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지하철-우리는 꼭 이렇게 가까워져야만 했을까요?

by 바삭

출근 시간대의 서울 지하철은 계절에 상관없이 후텁지근하다. 하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펭귄처럼 옹기종기 모여 서로의 체온을 나누고 있는데 뜨겁지 않을 리가. 매일 아침 8시 20분, 나는 한 마리 펭귄을 자처하며 2호선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살면서 누군가와 이렇게 살을 가까이 붙이고 숨소리를 공유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연인과 가족 외에는 그럴 사람이 없을 것 같다. 가장 친한 친구와도 그런 짓은 안 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은 연인보다도 가까운 사이라고 봐야 하나?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머릿속을 비운다. 생각이 많으면서 동시에 아무 생각도 없다는 건 바로 이런 상태를 말한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서울은 대한민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대도시다. 그러니까 내 주변엔 항상 너무 많은 사람, 너무 많은 건물, 너무 많은 자동차, 너무 많은 간판들이 있었다. 서울은 늘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자극을 주는 곳이었다.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될 법도 한데, 이렇게 타인들의 존재가 지나치게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건 아직도 버겁다.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귀에 이어폰을 꽂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등하교를 시작했던 중학생 때부터 시작된 버릇이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 숨소리, 말소리를 음악으로 지그시 덮어 버리면 그나마 스트레스가 덜하다. 배경음악의 효과는 놀랍다. 아무리 시끄럽고 못생긴 풍경이라도 순식간에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변한다. 출근길 2호선 지하철, 강남대로 번화가,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에서도 이어폰만 있으면 견딜 수 있다.





서울을 향한 나의 감정은 조금 복잡하다. 대중교통이라면 지긋지긋하지만 창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도시의 풍경만큼은 질리지 않는다. 교통체증, 인파, 그리고 매연을 싫어하는 한편, 한강의 노을, 지붕 낮은 가게들이 들어선 오래된 골목, 꼬질꼬질하고 유연한 길고양이들을 사랑한다. 좋은 뜻의 외국어 단어라면 모조리 가져다 쓰는 고급 아파트 이름들도 흥미롭다. 서울 집값을 보며 화를 내면서도 어떻게든 그 사이에 내 한 몸 욱여넣어보겠다고 부동산 공부를 한다. 타인들의 시선을 무시하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동시에 타인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며 살아간다. 나는 양면적인 도시에 사는 양면적인 사람이고 그 점이 가끔 나를 외롭게 만들지만, 그게 꼭 싫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는 완전한 타인들과 살을 부대끼면서 정작 연인이나 가족의 얼굴을 오래 마주할 시간은 없는 이상한 곳. 싫은 것과 좋은 것이 뒤섞여 있는 혼란스러운 도시. 여러 겹의 페스츄리처럼 생긴 이 도시에서는 무얼 마주치더라도 섣불리 어떠하다 단정 지을 수가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서울은 싫은 것들 사이에서도 좋은 것을 발견해내는 방법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는 사실이다. 오늘 아침 출근 지하철에서 어떤 이의 휴대전화 잠금 화면 속 반려동물 사진을 보고 잠시 미소를 지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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