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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Jan 06. 2025

챙김 받는 포지션

 초등학교 5학년 땐 내 키가 여자애들 중에선 두 번째로 컸다. 어디까지 클는지 알 순 없지만 좀 더 많이 커서 작은 아이들을 한가운데 모아놓고 지켜주겠노라 다짐했다. 부푼 꿈을 이미 안아버렸는데 나보다 앞에 서 있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내 뒤로 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내가 맨 앞 줄을 차지하고 있었다.

 고갤 들어 올려다봐야 하는 것들이 갈수록 늘어가는데 땅을 보며 걷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덕인지 바닥에 버려진 것들을 그 당시 많이도 주워왔다. 할머니는 가방이 무거워서 내 몸이 바닥을 향해 기우는 거라 생각했다. 그 때문인지 골목까지 손수 마중 나와 가방을 대신해서 들어주기도 했다.

 6학년 즈음엔 항상 드넓은 밤을 보며 막막해했다. 별이 되고 싶은데 내가 너무 낮게 있어서 다른 사람보다 시간이 더 걸릴지 모르니 말이다. 그렇다, 그때도 난 막연하게 공상하기를 좋아했다. 

 누군가를 지켜주고 싶다. 그러나 마음이 들쑥날쑥하기도 하고 세상물정도 몰라서 친구와 있든 애인과 있든 항상 챙김 받는 포지션이 되었다. 이끌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분명 챙김을 더 많이 받다 보면 관계의 끝이 올 때 더 많이 그리워하게 되고 그다음 사람에게도 그런 것들을 바라게 된다. 결국 나는 영원히 누군가를 지키지 못하게 될 거다. 


 자주 보는 친구 없이, 애인도 없이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된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는 바라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다. 나 하나는 건사해 낼 힘도 키웠다. 

 그런데 누군가와 다시 깊은 관계를 맺는다면? 모르겠다. 

 요즘도 가끔 바닥을 보며 길을 건널 때가 있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바닥에 것을 주우려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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