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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punyee Feb 27. 2021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공황장애와 결혼#19)

행복한 이 순간들이 꿈만 같다. 언제든 깨어나면 사라지는 꿈 말이다.

나와 그녀의 나이차가 11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니 약간은 위축된다. 말과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오히려 몰랐을 때가 좋았다. 하지만 그녀도 어느 정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나를 만나러 왔을 것이다. 너무 위축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내 커피잔의 커피가 어느 정도 바닥을 보이자 종업원이 와서는 이내 채워준다. 다행이다. 한두 차례 대화가 끊겨 어색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려고 할 때 커피를 채워주는 종업원이 고맙게 느껴질 정도다. 대화 내용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있었던 여행의 기억을 곱씹는 내용과 내가 어떤 상황에서 그녀를 보고 있었고 그때마다 어떤 느낌을 갖고 있었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그렇게 우리는 약 두 시간의 긴 대화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었지만 오늘 만남이 마지막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시간은 벌써 저녁 9시가 다 되어간다.


집에까지 차로 바래다준다고 하자 그녀는 한사코 괜찮다며 사양한다. 마치 미국에서 그녀의 동생에게 100불을 건넸을 때 사양했던 모습과 비슷하다. 하지만 우리 회사 근처까지 직접 와준 그녀와 차만 마시고 헤어져야 하는 오늘의 내 아쉬운 심정을 강력하게 어필했다. 사실 그녀의 집이 내가 살고 있었던 곳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고 우리 집으로 다시 가려면 약간 부담스럽긴 하다. 밤에 혼자 운전하다가 그놈을 만나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에 가급적 밤에는 혼자 운전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녀를 바래다주고 대리운전을 해서 집으로 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녀를 집에까지 바래다주고 싶다. 보통은 공황장애 증상이 언제 나타날지 몰라 늘 미리 계획하고 머릿속으로 동선을 짜고 가능한 그러한 상황을 피하려고 했던 내가 오늘은 다르다. 그놈에 대한 불안은 잠시 잊고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필사적이다. 내가 이토록 적극적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과거 결혼 소개업체를 통해 만났던 상대들에게 이렇게 진심으로 대하지 못했던 것도 결국은 이 정도로 그들에게 마음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지금 나에게 이 사람은 공황장애 증상이 올 수도 있다는 두려움보다 함께 더 있고 싶다는 간절함이 큰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 꼭 그녀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결국 그녀는 내 차에 탔고 그렇게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집은 회사가 있는 서울시내 중심가에서 차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당시 내가 살고 있던 분당과는 약 50분 정도의 거리다. 집에 가는 동안 나는 그녀가 우리의 나이 차이를 느끼지 못하게 하려 노력했다. 관심이 없었던 아이돌 이야기, 20대 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슈 등에 대해 먼저 말을 꺼냈다. 아마 그녀도 이런 나의 어설픈 노력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가는 동안 약간의 어색한 분위기가 더러 있긴 했으나 다행히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고 나는 낯설지만 왠지 앞으로 자주 올 것 같은 그녀의 동네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한국에서 우리의 만남은 이렇게 2015년 8월에 시작됐다. 그녀도 첫 만남에서의 나에 대한 느낌이 나쁘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날 이후 계속해서 만나자는 나의 제안에 매번 승낙을 해주었고 그러다 보니 우리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이나 만나게 됐다. 당연하겠지만 만남의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그녀에 대해 하나씩 자세하게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우리는 소위 사귀는 관계로 발전되기 시작했다.

