다. 별거 없는 하루지만 나는 알 수가 있다. 아침에 눈뜨는 게 왜 힘들었는지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쓸 때 눈꺼풀의 무게와 발을 내딛을 때 허리의 통증마저도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점심을 먹으면 기어코 직장에서 하루는 가게 돼있다. 한두 문장에 숨어있는 하루의 고단함과 우울함 그리고 막상 그 원인이 이렇게나 명확하고 단순하다니 내 고작 이런 것 때문에 화가 났고, 짜증이 났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물론 기록을 남긴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록하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기억' 하고 싶은 것을 기록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그것은 중요한 것일 테고, 중요하다는 그것은 내가 그날 그렇게 느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보지 않는 벽에 끄적끄적하는 낙서일지라도 의미가 있다. 화성에서의 하루하루는 아무도 없고 혼자 있으니 비슷한 나날이 반복일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꾸준히 그 상황에 맞게 살아내려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 힘들게 일궈놓은 감자 농사가 하루아침에 망가지더라도 매일 다른 일이 일어난다. 또한 기록하는 주인공 와트니에게는 어쩌면 그 기록을 위해서라도 어제와 다른 또 다른 하루를 만들어야 했을런지도 모르겠다. 오늘 쓸 일기를 위해 오늘 할 일을 만드는 것처럼 일이 있어서 기록하는 게 아니라 기록하기 위해서 말이다.


기록하는 순간 시간은 이제 단순히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흘렀구나를 느끼는 것은 변화된 '장소'에서 느낄 수 있다. 어릴 적 살던 동네나 학교를 들르면 이렇게 세상이 빨리 변했구나를 느끼지 않는가? 인간은 시간을 같은 공간이 다름의 공간이 되었을 때 시간의 가치와 의미를 느끼게 된다. 무슨 말이냐 쉽게 말해 움직이지 않으면 시간은 멈추게 된다. 부단히 몸을 움직이고, 뭐든 만들려고 하고 먹고살려고 노력하는 그의 손과 발이 있었기에 그는 그 기나긴 시간을 버틸 수가 있었다. 홀로 남겨졌을 때 제일 힘든 건 배고픔도 추위도 걱정도 아니다. 다름 아닌 외로움과 남는 시간을 무엇을 하고 보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이다. 노인 사망률 1위가 암이 아니라 은퇴라고 하지 않는가? 기나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변화된 공간을 만들 수가 없고, 시간은 멈추게 된다. 시간이 멈춘다? 이미 살아도 사는 게 아닐 것이다. 어제와 같은 나날이 반복된다면 내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기록하는 순간 시간을 더이상 선이 아니라 잡을 수 있는 점이 된다.


그렇다. 그는 기록하고 기록할 만 일을 꾸준히 만들어서 살 수가 있었다. 비단 우주에 홀로 남겨질 일이 없더라도 이미 우리는 우주와 같이 외로운 세상을 홀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친구한테 시간 나면 밥 한번 먹자라는 의미 없는 말은 얼마나 자주 하는가? 혹은 시간이 없어서 소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얼마나 자주 미뤘는가? 좋아하는 일과 만남에 대한 주저함이 생긴다면 시간을 제대로 쓰고 있는 것인가? 싫어하는 직장상사와 고객한테는 한 없이 친절하지만, 오랜만에 걸려온 수화기 넘어 엄마의 목소리에는 왜 모질게 짜증과 귀찮음이 섞여 있을까?


이미 우리는 우주에 살고 있다. 주인공 멧 데이먼 형님도 자신이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저 지금을 살았다. 어쩌면 없을지도 모르는 미래에 갇혀 지금이 지워지는 게 당연하게 여기는 건 아닌지 영화 '마션'은 결코 쓸데없지 않을 기록을 남기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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