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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린 Feb 27. 2023

3월은 변화할 때

밀린 이야기들


1.

연희동 프로토콜

근래 거의 매주 연희동에 가서 작업을 했다. 사실 우리 집이랑 가깝다고 해도, 교통 때문에 결국은 한 시간이나 걸리지만 난 왠지 모르게 이 동네가 좋다. 얼마 전에 친구들이랑 같이 공부하면서 우연히 알게 된 이 프로토콜이라는 공간이 너무나도 마음에 쏙 들어서, 그 뒤로 거의 매일 자주 찾는다. 혼자 와서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작업을 한다.


요즘 나를 포함한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독서를 한다. 같이 일을 하는 언니랑은 쉬는 시간마다 책을 읽고, 나도 계속해서 책을 읽을 시간을 스스로 만드려고 한다. ​


갖고 싶은 디자인 서적들이 너무나도 많다. 올 해는 조금 더 저축해서 책에 많이 투자해야겠다.



2.

독서모임을 위해 <호밀밭의 파수꾼>을 완독 했다. 청소년 권장도서랬나. 학창 시절의 나는 책과는 거리가 매우 먼 아이였기 때문에 이 책을 접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실 외국 소설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외우기가 너무 힘들어서이다. 그래서 꾸역꾸역 인물관계도를 써 내려가면서 공부하듯이 책을 읽었다. 뭔가 중요할 것 같은 문장을 읽으면 표시를 해두고 하면서 꽤나 정성스럽게 읽었다. 초반에는 너무나도 많은 등장인물들에 정신이 아득해졌고, 이들을 전부 기억해야 하는 건가 싶었다. 홀든이 설명하는 주변이들의 설명이 너무나 자세해서 수고로울 정도였다. 그래서 꽤나 이들은 소설이 전개될수록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걸까 기대하며 읽었다. 그러나, 완독 후 남는 것은 없었다. 그 많은 등장인물들의 이름들은 온데간데없이, 그저 홀든 자신의 이야기로만 끝났을 뿐이다. 현재 당시에 내게 너무나도 크게 다가오는 일들은 후에 지나면 없던 일처럼 기억에서 지워진다는 걸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결국 남는 건 나 자신일 뿐이다.


3.

앞으로 자주가게 될 삼청동이다. 이제 일 년 동안 삼청동으로 사진아카데미를 다니기 때문. 삼청동과 나의 역사는 꽤나 깊다. 20년 1월부터 삼청동을 우연히 알게 됐고, 그 뒤로 매년 생일마다 찾아오는 장소가 되었다. 라카페 갤러리, 박노해 시인, 역사책방, 보문여관, 이라선, 올드 앤 와이즈, 서촌블루스… 그리고 광화문에서 중앙로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야경까지. 이 사소한 부분들이 나의 밀도 있는 취향이 되었다. 고로 서촌에 대한 나의 작은 사랑은 어느새 4년째다. 그때 한창 듣던 카를라 브루니의 Stand by your man, Spring waltz도.



4.

​독서모임 네 번째 시간은 책 바꿔 읽기 시간이었고, 나는 지난여름 아주 열심히 읽었으나 끝내 완독 하지 못한 최은영 작가님의 <내게 무해한 사람>을 가져갔다. 도그 지어가 수많은 것을 보니, 아주 즐겁게 읽은 듯하다.

나는 <인구 미래 공존>이라는 인구학과 관련된 도서를 읽게 되었다. 사실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단어는 예로부터 뉴스에 많이 나오기도 하고, 제대로 공부하고 접한 것은 수험생 때 세계지리를 배웠을 때였나.

