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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

-한나 아렌트 악의 평범성-

by 제이티

"너 왜 그랬어?"

"저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시켜서 그랬어요."


연일 티브이와 인터넷 기사를 도배하는 무시무시한 뉴스를 보면, 과연 21세기 대한민국이 맞나 할 정도로 잔인한 범죄와 사건이 끊이지가 않는다. 차마 글에 담기도 꺼려지는 사건을 보면서,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저렇게 잔인한 짓을 할 수가 있을까 하며 혀를 찬다. 뉴스는 오늘도 우리에게 욕할거리와 대상을 던져주면서 나는 저들보다 착하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한다. 돈 때문에 자기의 탐욕 때문에 부모와 친구 자식마저도 배신하고 끔찍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너무 자주 봐서 면역이 될 뻔도 한데 뉴스뿐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이러한 나쁜 '악'을 주로 다룬다.


이쯤 되면 세상에 이렇게 나쁜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우리는 세상이 굴러가는지 의심이 된다. 그리고 뉴스를 통해 보는 세상은 그렇게나 어두울 수가 없다. 하루의 기분을 망치고 싶으면 뉴스를 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을까? 악의 DNA를 타고났기 때문에 멀쩡하고 무고한 사람을 때리고 피해를 주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의 주장대로 어쩔 수 없이 먹고살려고 했던 짓일 뿐일까?


마이너리티 리포트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보면 톰 크루즈 형은 미래에 범죄를 저지르게 될(?) 자들을 미리 체포해서 미래의 범죄를 예방한다. 이미 나쁜 짓을 할 놈은 정해져 있으니 그들만 족집게처럼 골라내면 된다는 계산이다. 놀랍게도 영화에서의 범죄율은 급격하게 떨어지고, 평화가 지속된다. 역시 나쁜 놈이 나쁜 짓을 하는 것인가?



밀그램 실험이라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실험대상자를 무작위로 추첨해서 아르바이트할 사람을 구한 다음 그들에게 역할을 제시한다. 바로 교사 역할 학생이 잘못하면 혼내주는 역할 말이다. 지원자는 총 40명이고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혼내기만 하는 그야말로 꿀알바다. 그런데 혼내는 방법이 사뭇 남다르다. 바로 전기충격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것이다.


1단계부터 10단계까지 누르면 되는데 틀릴 때마다 1단계씩 올라간다. 마지막 10단계 버튼은 450 볼트로 피카추 전기 공격보다 강력해서 잘못하다간 죽음의 강을 건널 수도 있다. '교사' 역할을 한 참가자들은 학생들이 고통스러워하니까 두려웠지만, 실험자는 계속하라고만 한다. 과연 참가자들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무려 65%나 마지막 피카추 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사실 위 실험은 '교사' 역할 빼고는 모두가 가짜였다. 학생은 물론 진짜 전기 충격도 없었다. 하지만 실험의 결과는 차라리 가짜라고 믿고 싶을 만큼 끔찍했고,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었다. 어떻게 인간이 이러한 비인간적인 행위에 동참할 수 있을까? 왜 권위에 복종할까?


밀그램 실험은 인간은 더 강한 권위와 권력일수록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평범한 사람도 얼마든지 상황에 따라서 '악'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나쁜 사람은 없고 나쁜 상황만 있을 뿐일까? 역사적으로 600만 명을 학살한 나치의 전쟁범죄 홀로코스트를 집행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아이히만


전쟁이 끝나고 전범재판이 열렸을 때 그의 태도와 주장은 많은 사람들을 귀를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곧게 허리를 펴고 떨리는 음색 없이 그는 당당하게 이렇게 말했다.



군인의 신분으로 소임을 다했으며 유태인에 대한 어떠한 사적인 마음은 없었다고 한다. 당시 상황은 전쟁 중이니까 그의 역할도 군인이니까 과연 그는 죄가 없을까? 분명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렇다고 모든 군인을 살인자라고 비하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어찌 됐든 나라를 위해 싸웠다면 우리는 그들을 영웅이라고 부르니까 말이다.


여기서부터 내가 알고 있는 옳고 그름과 양심과 신념이 흔들린다. 아이히만의 주장을 반박하고 싶지만 사실 그는 조국에 충성했고 가정에 충실했던 바람직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남자다. 그렇다면 그의 죄목은 무엇일까? 너무 열심히 살았던 죄? 천하의 나쁜 놈이라고 하기에는 전과도 없고 사생활도 깨끗했다. 그를 욕할 수 있는 이유가 단지 독일이 전쟁에서 졌기 때문이라면 만약 독일이 이겼다면 그는 누구보다 적을 많이 죽였으니까 전쟁 영웅이 되는 상황이 된다. 그는 그저 운이 없었기 때문이 죄인이 되었나?



-한나 아렌트-

이때 한나 아렌트가 말한다. 평범한 사람도 악을 저지를 수 있다. 왜냐하면 '사유'하지 않았으니까!!

다시 말하면 그들은 시키는 대로 했으니까 그게 문제라는 것이다.


아이히만의 입장에서 손에 돌조차 없는 여자와 노인들을 죽이는 게 과연 전쟁터에서 총을 든 적군을 싸우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충분히 생각할 수 있었고, 잘못된 명령이라는 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도 한 아이와 여자의 가족이었으니까 말이다. 바로 한나 아렌트는 이 점을 지적한다. 공감하고 생각하지 않는 죄 말이다.


밀그램 실험도 아이히만 사건도 시키니까 일을 진행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일은 나쁜 짓이었고, 그들은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런데 자신이 직접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말 한마디에 인간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 나약한 존재인지 부끄러운 민낯을 보여준다.


학교폭력에 가담했던 아이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선배가 시켰어요."

"애들이 하니까 따라 했어요."

"저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평범한 학생들이 나쁜 학생을 만나 소위 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나쁜 학생은 악의 DNA를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또 그 위의 더 나쁜 선배가 시켜서 그랬을까? 꼬리를 물면 결국 누가 진짜 원인 제공을 했는지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책임'을 돌리기 마련이니까.


과연 애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듯하다. 뉴스에 나오는 끔찍하고 부도덕한 범죄뿐 아니라 내 작은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평범한 죄를 생각해보면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이 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자책과 죄책감은 영혼을 갉아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과거에 붙잡혀 오늘을 살 수 없게도 만드니까 분명 좋은 태도는 아니다. 하지만 내 잘못이 아니라는 말에는 내 책임이 아니라는 말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내가 책임지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암시한다. 무슨 말이냐!


아직도 애라는 거다.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혹은 정말 억울하게 잘못을 저지르고 사람 사이의 갈등은 끊이지 않는다. 내 의도와 무관하게 남들에게 상처 주었던 기억. 혹은 반대로 상대방의 의도와 무관하게 나 혼자 상처 받았던 기억. 이 모든 것이 악이라면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해결의 실마리를 만들어야 한다. 울고 징징대며 하늘만 바라본다고 나를 구하러 오는 아이언맨은 없다.


평범한 내가 평범한 다른 사람들과 죄를 안 짓고 기쁘게 살아가긴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가 아니라 그럼에도 내가 잘못이 있었다는 '용기'가 필요하다. 잘못했다는 사람한테는 더 이상 비난을 할 수 없다. 그리고 더 싸울 명분도 없어진다.


그리고 용기 있는 사람은 이제 애가 아니다.



"너 왜 그랬어?"


"저는 두려웠고 시켜서 한 게 맞지만, 그게 나쁜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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