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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윤 Sep 04. 2023

네이버 블로그로 18살 때 작가가 되었던 과정

17살의 나에게 배우는 네이버 블로그로 퍼스널 브랜딩하기


이 이야기는 아직까지 어디에 가서도 말한 적이 없다. 왠지 모르게 유명해지려 뒤에서 애를 쓰던 과거의 내가 부끄러웠다. 그러나 이제는 말하고 다니려 한다. 왜냐하면 12년 전의 내가 꽤나 영리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마 이 내용은 이 글을 보는 대부분의 분들이 놓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글을 끝까지 읽는다면 네이버 블로그에 대한 당신의 시야가 한결 넓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2가지를 고르라고 하면, 17살 때 네이버 블로그를 시작한 것25살 때 첫 직장을 과감하게 그만 둔 것을 꼽을 것이다. 그러나 후자 역시 전자의 영향을 받았기에, 네이버 블로그는 정말이지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꾸준히 할 수 있냐?"고 물어볼 때마다 나는 "얻어가는 게 있으니 그렇다."고 대답한다. 내가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라고 성과도 없는 것에 수 년째 매달리고 있을까. 나는 상당히 참을성이 부족하고 효율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공부 블로거가 되고 싶다


이 이야기는 12년 전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2011년 시절로 돌아간다. 당시 친했던 친구 중 한 명이 중학생 때부터 팬 블로그로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했는데 (가수 샤이니의 팬이었다.) 혼자 하기 심심하니 함께 하자고 했다.


나는 그 때서야 미성년자도 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소위 ‘공부 블로그’라고 불리우는 분야가 인기가 많았는데, 이미 네임드였던 분들은 2009년경부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그들은 온라인을 통해 수많은 기회들을 얻고 있었는데 재미나게도 그 중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것은 ’문구류 협찬‘이었다. 한 달 용돈 2만원이었던 나에게 월 5만원 가량의 문구류를 마음껏 고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메리트로 보였다.


게다가 각종 대외활동을 하는데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공부 계획과 성과에 대해 보여주는 일이 나 스스로를 다잡아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사실 공부에 방해가 되면 그 때 그만 두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011년 4월, 무작정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포스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조차 없었기에 내가 동경했던 몇 명의 양식을 보고 내 방식대로 바꿔서 올리곤 했다. 그렇게 2달동안 약 20개의 글을 작성했다. 나름대로 꼼꼼하게 분석한 결과였기에 무언가 작은 성과라도 생길 거라 기대했다. 어떻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네이버 검색 로직은 정말 무식했고 더 심각한 건 나는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몰랐다. 유명한 사람들만큼의 퀄리티를 갖추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내 것도 봐줄 거라는 헛된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꾸준히 좋은 성적을 받아왔던 나는 학교 공부 틈틈이 시간을 내어 글을 써오면서 나름의 리스크를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도대체 저 잘 나가는 친구들보다 내가 못한 게 뭔데?‘라는 마음에 자격지심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내가 더 많이 알려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함께 시작한 다른 공부 블로거들과 쪽지도 주고 받으며 꽤나 이런저런 노하우를 알게 되고 또 알음알음 해봤다. 그러던 중 네이버 메인에 걸릴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는데, 그걸 시도해보면서 내 인생의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네이버 메인에 뜨고 싶어서


그 시절에는 네이버 관리자들이 드나 든다는 한 유명한 카페가 있었고, 거기에 자신이 쓴 글을 올리면 관리자가 보고 메인에 등록시켜준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실제 반영이 되었다는 후기들도 여럿 있었던 걸로 보아 단지 떠도는 헛소문은 아닌 듯 했다.


이거다 싶었다. ‘진짜 되나?’ 의심할 시간도 없이 곧바로 내가 썼던 글들 중 그나마 반응이 좋았던 것들을 몇 개 골라 카페에 올려보았다. 나름 열심히 선별했지만 당연히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에 수백, 수천 개가 넘게 올라오는 글들 사이에서 특별할 게 없는 내 글이 눈에 띌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름의 전략을 세웠다. 마침 7월 중순, 방학을 앞둔 시점이기에 ‘방학 계획표’를 주제로 포스팅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날로 내가 공부했던 기록들을 모아 올렸다. 본문과 함께, 대한민국의 10대들이 모두 관심을 가질 주제라는 말 한마디를 덧붙였다. 어떻게 됐을까?



쪽지가 왔었던 흔적을 찾았다!


통했다. 카페에 내 글을 어필한 지 이틀 뒤, 네이버 관리자로부터 쪽지가 왔고 바로 그 다음 날 내 글이 네이버 메인에 올라갔다. 그리고 그 날 하루에만 50만 명이 내 블로그에 방문했다. 댓글만 1600개가 넘게 달렸다.




네이버 블로그 통계가 대대적으로 업데이트되면서 이 당시 통계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게 아쉽지만, 달렸던 댓글들을 통해서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다.





이 글을 쓴다고 1600개의 댓글들을 쓱 훑어봤는데 너무 재밌어서 조만간 유튜브 콘텐츠로 활용해보려 한다. 오늘의 주제에서는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이에 대해서 언급하지는 않겠다.



순식간에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당시 나는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뭣 모르던 17살이었지만 어찌어찌 하루에 50만 명의 트래픽을 가지고 온 것이다! 근데 그 때는 정말 감이 없었다. 하루에 약 1만 명 이상의 방문자가 와도, 대충 쓴 글 하나에 댓글이 200개씩 달려도 잠깐 그러다 말겠지 싶었다. 근데 꽤나 오랫동안 기세가 지속됐다.


