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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Dec 15. 2024

켄트 하루프 <밤에 우리 영혼은>

소설 리뷰

 영혼이 가장 외로운 순간은 밤이다. 밤은 모든 것을 내려놓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전히 내 영혼의 무게만을 느끼게 되고 우리는 그 무게에 압도당한다.     


 어둠이 드리우기 전 애디가 루이스를 만나러 가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루이스에게 제안한다. 잠들기 전부터 깨어날 때까지 함께 있어 주겠느냐고. 루이스는 그 제안을 승낙했고 둘은 부부가 아니지만 ‘밤을 함께하는 사람’이 된다.


 어릴 때 나는 밤이 무섭지 않았다. 모든 일들이 가능한 시간이 밤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냥 아이인 채 남을 순 없다. 시간은 빠르기에 머지않아 나도 애디와 루이스처럼 노인이 될 것이다. 노인이 되어서의 밤은 잔잔히 무서울 것 같다. 모든 일들이 가능한 시간대는 사실 인간에 한해서는 없단 걸, 우리가 우리 몸에 갇혀 있는 한 모든 것이 자유로울 수 없단 걸. 언젠가 알게 되는 때가 오기 때문이다.


     

 “(141p)나는 이 물리적 세계가 좋아요. 당신과 함께하는 이 물리적 삶이요. 대기와 전원, 뒤뜰과 뒷골목의 자갈들, 잔디, 선선한 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당신과 함께 누워 있는 것도요.”

 

영혼이 새어나가면 우리는 누구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로움이 행복으로 가는 길은 아닐지 모른다. 자유롭지 않은 물리적 공간 속에서 영혼의 무게에 짓눌리면서 그러나 둘이 함께 손을 잡고 누운 이 밤이 그들에겐 행복일 수도 있다.

 

 줄곧 사랑이 진한 색깔이라고만 믿어왔다. 하지만 이젠 사랑이라는 것이 색으론 형용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을 덜 두렵게 만드는, 어둠 속 꽉 쥔 두 손도 사랑이라는 걸 알고 나서부터 말이다.      

 홀트는 애디와 루이스에게 어떤 마을이었을까. 둘이 아닌 순간부터 둘이 되는 순간까지를 일궈 준 마을일까. 그들이 홀트에 처음 온 이래로부터 페이지는 한 장 한 장 넘겨지고 있었다. 한 장씩 넘겨진다면 아주 느린 속도로 둘이 된 것처럼 보였겠지만 플립 북처럼 빠르게 재생된다 가정해보면? 둘이 되는 그림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그림은 둘에게만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애디와 루이스 주위에 그 누구도 그들의 마지막 페이지가 둘이길 바라지 않았다. 홀트 주민들도, 애디와 루이스의 자식들도 이미 그들의 마지막 페이지를 자신들이 정해놓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저 긴 이야기를 다르게 걸어왔고 모든 것들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것. 그러다 보니 다른 무늬의 패턴이 애디와 루이스에게 새겨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른 무늬의 패턴이 한데 모이면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낀다. 그 불편함으로 애디와 루이스는 온전히 자신들이 찾은 방식대로 살아가지 못하게 된다. 설령 그게 그들만의 행복의 길이라 하더라도.


 인간이 인간으로 있는 한 ''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외롭고 두려워질 수밖에 없는 때인 듯하다. 당신의 추위를 물어야 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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