그 뒤로는 현재 내 삶이 너무 중요해서 한국 사회, 경제, 정치에 관련해서는 관심도 없었고 인지할 노력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어느새 스물셋이 되었고, 주변 사람들이 점차 사회초년생이 되면서 뉴스와 신문사를 구독하고 경제를 배우는 이들이 늘어났고, 나도 이제는 외면하지 말아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껴서 회사를 다니는 초원언니에게 경제공부는 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고까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국민연금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그게 저출산과 고령화와도 관련된걸 부끄럽게도 그제야 배웠다. (얼마나 내가 무지했는지 알게 되었다)

배울 의지가 분명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뒤로도 여전히 나는 당장의 현실에 안주하며 한국 소설과 전공 관련한 디자인 서적, 공간, 브랜딩 마케팅과 관련한 책만 읽는 지독한 독서 편식가였다. 그러다가 이번에 <인구 미래 공존>을 40분이라는 짧은 시간 내내 3분의 1을 읽으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와중에도 여운이 남을 만큼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는 2020년대에 접어들어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많은 데드크로스가 시작됐고, 추후 국민연금이 고갈되어 회수하지 못할 지금 청년층의 노후는 정말 맞이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이제 결혼은 중산층만 해야 할 만큼, 결혼을 하는 인구수가 점차 줄어들어 예식비용은 하늘을 찌른다. 이런 생각에 빠져들어 정말 현실을 오랫동안 천천히 그려보았다. 지금까지도. 배제할 수 없는 현실이다.



5.

/ 2023년 2월 16일

기분 좋은 하루였다. 하루가 지나는 게 아까울 만큼 하루가 너무 알차고 즐거웠던 건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새해 내내 한 대상에만 집착하고 상념 하던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를 갉아먹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필요했다. 대상으로부터 빠져나온 내가 그것에게 빠져있는 나의 모습을 분리해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늘 수강신청을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어제는 웬일로 손가락에 강의신청버튼이 착착 붙었다. 수강신청에 너무 너도 성공해서 교양을 녹화강의로 5개나 잡았다. 덕분에 수업을 들으러 학교를 이틀만 가게 되었고, 조금 더 사진과 내가 하고 싶은 활동에 집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


요즘 들어 주변 사람들로부터 하여금 좋은 소식이 들려온다. 동창들의 편입 성공 소식이라던가, 옆에서 지켜보던 친한 친구가 인턴에 합격했다던가. 또는 지인의 지인이 대학에 붙었다던가. 더불어 듣는 내게도 좋은 기운이 몰려온다.


새 해 첫날, 도쿄에서 술에 취해 가방을 잃어버렸지만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한국인이 나를 하루종일 데리고 다녔고. 덕분에 나는 새해에 빈털터리가 된 채로 호스텔방 안에서 재즈바가 오픈하면 저녁까지 기다리면서 숙취에 고생할 일 없이, 신사도 보러 다니고 도쿄타워에 가서 야경도 봤다. 그분은 영화음악을 하셨다. 정말 본인의 작업을 매우 사랑하는 분이었다. ​


한국에 온 뒤로도 sns로 꾸준히 그분의 근황을 접하면서, 나도 스스로 더 변화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나의 작업을 더 사랑할 것. 그래서 나도 사진 아카데미를 신청한 걸까. 나의 작업을 더욱이 사랑하고 싶어서.


여태 새해가 된 뒤로 나는 7주라는 시간 동안 열두 권의 책을 읽고, 8개의 전시회를 다니고, 꾸준히 사유했다. 일본여행을 갔고, 다음 주에는 대만여행을 간다. ​


친했던 카페 사장님은 내가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소식을 들은 후로, 자신의 카페를 스튜디오로 빌려주겠다고 하셨다. 2호 점도. 언니가 데려간 어느 모자가게 사장님과도 친해졌다. 동기의 지인 졸업전시에서 만난 사람과는 어느새 너무나도 가까워져 술을 기울이며 사진과 미래를 주제로 대화를 한다. 삿포로에서 만난 대만인 친구와 다음 주 타이베이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회사를 다니는 동아리 언니는 내게 책 속에서 좋은 문장들을 발견하면 공유를 해준다. 열네 살부터 열여섯 살이던 나를 따르던 중학교 동문 후배가 대학에 붙어 약 2년 만에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눴다. 독서모임에서는 또래와는 나눌 수 없는 지적 대화를 오랫동안 한다. 올해 고3이 된 열아홉 살 제자들에게 너네도 최선을 다하라고, 나도 올해 최고의 한 해를 보낼 거니 우리 같이 열심히 하자고, 다시 만날 미래를 약속했다.​


나 혼자서는 이런 다양한 세계를 접할 수 없었을 테다. ​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만 같다. 올해부터 누군가를 만날 때, 관광객의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 그냥 여행하듯이. ​


나는 이래서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 같다.