법학을 전공한 그녀는 대학 졸업 이후 바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고 한다. 약 2년 동안 준비를 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일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미국 여행도 아버지의 회사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녀오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제야 조금씩 그녀에 대한 궁금증이 좀 풀리는 것 같다. 또한 많은 딸들이 그렇겠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어머니와 매우 가깝게 지내며 자신의 이야기를 허물없이 모두 공유하는 사이라고 한다. 최근에 나와 만나기 시작한 내용에 대해서도 어머니는 모두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나이 차이를 그녀의 어머니도 알고 있을 텐데... 어머니의 반응이 궁금하다. 하지만 묻지는 않았다. 그녀는 크게 개의치 않아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먼저 나서서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싫었다. 나는 그녀와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분명 주변의 반대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반대가 무서워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 사람이다!’라고 느낀 이상 내 모든 것을 다 주리라 마음먹는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아버지 회사에 출근하게 된다면 분명히 우리가 만나는 횟수도 줄어들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를 최대한 자주 만나는 것이다. 우리는 거의 하루에 한 번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만났다. 평일에는 나의 퇴근시간에 맞춰 그녀가 우리 회사 근처로 와주었다. 주말이면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다. 사실 회사 주변에서 자주 만난 이유는 서울 시청 주변이 여기저기 갈 곳이 많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닌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우회하여 알리려는 목적이 컸다. 부끄럽지만 38세인 내가 이성에게 내세울 수 있을 만한 것들은 거의 없다. 재산이 많거나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그렇다고 큰 키와 훤칠한 외모를 갖은것도 아니다. 다만 나를 알고 있는 많은 주변 사람들이 나를 꽤 좋아해 주고 호평을 한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다. 즉, 주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우리의 모습이 노출되면 제삼자로서의 그들이 나에 대한 좋은 말을 해줄 것을 알고 있었기에 회사 주변에서 자주 만났던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길을 다니다 우연히 만나는 회사 사람들 그리고 회사 주변에서 식당, 커피숍 등을 운영하시는 사장님들 까지도 응원을 해줬다. 심지어 손님들과 자주 갔던 노래방 사장님까지도 업소 앞에서 호객행위를 하면서도 우리를 응원을 해준다. 아주 고맙다.


이렇게 보통의 연인들과 별다를 바 없는 데이트를 시작한 지 약 3주 정도가 흘렀다. 이 짧은 기간 동안 거의 매일 만난 것 같다. 확실한 것은 둘이 같이 있는 동안에는 한 번도 그놈이 오지 않았다. 그녀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간혹 공황장애 증상이 와서 당황한 적은 있었지만 이전과 달리 그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정도였다. 공황장애를 처음 겪었던 시기에는 그놈이 왔을 때 무척이나 무섭고 죽음을 느낄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전과 달리 그놈이 와도 ‘쓰러져 정신을 잃을 것 같지만 결국은 잃지 않는다’, ‘짧게는 20분, 길게는 30분만 버티면 이 증상은 사라진다’ 등 나름대로의 대처법과 다스리는 방법이 있었고 이 방법은 곧잘 통했다. 그렇다고 방심하지는 않았다. 방심하다가 항상 크게 당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나의 상황을 그녀에게 언제 알려야 할지 고민이다. 그녀와의 만남이 잦아지고 더욱 좋아질수록 죄를 짓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다.


다음 주부터는 그녀가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회사는 집에서는 약 1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아버지의 회사가 마땅한 교통편이 없는 곳에 있던지라 당분간 아버지와 같은 차로 출근을 하고 같이 퇴근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항상 아버지가 움직이는 시간에 맞춰 출퇴근을 해야 한다. 불편한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다른 직원들의 눈에도 좋게 보일 리가 없다. 그래서 서둘러 차를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순간 주말에만 사용하여 평일에는 거의 주차만 되어 있는 내 차가 떠올랐다. 평일의 경우 회사에서 제공되는 업무용 자동차가 있어 거의 전용으로 이것을 이용하기 때문에 사실상 내 개인 자동차의 경우 거의 사용을 하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다. 2012년 도에 구입하여 만 3년이 됐지만 아직 3만 킬로미터도 운행을 하지 못했다. 나는 불쑥 혹시 괜찮다면 내 차를 사용하는 것이 어떨지 물었다. 여성들이 운전하기에도 적당한 크기이며 더구나 다자인도 젊은 여자들이 좋아할 법한 나름 괜찮은 차라고 강조했다. 이런 제안에 그녀는 당황스러운 눈치다. 나는 그녀에게 또다시 설득하기 시작했다.


