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좀 더 자라나 나를 지켜줄 사람을 갖는 일이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영원히 나를 늘 지켜줄 사람을 갖는다는 건 약한 나의 존재를 얼마나 안정시켜 줄까.
새벽에 혼자 깨어날 때 길을 혼자 걸을 때 문득 코가 찡해질 때 바람처럼 밀려와 나를 지켜주는 얼굴. 만날 수가 없어서 비록 그를 향해 혼잣말을 해야 한다 해도 초승달 같이 그려진 얼굴. 그러나 이 일방적인 마음은 상처였다. 내가 지켜주고 싶은 그는 정작 나를 지켜줄 마음이 없었으므로.
이기적으로 보면 한없이 이기적일지라도 아직까지는 그런 당신에게 품은 애(愛)를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당신의 곁에 머무르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기대와 희망을 품고, 좌절을 하고 슬픔을 흘려야 할까.
어제는 밤새 내리는 비 소리를 들으며 한없이 기분이 가라앉았다. 하나 둘, 제 자신의 미운 부분을 떠올리다 보니 꼭 이런 생각은 잠도 잊은 채 열중하게 되더라. 새벽이 될 때쯤엔 더 이상 사랑받을 자격도,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조차 남김없이 사라진 껍데기만이 남게 되었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싶고, 또 사랑받고 싶다. 왜 이런 마음을 써 내려가는 것에 나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걸까?
아마도 오늘 같은 밤은 또다시 찾아오겠지. 그리고 언제나 그래왔듯이 나는 이 마음을 숨기며 내일을 살아갈 것이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나와 같은 고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할 거라 생각하면 조금은 위로가 된다. 지금은 이른 아침, 아직까지 비가 내리고 있다. 결국 우리는 모두 불안하지만 사랑스러운 존재들이 아닐까. 저 땅 위로 떨어져 위태롭게 흐르는 젖은 꽃잎들처럼.
2.
하고 싶은 말들을 아무에게도 내뱉지 못하고 서성이고만 있는 내가 때로는 참 안쓰럽기도 하다. 쌓여있는 고민들을 뒤로한 채 불안정한 나날들을 보냈다. 참 아름답고 괴로운 시간들이었다.
일과 인간관계, 사랑, 꿈과 미래가 모두 불안정한 지금의 나는 결국 그중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로 당장 주어진 일을 처리하며 ‘하루하루 겨우 버텨내고 있는 중이다’ 이 한 문장으로 나의 현재의 삶을 간결히 정리할 수 있었다.
작년 이맘때 친구와 제주도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지금의 나처럼 불확실한 미래를 앞두고 있는 친구는 그 당시 많은 걱정을 갖고 있었고, 그걸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이야기를 들어주던 때가 떠오른다.
웃고 떠들던 사람들이 있던 숙소에서 잠깐 빠져나와 친구의 고민이야기를 들으며 늦은 밤 함께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에 누워 쏟아지는 별을 보며 서로의 꿈과 미래를 격려했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결국 둘 다 눈시울을 붉힌 채로 숙소로 돌아갔다.
그 시점으로부터 일 년이 흘렀다. 친구는 다음 주면 휴학 중의 3개월의 인턴생활을 마무리하고, 나는 한 달 뒤에 3학년 1학기를 마친다. 그 당시, 친구는 정말 불안정하고 위태로워 보여서 너무 걱정이 됐는데, 결국 씩씩하게 인턴생활을 마무리하고 곧 복학을 앞두고 있는 그녀가 동경스럽고, 대견하고, 한편으로는 참 부럽기도 하다.
여전히 내겐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었다. 이 시간이 지나면 어떤 형태로든 그 불안정함을 받아들이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야. 그렇게 계속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게 여태까지의 내 삶이었다.
좋아하는 마음이 들면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외치면서 살고, 싫으면 스스로 의심하지 말고 그냥 나도 싫은 게 있을 수도 있지 하고 싫어하고자 한다. 나를 괴롭히는 것들에게는 당신은 내게 상처를 입힐 권리가 없다고 말할 거고.
일도, 인간관계도, 사랑과 꿈과 미래도. 더 이상 확률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