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대로 끝나버리는 메시지가 있다. 그러나 사랑은 메시지처럼 전송이 되지도 반송이 되지도 삭제가 되지도 않는다. 관계의 끝을 바라면 일정 시간 동안 작은 언덕이 생기는데. 그 언덕을 넘으면 때때로 관계가 다시 시작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는 작은 언덕조차 넘을 힘이 없어서 거기서 그친다. 경민은 충분히 작은 언덕을 넘어 한아에게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반대편에 있는 큰 언덕을 넘어서 우주에 간 것뿐이다.
경민의 모습을 한 외계인(편하게 외계인이라 부를 것.)은 자신이 한아에게 반해 2만 광년을 날아 지구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집단 무의식으로 꿈이 이어진 그들의 행성에서 하루는 한아에게 사랑에 빠진 그 외계인으로 인해 행성 전체가 한아 꿈을 꿨다고.
한아는 서교동 골목 분위기를 꼭 닮은 가게, ‘환생-지구를 사랑하는 옷 가게’에서 일한다. 오후 두 시의 6호선에서 눈에 띄지만, 출퇴근 시간 2호선에선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희미한 인상의 한아. 가수 아폴로의 대표곡이 아닌 곡들을 더 좋아하며, 콘서트에서 생수병을 들지 않고 정수기 물을 마시는 그의 모습을 응원했던 한아. 경민에 대한 배신감과 욕을 온갖 환경문제 들로 내뱉는 한아. 인간이 인간과 인간 아닌 모든 것들을 끊임없이 죽이고 또 죽이는 끔찍한 행성에서 전체의 특성을 닮지 않은 한아.
이 정도의 묘사만 끌고 왔음에도 나는 그녀에게 사랑에 빠질 수 있었다. 내가 어쩌면 외계인과 취향이 같은가 싶기도 했다. 결론은 외계인이 그녀에게 이토록 사랑에 빠지는데, 무리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말인데, 나 또는 당신이 어떨 때에 사랑에 빠지게 되는지 함께 이야기 나눠보고 싶다.
이곳에선 한아와 외계인, 경민뿐만 아니라 모든 사랑의 서사가 촘촘하게 이어져 사랑 아닌 것들이 빠져나갈 통로를 막았다. 아폴로를 따라 우주여행을 선택한 주영, 외계인과 결혼했음에도 언제나 일 순위였던 일. 그리고 한아에게서 2만 광년을 날아온 외계인조차 완벽히 채울 수 없었던 친구 유리의 사랑.
모든 사랑의 모양들이 잘 뜨개질되어 ‘지구에서 한아뿐’이라는 책을 이루었다. 책 제목엔 한아뿐이라고 되어 있을지언정 서사의 결은 한아뿐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사랑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한없이 쪼개어지는 알 수 없는 이물질이기 때문이다.
137p. “네가 내 여행이잖아. 잊지 마.”
여행은 언젠가 끝이 나겠지만 순간순간에 끝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강하게 작용한다. 나도 누군가를 여행하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
161p. “우리는 모두 이 어둡고 넓고 차가운 곳에 점점이 던져져 있지 않은가?”
마치 우리는 파편 같다. 광막함을 오롯하게 채우지 못함을 알면서도 곳곳에 있는 파편들을 잡아 촘촘함을 만들려 한다. 가끔 우주뿐만 아니라 모두가 좁다고 하는 내 방도 너무 넓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오랜만에 우리 독서 모임이 방학을 마치고 돌아왔다!
나는 이 모임을 사랑한다. 이번 책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이라 무조건 참여하고 싶었다.
'지구에서 한아뿐'을 읽고 나도 매력적인 외계인을 그려보고 싶어서 '피쿠'를 연습 삼아 썼다. 그러나 깨달았다. 나는 작가님의 서사의 손톱만큼도 못 따라간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