6.

요 근래 사진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했다. 영상 쪽으로 진로를 틀고, 나와 같이 사진이라는 취미를 갖고 살아가는 지인과 최근에 깊은 고민들을 나눴다. 그분의 고민을 들은 뒤로, 나도 정말 이제는 현실을 더 많이 챙겨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고 정말 우연히, 좋아하는 뮤지엄의 아카데미에서 사진수업 수강생 모집 공고를 보고 난 후 나는 깊은 고민 없이 바로 신청버튼을 눌렀다. 마침 학교에서 장학금도 받았겠다. 본래는 카메라를 풀프레임으로 바꿀 계획이었으나, 공고를 본 후로 풀프레임 구매는 여름으로 미루기로 결심했다. 그러고 나서 문득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었다. 왜 나는 취미로 시작했던 사진에 점점 더 욕심을 부리는 걸까. 왜 나는 사진을 더 잘 찍고 싶은 걸까.


처음에는 그저 사진은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한 위로방식 중 하나였다. 당시의 나날들이 마치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 같은 큰 힘을 지닌 나의 사진들은 작고 나약한 현재의 내게 다시 일어날 힘을 줬다. 그래서 늘 현재의 나는 지금 찍은 사진들을 보고 용기를 낼 미래의 나를 위한 기록물이라고 생각각하며 셔터를 눌렀다. 그래서 좋은 마음으로 찍지 않는 사진들은 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만 같아서 전부 쓰지 않았다. 아무리 풍경이 예쁘다고 해도 나의 감정상태가 좋지 않으면 사진을 찍지 않는다. 이런 나의 사진에 대한 가치관 때문일까. 내가 나의 사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들이 보는 사람들에게도 전해진 것 같다. 점차 나의 사진들을 사랑해 주는 이들이 생겨났다. 사진이 너무 예뻐서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사용해도 되겠냐며 요청을 해오면 나는 흔쾌히 그들에게 내가 찍은 사진들을 전송했다. 그러고 시간이 흐르니, 나의 기록들에서 나의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들이 나타나고, 내게 촬영을 해달라는 제안을 건넨다.


사진을 찍은 지, 어느새 햇수로만 4년 차에 접어들었다. 나는 여태 살면서 단 한 번도 사진을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다. 그 흔한 사진 이론조차 알고 있는 게 없다. 아직도 A모드가 뭔지 P모드가 뭔지도 정확하게 몰라서 그냥 마음이 내키는 데로 찍을 뿐이다. iso와 노출값 그리고 셔터스피드가 무엇인지도 지난여름 친구 석종이가 간단하게 알려줬을 뿐이다.


그래서  타인이 내게 사진에 대한 전문지식을 요구하는 대화를 건네오면 사진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들킬까  소극적인 태도로 대화에 임했다. 어떤 카메라가 좋냐고 해도 나는 모른다. 진짜 무지하니까. 그래서 이런 내가 어느새 부끄럽다고 느껴졌다. 어디에 가서 사진을 오래 찍었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사진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나는  해는 사진 기능사 자격증 준비가 됐든, 아니든 조금  사진에 대해 깊이 공부해서 이제  사진을 시작하려는 주변 지인들의 물음에 흔쾌히 아는 지식들을 아낌없이 공유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아마 아카데미를 등록한 것도 일련의 과정이 아닐까 싶다. 사진을 업으로 하는 이들의 틈바구니에 껴서, 어쩌면 나보다 더 거대한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게 된다면 나는 그곳에서 또 어떤 나만의 색을 발휘할 수 있을지. 또 스스로 나를 울타리 밖으로 던져놓는다. 종착역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내 꿈의 내용은 오직 나 자신만이 밝혀낼 수 있다. ​


곧 3월이 온다. 변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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