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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punyee Jan 22. 2021

공황장애를 인정하니 후련하구나 (공황장애와 결혼#7)

정식으로 공황장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늘은 눈여겨봐 뒀던 집 근처의 심리상담센터에 가는 날이다. 만약 정신과에서 약을 권하면 심리상담센터에 가보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상담센터는 약을 처방하지는 않을 테니.. 가능한 약을 복용하기는 싫었다. 이곳은 이전에 다녀온 정신과 의원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접수를 하면서 살짝 주변을 살폈는데 미술심리치료가 전문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순간 잘못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상담실에 들어서자 40 후반 정도의 여자 교수가 나를 맞이한다. 부티나며 새하얀 피부가 왠지 명문대학에서 높은 교육을 받았다는 느낌이 든다. 직함에 의미를 두는 편은 아니지만 책상 위에 놓인 명패에 적혀 있는 교수라는 직함이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간다.


이 교수는 본래 미술치료가 전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공황장애와 관련하여 많은 상담 경험이 있으니 편하게 말해보라고 한다.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일에 대해서 빠짐없이 하나하나 털어놓았다. 그렇게 나만 일방적으로 30여분 가량은 이야기를 한 것 같다. 그렇게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는데 교수는 계속하여 고개를 끄덕여 줬으며 중간중간 충분히 내 맘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줬으며 중간중간 ‘아, 그렇군요.’ 라며 내 이야기를 경청해 주었다. 되뇌고 싶지 않았던 기억들이지만 상대가 적극적으로 내 이야기를 경청하니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더욱 몰입해서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심지어 얼마 전의 병원에서 너무 쉽게 공황장애이니 약을 먹으라는 말이 나에게는 상처였다고 일러바치기 까지 했다.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끝내자 마음이 후련했다. 얼마 전 병원에 처음 방문했을 때 내가 원했던 의사의 모습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내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교수의 대답은 꽤나 간단명료 했다. 정황상 확실히 공황장애로 판단이 되니 이를 인정하고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자신 같은 상담센터나 정신과 병원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지금 내가 이런 증상을 겪는 것에 대해서 역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한다. 즉, 나이가 더 들어 몸이 약해진 상황에서 이런 마음의 병까지 만나면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치료가 어려울 테니 지금 건강할 때 이런 증상이 왔으니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60세 이후에 공황장애 증상을 처음으로 경험할 경우 젊은 사람에 비해 우울증으로 이어져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결론은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마음의 병이다. 아직 젊은 나에게 일찍 찾아온 것은 오히려 행운일 수 있다.’ 매우 간단했다. 그토록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지만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울러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이런 공황장애로 고생을 하고 있으니 필요할 때에는 적극적으로 알리고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고 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어떻게든 버티려 했고 그게 여의치 않자 구급차를 찾거나 익숙한 사람들에게만 의지하여 결국 그들에게 민폐를 끼쳤다.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젊은데 빨리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감추지 말고 말해라.’ 이 세 가지로 결론이 나고 이를 수용하기로 마음먹자 솔직히 상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무엇인가 해결책을 찾은 기분이다. 상담료를 지불하고 센터를 나서는데 교수가 같이 나오면서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한다. 더욱 신뢰가 간다.




