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염-가을이 오면 콧물을 흘리겠어요

by 바삭

피, 땀, 눈물에 비해 콧물은 아무래도 좀 더 부끄럽다.


미디어에서는 종종 ‘동네 바보’나 ‘좀 모자란 사람’ 캐릭터를 콧물과 함께 묘사하는 것 같다. 만화, 영화, 개그 프로그램을 막론하고 '콧물 흘리는 바보' 캐릭터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비염 증상이 도진 나는 콧물을 훌쩍거리며 짱구 친구 맹구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약간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 왜 하필이면 콧물일까? 눈물이나 땀도 스스로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거늘. 왜 유독 콧물을 흘리는 행동이 사람을 ‘모자라 보이게’ 만드는 걸까?


보통 눈물이 많은 사람은 ‘섬세하다’ 라거나 ‘감수성이 풍부하다’ 같은 이미지와 연관 짓게 되고, 땀이 많은 사람은 ‘열정적인 사람’ 혹은 ‘활동적인 사람’ 등의 이미지를 풍긴다. 그러나 나처럼 콧물이 많은 사람은? 그냥 어디가 좀 안 좋은 사람이다. 몸 상태는 아주 좋고 감기에도 걸리지 않았지만 스스로의 의지로 콧물을 통제할 수 없는 비염인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며 모두를 안심시키고 무력하게 코를 훌쩍일 수밖에 없다.


어릴 때는 비염을 고쳐 보겠다고 한약을 지어먹은 적도 있었다. 수업 시간에, 밥상머리에서, 심지어 잘 때도 코를 훌쩍이는 바람에 부모님이 크게 걱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때 내 책가방에는 항상 콧물 전용 티슈가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조용한 수업 시간에 주체할 수 없이 콧물이 흐를 때마다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한약을 지어먹은 건 너무 어릴 때라 성분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증세가 호전되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원상태로 돌아왔지만.


비염은 쉽게 완치되는 병이 아니다. 아주 건강한 상태인 요즘도 눈과 코가 동시에 간질간질하며 금방이라도 재채기가 나올 것 같은 (그렇지만 나오지 않는) 기분이 몇 시간이고 지속되곤 한다. 회사에서 끊임없이 콧물을 훌쩍거릴 수는 없기 때문에 약국에서 파는 알레르기약을 사 두었지만, 문제는 약을 먹고 나면 매우 강력한 졸음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창 일을 하던 중에 콧물이 흐르기 시작하면 해결책은 극단적인 두 가지뿐이다. 빨개진 눈으로 조용히 코를 훌쩍거리거나, 약을 먹고 졸음을 참거나. 어느 쪽이나 힘들기는 매한가지인 선택이다.





나는 더위를 많이 타기 때문에,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식고 선선한 바람과 함께 가을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순간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한 해의 선물같이 푸르른 가을 하늘을 보면 마음까지 쾌청해진다. 그러나 비염인에게 환절기란 콧물의 동의어이기도 하다. 각별히 주의하지 않으면 걸어 다니는 재채기 폭탄이 되고 만다. 요즘 같은 전염병 시국에 적절하지 못한 행동이 분명하다. 남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나는 가을 냄새를 만끽하면서도 틈틈이 코의 상태를 체크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유난히 날씨가 맑은 오늘은 동네 마실 겸 산책을 나가 보기로 한다. 다만 ‘동네를 산책하는 주민’처럼 보이고 싶을 뿐 ‘동네 바보’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나가기 전 콧물전용 티슈와 알레르기약을 잊지 않고 챙긴다. 나는 이제 그 일이 딱히 성가시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 정도로 비염을 내 삶의 동반자쯤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뜻일 거다. 때로는 포기하면 편하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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