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려버린 노래-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by 바삭

어떤 한 노래에 빠지는 과정에는 좀 신비로운 면이 있다. 마치 이상형을 만나 첫눈에 반하듯, 이유를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이유를 생각해보게 되는 건 그 다음 순서다.


나의 경우에는 음악을 들을 때 기분, 날씨, 상황 등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한강에서 자전거를 탈 때는 시원한 악기 연주 소리로 가득 찬 밴드 음악을 선호하고, 아침 스트레칭을 할 때는 잔잔하고 기분 좋은 재즈나 최신 팝 음악을, 일할 때는 가사가 없는 음악을 주로 듣는다. 에너지가 필요한 출근길에는 당연히 K팝이다.


얕고 넓은 음악 취향을 가진 만큼 플레이리스트 만드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꽂히는’ 곡을 만나는 건 흔한 기회가 아니다. 새로운 곡에 꽂히는 빈도가 점점 줄어들고 자꾸 익숙한 음악만 찾아 듣는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오랜만에 취향에 꼭 맞는 보석 같은 음악을 발굴해 내더라도, 맛있는 음식을 가장 마지막에 먹는 것처럼 야금야금 아껴 듣는다. 처음 들었을 때의 날카로운 전율과 설렘이 점점 무뎌지는 게 안타깝기 때문이다. 이것에 질려 버린다면 내 재생 목록은 당분간 신선함을 잃을 것이고, 일상은 다시금 권태로워지리라.





권태로운 일상은 업데이트가 안 된 플레이리스트 같다. 잔잔한 일상이 지나치게 오래 지속되면 나는 너무 많이 재생한 카세트테이프처럼 축축 늘어져 버린다. 새로운 음악을 재생 목록에 추가하듯, 인생에도 주기적으로 새로운 상황, 사람, 사건을 추가해줄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평화롭게 반복되는 일상이야말로 큰 축복인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불만이 날뛰는 것까진 어찌할 도리가 없다. 권태는 분명 사치스러운 감정이긴 하나, 때로는 새로움을 찾아 떠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기도 한다. 역사적으로도 인간은 단지 권태롭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손에 쥔 모든 걸 내려놓고 먼 길을 떠나는 무모한 존재들이었다. 지치지도 않고 말이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새로움이 바로 지척에 있는 경우도 있다. 질렸다고 생각했던 노래가 시간이 조금 지난 뒤 다시 들으면 새롭게 다가오듯이, 새로움은 과거에도 존재한다. 어린 시절에 질리도록 들었던 가요를 커서 다시 들었을 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럴 때면 보물을 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보물은 출발점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아 버린, 한 소설 속의 주인공 같은 기분이 되고 만다.


그러니까 권태라는 건 순전히 내 마음에 달려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일상은 다양한 모습을 할 수가 있다. 어제와 똑같은 풍경을 보며 깨어나고 똑같은 풍경을 보며 잠에 들더라도, 매 순간 새로운 시각으로 그걸 바라보는 순진함이 약간은 필요하지 않을까. 만약 그걸 실천하기가 힘들고 일상에 불만까지 가득하다면, 글쎄다. 재생 목록에 신선함을 불어넣어 줄 새로운 음악을 계속해서 찾아다니는 수밖에. 어떤 방법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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