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를 삐끗해서 한 달 가까이 운동을 쉰 적이 있다. 여러 운동을 즐기는 사람에게 허리 통증은 매우 안타까운 소식이다. 타의로 운동을 쉬게 되면 절로 무기력해지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 부질없는 후회만 할 뿐이다. 내게 있어 허리 통증은 일종의 경고등 역할을 한다. 일을 하든 신나게 놀든 운동을 하든 간에, 허리가 욱신거리기 시작하는 건 일단 그만두고 좀 쉬라는 뜻이다. 일상생활을 못 할 정도로 허리가 아팠던 건 바로 이 경고를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통증이 참을 만한 수준일 때 완급 조절을 해야 하거늘 나는 늘 무리를 하며 선을 넘곤 했다.
다행히 내게 허리와 관련된 심각한 질병은 없다.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었던 측만증과 놀라운 수준의 뻣뻣함을 제외하면, 바른 생활습관과 스트레칭으로 충분히 교정 가능한 정도의 통증을 갖고 산다. 그런데 이 통증이라는 게 참으로 신비롭다. 오래 서 있어도, 오래 누워 있어도, 오래 운동을 해도 기다렸다는 듯 아프다. 나는 아직 그 ‘오래’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파악하질 못해서 약간 억울하다. 내 몸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정신력만으로 안 되는 지점이 정확히 어디인지 대충 감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 정도는 버틸 수 있겠지?” 하며 무리했던 모든 일들이 “사실 아니었습니다!” 하며 통증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내가 볼 때 허리 건강이야말로 ‘중도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같다. 허리 건강을 유지하려면 계속해서 (그러나 적당히) 움직이고, 틈 날 때마다 (그러나 적당히) 쉬어주고, 꾸준히 (그러나 적당한) 근력 운동을 해 주어야 한다. 게다가 항상 바른 자세도 유지해야 한다. 허리가 건강한 현대인은 뭘 해도 성공할 사람임이 틀림없다.
초등학생 때 발목을 다쳐 오랫동안 깁스를 한 적이 있었다.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더위를 많이 타는 내게 두꺼운 깁스는 정말 고역이었다. 제대로 씻을 수도 없고 좋아하던 자전거를 탈 수도 없어 너무 우울했다. 평소에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이 이렇게 힘들어지다니 앞으로는 정말 몸조심해야지, 라는 다소 애늙은이 같은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나이는 먹었어도 정신연령은 그대로인지 요즘도 허리 통증이 찾아올 때마다 비슷한 생각을 한다. 통증이 괜찮아지면 앞으로는 정말 무리하지 말아야지, 하고. 무리하는 습관이 지금까지는 도움이 되었을지 몰라도 나이를 먹을수록 그렇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 몸을 갈아 끼워서 다시 태어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가진 몸을 가지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영하며 살아야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경고등 역할을 해 주는 통증이 영 쓸모없기만 한 건 아니다.
요즘에는 영 좋지 않은 일이 생겨도 ‘이만하길 다행이다’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되뇌곤 한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적당한 지점에서 놔 버릴 수 있도록 스스로를 세뇌시키는 거다. 자질구레한 몸과 마음의 통증에 대한 태도 역시 ‘너만 없으면 행복할 텐데’에서 ‘이만하길 다행이다’로 바뀌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소원을 빌 때마다 자동적으로 ‘나와 가족, 그리고 친구들의 건강’을 외치곤 하는데, 그렇다고 딱히 모두가 석고상처럼 완벽한 몸을 갖게 되길 바라는 건 아니다. 그것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다. 불가능한 걸 소원이랍시고 자꾸만 들이대면 들어주는 입장에서도 짜증이 날 것이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저 하룻밤 푹 자고 일어나면, 약을 먹으면 그럭저럭 나아지는 아픔 정도만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들 모두가 ‘이만하면 다행인’ 정도의 어려움만 겪었으면 좋겠다. 그 정도면 무탈하다. 무탈하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