그 때 나는 여전히 키워드고 뭐고 몰랐다. 상위노출 방법? 그런 거 생각도 안 했다. 하지만 내가 쓰는 볼펜을 하루에도 10명씩 궁금해했다. 하도 많이 물어봐서 글마다 사용한 펜 브랜드를 적어두었다. 반에서 상위권 학생은 어딜가나 널렸을텐데 또래 친구들은 굳이 내 블로그에 와서 공부법을 물었다. 흔하디 흔한 정석과도 같은 말이었겠으나 내 말이 도움이 되었다며 쪽지며 메일이 매일같이 밀려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이유는 '퍼스널 브랜딩'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던 학생의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이 되었고, 이후로도 꾸준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어찌보면 일관성 있는 메세지를 잘 전달했던 것. 지금의 내가 놓치고 있던 걸 고작 17살의 나는 잘 하고 있었다.





책을 쓴 건 빙산의 일각이었다


제목에 '작가가 되었다'고 했지만 사실 책을 쓴 것은 내가 했던 경험들 중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하루에도 몇 통씩 협업 제안 메일을 받았고, 여러 신문사들에서는 인터뷰 제안도 왔다. 하지만 대부분 거절했다. 왜냐하면 나는 학생이었고, 당연히 당시 나에게는 학업이 1순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써보는 것은 달랐다. 살면서 내 이름이 적힌 책이 서점에 진열되는 경험은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하기 어려울 것 같았고, 공동 저자 4명과 함께 쓰는 것이라 하여 분량적인 부분에서도 큰 부담없이 도전해볼 수 있었다. 그렇겐 나는 방학 기간에 짬을 내어 원고를 작성했고, 그로 인해 18살에 ‘작가’라는 타이틀도 가져볼 수 있었다.


이 책은 당시 꽤나 인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솔직히 초판에서 끝날 줄 알았는데 3쇄까지 찍고 2020년에는 리뉴얼 버전으로 새로 출간이 되었다.



파란만장했던 고등학교 생활


당시 내가 공부 블로그를 한다는 사실이 꽤 많은 실제 지인들에게 알려지면서 부담감 역시 상당했다. 그래서 마음이 흔들릴 겨를이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를 제외하고는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는데(고등학교 2학년 때 우리 반에 전교 1등이 있었다.) 성적이 떨어지면 사람들이 나를 우습게 여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컸다. 그래서 더욱 종종 학교와 모의고사 성적표를 블로그에 인증하곤 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수능을 보기 좋게 망했다. 나는 이과였는데 지망하던 학과에 가려면 못해도 수학 2등급의 상위권이어야 했고, 그 압박감이 너무 컸던 나머지 수학 점수가 기대에 못 미칠 것 같자 나머지 과목들도 반쯤 포기한 채로 풀었다. 내 인생 가장 큰 쓴맛이었다. 모두가 재수를 권했지만 나는 정말 더 공부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만큼 수능 공부에 있어서 진심이었고, 최선을 다 했다. 그렇게 정시로 한 간호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블로그는 여전히 기회다


그 뒤로 방황기가 꽤 길었다. 간호학과는 적성에 맞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열심히 다녀 희망하던 대학병원에 취직도 성공했다. 그리고? 그 뒤의 퇴사 이야기는 내 브런치에 자세히 나와있다.


그럼에도 블로그는 꾸준히 놓치지 않았다. 그가 가진 엄청난 힘을 느껴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맛만 봤을 뿐, 제대로 된 온라인 상태계를 알고 있지는 않았다. 본격적으로 수익화를 시작했던 건 2019년, 퇴사한 이후 홀로서기를 시도했을 시점이지만 그 당시에도 반만 알고 반은 모르는 상태였다.


고등학생 때와는 정반대로 단지 많은 트래픽에 노출시킬 수 있는 광고판 정도로 치부해버렸던 것이 가장 큰 패착이었다. 이미 충분히 훌륭한 재료들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걸 가지고 꿀꿀이죽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황금같은 기회를 날리고 다시 0에서부터 시작하자고 마음 먹은 지 2달 정도가 지났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새로 만들었고,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내 블로그는 한차례 저품질을 맞고 나서 ’준최6‘에 해당하는, 누구나 마음 먹으면 끌어올릴 수 있는 수준의 아주 평범한 잡블로그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충분히 수많은 기회들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블로그를 겉핥기식으로만 아는 사람들은 단지 투데이 수와 지수에만 집중한다. 그걸 광고판으로만 사용하려 한다면 그게 맞는 방향이다. 하지만 브랜딩의 효과를 찍먹해 본 사람으로서, 이런 방향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들이는 시간 대비 효과를 보려면 꽤 큰 리스크를 져야한다는 것을 안다. 네이버의 알고리즘은 지금도 변화하고 있고, 앞으로 AI가 도입되면서 그 경쟁에서 살아남는 일은 더욱 어려워질테니까.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당장 투데이 수를 100에서 1000으로 올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블로그 강의는 하지 않으려 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잘 알려주고 있기도 하고 이 정도는 검색을 통해 어느 정도 스스로 터득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이 또한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하는 일이기에 정보를 잘 모아둔 전자책 정도는 소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추후 한다고 해도, 나의 가치를 쌓아올리고 더 나아가 수익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


어느 정도 정석의 방법을 아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온라인 수익화를 위해서 꼭 네이버 인플루언서가 되어야 한다던가, 최적화 블로그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틀렸다.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분명 더 효과를 볼 수 있는 방식은 다르며 무엇보다 블로그는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수단으로써 네이버 블로그는 여전히 너무 훌륭하며 놓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 등이 더욱 빠른 시간 내에 자극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보일 지 몰라도, 텍스트 기반의 네이버 블로그가 가지는 힘은 독보적이다. 이걸 꼭 알았으면 좋겠다.


이상, 2012년과 2019년의 나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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