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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Oct 25. 2024

담영 <글이란 말이 드리운 그림자일까>

책 리뷰

비유를 업은 글들이 저마다의 해가 비치는 곳으로 나아가 광합성하는 느낌이 들었다.


움직인다면 더는 고여있지 않을 그림자들. 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면 글도 고여 있을 일이 없다. 작가의 마흔다섯 편의 글들은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채비가 되어 있는 듯했다. 말로써 지나가못한 길들을 바닥에 붙어 깊이를 더한다. 깊은 것들은 언젠가 멀리 가게 되어 있으니.


작가의 말처럼 이 글이 나의 일기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일기는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을 기록하는 것. 나는 이 책을 넘기며 걸었고, 다리가 아프면 책을 쥐고서 벤치에 앉기도 했다. 그리고 버스 차창에 기대어 눈을 감으며 머릿속에 장면 장면들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때 느낀 것이 있다. 아, 이미 이 책은 내 일기가 되어 있구나.    




33p

"내가 음소보다 자소를 조금 더 사랑하는 이유는, 후자의 경우 눈으로 분별이 가능한 녀석이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음소는 말 그대로 소리를 낼 때 그 차이를 알 수 있지만, 자소는 손으로 적은 뒤에야 그 하나하나를 발견할 수 있는, 유형의 요소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만져지고 볼 수 있는 것이기에 더 애착이 간다고 했다. 작가는 자소를 사랑한다. 그가 왜 자소를 사랑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적으면서 제 감정을 보태어 줄 수 있으니까. 소리 내지 않고 손끝으로도 언어를 담아내니까. 그것이 지나감으로 끝나는 게 아니어서 더 사랑할지도 모르겠다.


53p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요,

 그것은 갇힌 문장일 뿐이다."

문장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건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고 싶지 않을 때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것들이 사랑을 가로막는 것이다.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방어기제로 쌓아 올린 벽이다. 그러니 사랑이 찾아와도 벽 안에서 외치는 말들은 자주 갇혀 버린다. 애초에 벽은 부서지지 않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벽을 뚫거나 부수기보단 벽 바깥에까지 소리가 닿을 수 있도록 더 큰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갇힌 문장이 벽을 뚫고 나아가게 도와주기보단 벽을 뛰어넘어갈 수 있도록.


157p

"가끔은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너의 목소리를 들으며 졸음을 맞는다.

자꾸 너를 염두에 두고 쓰게 된다."

글 쓰는 사람들에겐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쓴다는 것이 가장 진솔한 표현일지 모른다. 나도 누군가를 생각하며 글을 써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주로 내가 쓰는 대상은 가족, 노인, 어린이, 동물이었는데 누군가가 이 틈에 들어와 버린 것이다. 매일 생각나면 한 번은 쓰게 된다. 그리고 더 사랑하게 된다.

또, 상대방을 너무 사랑하면 그에게 잠이 찾아올 때 평온히 잠들 수 있길 바라게 된다. 때때로 내가 먼저 잠들어버리기도 하지만. 그 사랑이 너무 안온해서.




책 덕분에 감정의 골목을 걸어봤다.  여러 감정들이 지나는 골목을 사람인 내가 걸어 끝끝내 사랑을 마주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내게 꽤 오랜 일기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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