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청한 넷플릭스 드라마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불의의 사고로 20년간 의식 불명 상태에 빠져 있다가 기적적으로 깨어난 주인공. 그러나 기쁨도 잠시, 거울 속에는 낯선 사람이 있다. 그건 바로 몰라보게 나이 들어 버린 자신의 모습이다. 몸은 나이 들었어도 마음은 아직 십 대에 머물러 있는 주인공은 혼란스러워하며 현실을 부정한다.
집 안에서 곰팡이를 마주한 내 심정이 딱 그렇다. 곰팡이는 너무 빨리 흘러버린 시간의 표식이다. 그걸 마주하는 건 항상 사고처럼 갑작스럽다. 따지고 보면 곰팡이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냥 거기가 터를 잡기에 최적의 환경이었을 뿐이다. 문제가 있는 건 내 쪽이다. 본인이 게을러터져서 방치를 해놓고는 누구 맘대로 여기에 집을 지었냐며, 그럴 거면 월세를 내라며 곰팡이를 향해 성을 낸다. 게으름에 대한 변명을 좀 해 보자면 지금 살고 있는 월세집에는 햇빛이 잘 들지 않아 식물은 들여놓는 족족 시들어버리고 곰팡이는 쑥쑥 자란다. 그래서 곰팡이를 마주한 날은 절망적인 심정으로 부동산 어플을 열어 밝고 따스해 보이는 고층 매물을 구경하곤 한다. 거실을 수놓는 눈부신 햇살에 감탄하고 그 놀라운 집값에 또 한 번 감탄한 뒤 현실을 받아들이고 청소를 시작한다.
가장 골치가 아픈 건 곰팡이가 핀 음식이다. 손쓸 방법 없이 음식을 통째로 쓰레기봉투에 넣어야 한다. ‘음식 남기면 벌 받는다’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자라온 내게 잔반도 아닌 멀쩡한 음식을 버리는 일은 죄악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그 음식이 부모님 집에서 얻어온 반찬이라면? 사랑과 정성이 담긴 음식을 버려야 하는 경우, 말도 못 하게 속상한 건 당연하고 불효를 저질렀다는 죄책감까지 더해진다. 생각해보면 부모님과 함께 살던 학창 시절에는 집에서 곰팡이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 혼자 살기 시작하고 나서야 1인 가구는 생각보다 많은 음식을 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냉동실은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깔끔한 공간은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엄마가 아주 부지런한 사람인 건 잘 알고 있지만 이럴 때마다 새삼 존경스럽다.
곰팡이는 조금 귀찮을 뿐 치명적인 존재는 아니다. 곰팡이 자체가 불쾌하다기보다는 그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스스로를 마주하는 일이 고통이다.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내겠다고 냉장고 속 음식에, 화장실 타일 바닥에 곰팡이가 피는 것도 모른 채 숨 가쁜 일상을 굴려왔나 싶다. 곰팡이 하나에 이렇게까지 자아성찰을 하는 이유는 내게 나쁜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가족이나 친구들의 연락도 귀찮아하고 식사도 대충 때워 버리는, 목표 이외의 것들에 대한 고질적인 무관심이 그것이다. 일상에 아무리 치여도 항상 나 자신의 건강과 주변 환경을 챙기고 다정함과 섬세함을 잃지 말아야 하는데. 생각해보면 엄마는 신기할 정도로 그걸 잘 해냈다. 회사 일을 하는 동시에 집안에 곰팡이가 생길 틈을 주지 않고, 투정 부리는 딸에게 아침밥을 먹이면서도 학교 잘 다녀오라는 다정한 말을 잊지 않았다. 역시 나는 그녀를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지만 마음을 다잡고 작은 것부터 실천해 보기로 한다. 일단 내일은 유통기한이 아슬아슬한 요거트와 냄새가 수상해지기 시작한 오이김치부터 처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