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기에게 얼마든지 피를 내줄 의사가 있는 너그러운 사람이다. 피 조금 나눠준다고 내 생명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모기들도 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 아닌가. 피해 규모가 약간의 혈액 손실과 간지러움 정도라면 서로 돕고 살자는 마음을 담아 그냥 넘어가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잠을 방해하면 안 된다.
모기들 사이에는 무슨 정해진 법이라도 있는 건지, 인간이 막 잠에 빠져들려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얼굴 가까이로 비행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야 만다. 사실 모기 입장에서는 자기가 지나가는 곳이 귓구멍인지 콧구멍인지 알 수도 없고 알 생각도 없을 거라는 건 인정하지만, 자기 몸집보다 수십 배는 큰 인간의 피를 노리고 있는 마당에 조금만 더 신중할 수는 없나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다.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가 내가 잠들고 나면 허벅지나 발등 같은 곳을 공격하고 유유히 사라질 수는 없는 걸까? 모기와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딱 하나다. "피를 가져가는 건 상관없으니, 제발 잠들기 직전에 귀 옆에서 앵앵거리지만 말아줘." 하지만 그들은 좀처럼 대화를 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여름에 장시간 야외 활동을 하는 건 모기에게 뷔페 식사를 제공하는 꼴이다. 하지만 야외라는 공간적 특성상, 도처에 모기를 비롯한 낯선 친구들이 있을 것임을 충분히 예상할 수는 있다. 나는 이 공간에 잠시 머무는 손님일 뿐이니까. 그러한 이유로 야외 활동을 하고 난 뒤 몸 곳곳에서 모기의 흔적을 발견하더라도 딱히 놀랍거나 화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 방 침대는 모기에게 허락된 영역이 아니다. 침대는 내가 모든 무장을 해제하고 편히 쉴 수 있는 성스러운 공간이다. 모기는 그 모든 암묵적 약속을 무시하고 영역을 제멋대로 넘나든다는 점에서 죄질이 아주 나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잠귀가 어두워서 새벽에 잠에서 깨는 일은 흔치 않다. 하지만 만에 하나 중간에 깰 경우 다시 잠드는 걸 어려워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깊은 새벽,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모기의 힘찬 날갯짓 소리야말로 그 어떤 공포영화의 도입부보다 소름이 끼친다. 아마 그 날개의 주인을 찾기 전까지는 다시 잠들 수 없을 거고, 마침내 주인을 찾아 응징하고 나면 잠이 싹 달아나 버려서 아침이 밝을 때까지 뒤척이게 될 테니까.
한여름 모기와의 전쟁은 소통이 불가능한 적과의 끝없는 공격과 방어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지금은 잠시 평화를 되찾았지만 내년 여름이 되면 또 한 번의 대책 없는 싸움에 불을 붙여야 할 것이다. 나의 온몸에 새로 생긴 모기 자국과, 마찬가지로 내가 저세상으로 보내버린 수많은 모기 시체를 생각하면 올해의 승부 역시 패자만 있을 뿐 승자는 없었다. 언젠가는 인간의 언어를 모기의 언어로 통역해주는 기계가 나오길 꿈꿔본다. 세상 모든 모기와의 전쟁을 끝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 방만큼은 스위스 같은 중립지대로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