내 생각은 이렇네요. OO 씨가 내 자동차를 탈 때마다 내가 생각나지 않을까요? 그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네요. 더구나 우리가 결혼하게 된다면 어차피 내 차를 사용하게 될 테니 굳이 지금 새 차를 살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설득하려는 의도는 좋았으나 결혼이라는 말에 그녀가 놀라는 눈치다. 솔직히 나도 내가 말을 하고 조금 놀랐다. 물론 내 맘속에서 나는 이미 그녀와의 결혼생활을 그리며 그녀를 만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만난 지 3주 만에 불쑥 결혼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좀 빠르지 않았나 한다. 하지만 나는 내심 ‘난 당신을 결혼상대로 생각하고 만나고 있다’라고 내 마음을 전달을 한 것 같아 좋았다.


이런 나의 제안에 그녀는 부모님과 상의를 해보고 알려주겠다고 한다. 하기야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으니 이미 어떤 차를 사야 할지 서로 얘기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상의도 없이 내 제안을 덥석 받아들여 낯선 남자의 차를 집에 끌고 간다면 가족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혼자 오랫동안 살면서 모든 것을 나 혼자 결정하고 마음이 가는 대로 처리를 해왔던 나와는 무척이나 다른 그녀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욱 좋아 보인다. 마치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애정과 보살핌을 받고 자라고 있는 모습에 나 역시도 그녀를 그렇게 대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내 제안이 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도 섭섭한 마음은 전혀 없다. 조금 이르긴 했지만 그만큼 내 것을 당신에게 준다고 해도 아깝지 않다는 감정을 표현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나의 이런 제안으로 인해 우리의 관계가 더욱 빨리 전개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9월이 됐다. 우리가 만난 지 어느덧 한 달 정도 접어든다. 그녀가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평일에 만나는 횟수는 조금 줄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하루가 멀게 만나고 있다. 연애 초기라면 어떠한 커플도 그렇겠지만 난 11년이라는 나이 차이, 그리고 공황장애 사실을 아직 알리지 않은 것을 죄라고 여기며 더욱더 그녀에게 잘하려고 노력했고 최대한 배려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소위 사귀고는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전혀 모르기 때문에 사귀고 있는 지금의 관계가 나에게는 그저 환상과 같았다. 이렇게 만나고 있지만 언제든 없었던 것이 될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심지어 하루 종일 만나고 집에 돌아와 그녀의 얼굴을 떠올려도 얼굴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진을 봐야 '아, 이렇게 생겼었지.'라고 기억이 날 정도다. 마치 언젠가는 잊어야 하니 뇌에서 일부러 그녀의 얼굴을 기억하지 않으려고 하는 듯 말이다. 그 정도로 꿈만 같은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주말에 부모님이 좀 보자고 하세요.” 


귀를 의심했다. 우리가 만나기 시작한 지 고작 한 달이 지났는데 부모님을 만나다니. 너무 이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을 들어보니 그녀의 아버지께서 먼저 만나자고 하셨다고 한다. 다 큰 딸이 11살이나 차이나는 노총각을 만나고 다닌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됐고 더구나 이놈이 애지중지 키운 본인의 딸에게 선뜻 자신의 차를 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는 사실에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직접 만나봐야 하겠다는 것이다. 드디어 걱정했던 일이 현실로 닥쳤다. 그녀의 부모님, 특히 아버님이 보기에는 충분히 나라는 존재를 의심할 수 있다. 혹시 뭔가를 치밀하게 계획 중인 사기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내가 그녀의 아버지라고 해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큰일이다.


2015년 9월 5일(토), 이틀 후면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야 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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