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이란 과목이 개설되면 좋겠다. 작별은 늘 연습 없이 실전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연습할 수 없는 영역이긴 하지만, 어떻게 보내주어야 하는지 그다음엔 뭘 해야 하는지 함께 이야기 나누어 보고 싶다. 노아는 할아버지에게 ‘작별’에 관한 가장 긴 수업을 듣게 된다. 원형으로 된 할아버지의 광장은 노아의 교실인 셈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 크기가 줄어드는데 가장 먼저 사라지는 건 작은 것들이겠지만 원이 줄어들수록 큰 것들도 원 밖으로 나가게 된다.
한 페이지가 없어진 책을 읽고 있는데 그게 제일 중요한 부분일 때가 있다. 그래서 사라진 페이지를 제하고 읽을 때 우리는 무언가 사라져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게 가장 중요한 페이지이고 중요한 것이 사라질 때 우리는 그걸 되찾으려는 마음을 늘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그런 의문이 든다. 우리는 죽는 게 무서울까, 잊는 게 무서울까.
노아, 노아
할아버지는 손자의 이름을 남들보다 두 배 더 좋아해서 연달아 두 번 부르곤 한다. 때때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를 때 그것이 나인지, 나와 이름이 비슷한 다른 누군가 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때 할아버지가 노아의 이름을 두 번 부르는 것처럼, 누군가 내 이름을 연이어 불러준다면 그것이 나에게 오는 소리라는 것을 더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내 이름이 더 내 것의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 것 같다.
히아신스, 용, 학교 이야기
한평생 확률을 계산하던 할아버지가 확률로 설명할 수 없는 할머니에게 사랑에 빠진다. 할머니가 사랑했던 히아신스 향기는 광장 안에서 날마다 짙어지고 있다. 할아버지는 그 향기를 맡으며 영원했던 사랑을 기억하고 그것이 슬픔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거머쥐려 한다. 히아신스는 할아버지가 먼저 떠난 할머니를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심어 놓은 꽃이다.
할아버지는 갓 태어난 노아에게 용을 선물했다. 그래서 용은 광장에 자주 등장한다. 할아버지가 노아를 선명하게 기억해 내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었을지 모른다. 잠든 용은 재채기하며 숫자가 적힌 수백만 개의 종잇조각들을 뿜어낸다. 이는 노아에게 알려주었던 숫자 이야기들이 허공으로 흩어질까 두려운 할아버지의 마음을 나타낸 것 같다.
할아버지는 손자 ‘노아’에게도 아들 ‘테드’에게도 항상 학교 이야기를 묻는다. 나는 그 물음이 테드를 위한 문장이라 여겨진다. 테드가 어릴 적 신경을 써주지 못해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죄책감이 어른인 테드를 틈 만나면 학생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식은 자신이 적은 숫자와 계산 식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수학만이 모든 걸 담아낸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테드는 언어와 악기를 사랑한다. 그가 궁금했던 것이 진정 테드의 학교생활인지, 테드가 사랑했던 것의 이야기 인지, 테드가 세운 수학식이었을지 알 길이 없지만 사실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부르고 싶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