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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린 Jan 26. 2023

버티는 삶에 관하여

존립하기 위한 삶의 재정비


요 근래 지인에게 고민상담을 받으며, 나도 본질적으로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 가에 대한 고민을 오랜 시간 동안 가져봤다.


지인의 고민에 본론으로 들어가기 앞서 선행되어야 할 질문이 있었다.

’ 나는 내가 하는 일 혹은 하고자 하는 일 (직업적으로든, 자기계발적으로든 모두 포함)이 오로지 나 개인의 만족을 위함이 아니라 아주 사소하게라도 타인의 시선 내지 환상을 사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는가 ‘​


나는 우선 이 고민을 들어주면서, 나는 의도가 포함되어있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그게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거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사회에 살아가며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만 같다. 넓게는 사회구성원의 가치관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힘든 것 같고, 나 개인의 만족 안에는 결국 타인이나 사회에게 인정받았을 때의 성취도 있으니까.


간혹 내가 나 혼자서만 꽁꽁 숨겨두고 볼 글을 쓰게 되었다면, 주어와 서술어로만 간략하게 문장들을 써냈겠지. ‘오늘은 이걸 해서 기분이 좋았다 ‘ 또는 ‘오늘은 이런 하루였다’와 같은..


그러나 누군가 그것들을 볼 마음으로 글을 쓰니, 최대한 고쳐 쓰고 가장 정제된 문장으로 완성하게 된다. 그럼 그 오랜 고민의 시간과 과정을 걸쳐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진 문장들이 어느새 나의 언어가 된다. 그렇게 타인의식을 하며 써낸 글은 나의 모국어를 만드는 일이었다.​


스무 살의 나에게는 이런 루트가 있었다. 어떤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의 근원을 찾아낸다. 그것들을 혼자서 메모장을 켜두고 써낸 후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 생각과 고민들을 나누고 그게 옳은 방향인지 또는 그들의 견해를 듣고 난 뒤의 생각을 또 정리하여 가장 갈고닦은 문장으로 내 일기장에 옮겼다.


 물론 지금은 그럴 시간도 체력도 없어서 불가능하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 평안했다. 마음껏 사유를 하는 삶이라니. ​


아무튼 그러다 보니 고민상담을 한 지인은 본인이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하고 시작한 것들이 점차 겉으로 드러나고 보이면서 스스로 점차 타인이 우러러보는 것을 하고 싶은 것 같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뭐가 문제일까 변질된 본인의 마음일까 아니면 긍정적 요소만 뽑아내는 플랫폼일까를 생각하다가, 그럼 본인이 계속 외적으로 (자기가 하는 일이나 취미) 드러내는 것을 지속해야 하는가?
사실 세상을 실질적으로 굴러가게 하는 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너무 많은데 본인이 너무 ‘외적’이고 ‘우러러보는 것’에만 집중한 건가?​


 이미 내가 위에 쓴 글에 나의 결론이 나와있다. 타인을 의식하는 것은 결코 배제할 수 없으며 그것들을 부정적이 게만 바라볼 이유는 없다는 게 나의 의견이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이 정리가 되어야 한다. 어떤 점이 타인이 우러러보는 걸 의식하게 썼다고 느끼는지, 그리고 본인이 생각하는 외적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더 궁극적으로 본인은 사진을 찍는 목적이 무엇인지. 이런 것들이 기준점이 되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의식하지만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정직한 글쓰기를 하고 싶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은 마음으로 찍지 않은 사진이라면 사용하지 않겠다’


가령 이 한 문장의 신념이 기준이 될 수도 있겠다. 내가 스무 살에 즐겨 보던 허지웅의 <버티는 삶에 관하여>라는 책에 이런 문장이 있다.


마음속에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문장을 한 가지씩 준비해 놓고 끝까지 버팁시다. 넌덜머리가 나고 억울해서 다 집어치우고 싶을 때마다 그 문장을 소리 내어 입 밖으로 발음해 보며 끝까지 버팁시다. 저는 끝까지 버티며 계속해서 지겹도록 쓰겠습니다. 여러분의 화두는 무엇입니까. ​


 식어버린 열정과 많이 자라나 더는 맞지 않게 되어버린 나를 발견할 때마다 세상이 끝난 것처럼 슬플 때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나날에 수도 없이 불쑥 찾아오겠지. 아마도 어떤 세상은 정말로 끝이 나서 구겨지고 작게 흩어져 눈으로도 마음으로 볼 수 없게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 가슴속이 답답하거나 울적하면 산책을 하면 되고, 스트레스받으면 매운 걸 먹는다던지, 기분이 좋을 때마다 듣는 좋아하는 음악을 켠다던지. 그런 식으로 자신만의 불안과 슬픔을 견디는 삶의 방식을 하나둘씩 재정립해가면서 하나둘씩 의미를 억지로라도 부여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가슴이 홀가분해지지 않을까. 그리고 변화하는 모든 것들에 의연해지지 않을까. 변한다는 게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니까. ​


내가 어디서 흘러왔는지, 앞으로 어디로 흘러갈 건지 스스로 존립하는 삶을 살며 여생을 보내면 단순히 표류하며 살다 늙어서 노인이 된 것이 아닌, 어느새 정말 몸과 마음도 진짜 노인이 되어있을 거다. 불안정한 청춘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힘껏 흔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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