상담을 마치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발걸음은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가볍고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매우 산뜻한 기분이다. 여기에 본격적으로 봄으로 접어든 날씨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응급실을 갔던 날부터 지금까지 이미 약 한 달 동안 20년가량 피워왔던 담배도 피우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피우지 않을 것 같은 강한 확신이 들었다. 그런 생각만으로도 매우 건강해진 것 같다. 공황장애를 인정하려고 처음으로 마음을 먹은 만큼 이번 기회를 계기로 최대한 건강해지자고 마음을 먹는다. 집에 돌아가면 당장 지하의 헬스클럽에 등록하여 오늘부터 운동을 하리라 맘을 먹는다. 10년 이상 먹지 않았던 아침 식사를 챙기려고 한다. 건강식이면 좋겠다. 두부 반 모 정도면 어떨까. 아니면 바나나가 좋을까. 난데없이 지금까지의 모든 생활패턴을 바꾸고 새롭게 시작하려고 하자 자신감마저 넘쳤으며 새롭게 태어난 것 같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오자마자 병원에서 받아 왔던 약을 하나 먹었다. 이번에는 공황 증상도 없었지만 주저 않고 그냥 먹었다. 원래 병원에서 아침에 저녁에 하나씩 하루에 2회 복용하라고 했던 그  약이다. 내일부터는 계속 그렇게 해야겠다. 서둘러 지하로 내려가 헬스클럽에 등록했다. 1년을 등록하고 당장 근력운동을 시작했다. 상담을 받으면서 들었던 내용인데 사춘기 때 많은 아이들이 방황하는 이유는 소위 2차 성징 때문이라고 한다. 몸이 바뀌면서 원래 알고 있던 자신의 몸과 지금의 몸이 달라지면서 느끼는 일종의 심경변화라는 것이다. 하지만 젊은 상태라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이를 극복하게 마련이다. 시기는 다르지만 갱년기도 비슷한 예라고 할 수 있다. 폐경이 오거나 쉽게 피로하고 얼굴이 화끈거리거나 식은땀이 자주 나는 등등 지금까지 알고 있던 본인의 몸과 갈수록 안 좋은 쪽으로 변하는 자신의 몸을 대하면서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고 이것이 우울증으로 이어져 심할 경우 급기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임신 중인 여성들이 몸이 변하면서 느끼는 감정도 비슷한 예일 것이다. 물론 모두 젊기 때문에 충분히 무리가 없이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문제는 70세 이상의 노인들의 경우다. 젊은 사람들과는 달리 이들에게 위와 같은 증상이 오게 되면 체력적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아 젊은 사람들과 달리 극복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가만 생각해보니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우리 할머니가 70세 후반 즈음 화장실에서 실수로 넘어지셔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은 후 의사와 면담 시 의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다리뼈가 골절이 된 상태인데 금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는 의사의 말이었다. 다리가 골절됐는데 어떻게 길어야 일 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것인가 하고 이해가 가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아마도 비슷한 맥락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체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왜 건강한 신체가 먼저 나왔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오늘 등록했지만 당장 운동을 할 것이다. 첫날이니 1시간을 넘기지 않고 가볍게 시작했다. 러닝머신은 하지 않았다. 운동이 끝나면 요 며칠 해왔던 2시간 코스를 다시 걸을 생각이기 때문이다. 헬스클럽을 마치고 두 시간 걷기까지 마무리했다. 돌아오는 길에 집 앞의 마트에 들러 아침식사 대용으로 두부, 바나나, 토마토 등 먹으면 건강할 것 같은 신선식품 등을 샀다. 들뜬 기분에 보름 이상은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을 샀다. 그렇게 나는 공황장애를 정식으로 받아들였다. 이제부터는 이놈과 이별하기까지 이놈을 달고 지금까지 해왔던 일상생활을 할 준비를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공복에 조그맣게 3알로 구성된 약 한 봉지, 저녁에 식사를 마치고 나면 다시 한 봉지 이렇게 습관적으로 복용을 꾸준히 지키며 살고 있다. 놀랍게도 매일매일 몸과 마음이 가뿐하다. 물론 몇 개월 넘게 금연 중이며 헬스클럽 및 매일 2시간 걷기 운동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하고 있다.

잦은 술자리가 걱정이었지만 가급적 1차로 마무리를 했으며 약간 취한 상태에서도 2시간 걷기는 꼭 지켰다. 국내외의 잦은 출장의 경우 출장지에서 어떻게든 걸어서 이동하고 그렇게 못할 경우에는 모든 일과를 마치고 숙소 주변을 걷거나 숙소 내에서 팔 굽혀 펴기와 같은 운동으로 헬스클럽에서 했던 근력운동을 대체했다. 심지어 내일이 출장인데 이곳으로 출장을 가게 되면 시간이나 스케줄이 맞지 않아 절대 운동을 못할 것 같다는 판단이 들면 내일의 운동량을 오늘 미리 해버리는 습관도 생겼다. 하루는 술자리가 길어져 저녁 11시 즈음에 집에 들어온 적이 있는데 술이 제대로 깨지 않은 상태로 운동을 하다가 운동기구에 앉아서 졸았던 적도 있다. 한 번 시작했으니 꼭 지키고 싶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을 정도였다.


지금도 지난 3월 쓰러졌던 일본에 있으며 당시 새벽에 구급차가 왔었던 같은 호텔에 있다. 그럼에도 2시간 걷기, 근력 운동을 모두 마친 상황이다.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뭔가 루틴을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 공황장애 증상이 한 달 이상 오지도 않았으며 매일매일의 몸과 마음이 너무 상쾌하고 왜 지금까지 이렇게 하지 못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반문할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다. 물론 약의 효과라고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아마도 나는 약보다는 금연, 음주 절제, 꾸준한 운동 이 세 가지가 훨씬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세 가지에 대해서는 지키지 못하면 다시 그 망할 놈의 공황장애 증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것을 지키려는 일종의 '행동 패턴'일지 모른다. 어찌 됐든 모든 상황은 긍정적이다.


지난 3월 공황장애 증상을 일본에서 처음 겪은 이후 세 번의 응급실행을 경험했으며 크고 작은 소위 공황발작을 열 번 이상을 경험했다. 하지만 약을 먹고 운동을 하기 시작한 이후 약 한 달이 지난 5월의 지금은 공황발작은 없었으며 매일매일의 컨디션이 좋다. 20년 피웠던 담배를 끊게 해 준 공황장애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내일은 결혼 상대를 소개해 주는 업체의 네 번째 만남이 있는 날이다. 사전에 미리 받는 프로필 정보를 보니 설렌다. 왠지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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