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 아니 두 부류의 직장인이 있다. 등 뒤에서 모니터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져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이런 분석을 하는 것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듯이 나는 100%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사실은 알고 있다. 특별할 것 없는 나의 업무 화면을 누군가 일부러 감시하고 있을 리도 없고, 잠시 시선이 머물더라도 그저 우연에 불과하다는 것을. 남들의 모니터 화면을 보고 뭘 하는지 궁금해할 정도로 사람들은 여유롭지 않다. 하지만 아무래도, 모니터라는 물건은 지나치게 크고 밝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앞에 앉아 있으면 나의 모든 것이 만천하에 공개되어버리는 느낌이 들곤 한다. 업무 반, 잡생각 반을 한창 하고 있는 와중에 등 뒤로 인기척이나 시선이 느껴지면 속옷을 안 입은 사람처럼 의기소침해진다. 물론 정신없이 바쁠 때는 그런 걸 신경 쓸 겨를도 없긴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내가 쓰고 있는 글씨를 짝꿍이 보는 게 싫어서 괜히 어정쩡한 팔 동작을 하며 공책을 가리곤 했다. 입시 미술 학원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선이 느껴지면 괜히 물감을 섞거나 도구를 정리하는 등 딴청을 부렸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숫기가 없고 내성적이었기 때문에 증상이 더 심했다. 어쨌든 이렇게 타고나버린 성향은 세월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지, 여전히 모두가 나에게 신경을 끄고 있는 상황에서 일이 가장 잘 된다. 하지만 회사에 다니면서 그런 식으로 일을 하는 건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럴 때면 업무 공간의 존재 의의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업무만을 위한 공간’이라 함은 분명 모두에게 평균적으로 가장 쾌적한 업무 환경을 제공해야 할 텐데… 하긴, 사무실 구성원 중 누군가는 파티션도 없고 서로의 업무 화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이 시원스러운 인테리어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안타깝지만 그게 내가 아닐 뿐. 대체 나는 언제쯤 커다란 모니터 앞에서도 의연해질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누군가가 나의 ‘중간 과정’을 보는 게 싫다. 물론 계획대로 착착 일을 진행하는 사람도 세상에는 많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중간 과정은 결과물에 비해 엉망진창이다. 쓸데없이 자존심 센 나는 그 지저분한 모습을 비밀로 남겨 두고 싶어 누군가의 시선에 자꾸만 의기소침해지는 것이다.
팀 단위로 돌아가는 회사의 프로젝트처럼, 서로의 중간과정을 낱낱이 공유해야 하는 일은 어쩔 수 없이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오직 나만이 그 중간 과정을 목격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예를 들어 1부터 100까지 내가 직접 쓰고 그리는 글과 그림이 그렇다. 이 경우에는 이것저것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저질러보며 내 방식대로 성장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얼마든지 자존심을 세우고 고집을 부려도 된다. 반면 남들의 멋스러운 결과물과 나의 비루한 중간과정을 비교하며 시무룩해질 수 있다는 부작용도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엉망진창 그 자체인 중간 과정을 견디는 일도 수백 번 반복하다 보면 적응이 된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자괴감과 절망감을 견디고 마침내 하나의 결과물로 수습해낸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 자신을 좀 더 믿게 된다. 문득 그 사실을 깨달을 때의 놀라운 상쾌함과 뿌듯함이 내가 계속해서 쓰고 그릴 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