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삭 Feb 07. 2023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다가는 아주 목이 부러지겠어

리액션 로봇의 화상영어 수업

직장에 다니며 영혼을 다른 곳에 둔 채로 ‘습관적 엄지 척’을 날리는 일에 익숙해져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생존을 위한 진화였나? 


일상에서 내가 말하거나 움직이는 것을 녹화해서 볼 일은 거의 없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화면을 통해 스스로의 모습을 보는 건 지나치게 부끄러운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화면 속 내 목소리는 생각했던 것과 영 딴판인 데다 손짓 발짓은 어색하기 짝이 없고 시선은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어쩌면 나만 눈치챌 정도로 미세한 어색함이라고 해도 차마 눈 뜨고 봐주기가 힘든 게 사실이다. 다행히 나는 성향과 잘 맞는 직업을 선택해 그간 촬영의 대상이 되는 상황을 적절히 피해 갈 수 있었다.


평온함에 균열이 생긴 것은 1:1 화상 영어 수업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외국으로 나가 공부하기 전 준비 운동 삼아 전화 영어를 해본 적은 있는데, 수강 기간도 짧았던 데다 당시 약간의 전화 울렁증이 있었던 내게는 최적의 학습 환경이 아니었다. 영어 말하기에 대한 두려움이 약간 줄어든 데에 만족하며 그에 대해 잊어버리고 있기를 또다시 몇 년, 직장을 다니며 통 쓰지 않아 녹슬어가는 영어 실력이 아까웠기에 이번에는 화상 영어에 도전해 보기로 한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지나며 원거리 화상 통화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기지도 했고, 표정이나 제스처 등의 비언어적 표현이 더해지면 낯선 언어로 대화할 때의 부담감이 조금 덜어지지 않을까 싶은 기대도 있었다. 말문이 막히더라도 손짓 발짓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떻게든 설명해 낼 수 있을 테니까.


일주일에 두 번 영어 원어민과의 화상 통화를 하게 된 지 만 3개월 차에 접어든 지금, 내가 말하는 모습을 이렇게 오랫동안 쳐다보는 건 살면서 처음 있는 일. 가만 보니 화면 속 나는 저러다 목이 부러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낯선 언어로 대화의 공백을 채우느라 무의식 중에 비언어적 표현이 늘어난 거겠지만, 문제는 녹화된 모습을 제삼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니 그 습관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평소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는 게 나의 큰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해 왔는데, 고개를 너무 많이 끄덕이는 행동은 오히려 경청하지 않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상대방의 모든 말에 동의할 리는 없으니, 그 수많은 끄덕임 중 일부는 거짓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경험상 지나치게 빠르고 많은 리액션은 역설적으로 지금 이 대화에 관심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져 불쾌감을 선사할 수도 있었다.


직장에 다니며 영혼을 다른 곳에 둔 채로 ‘습관적 엄지 척’을 날리는 일에 익숙해져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생존을 위한 진화였나? 하지만 원래의 나는 분명 조금 덜 끄덕이고 조금 더 신중히 답변하는 사람이었다. 비언어적 습관이든 언어적 습관이든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빠른 속도로 변화할 수 있다는 걸 느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고 나면,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 남들이 보는 자신의 모습 사이에 메울 수 없이 큰 간극이 생겨 버리는 것이다. (전화 영어 화면 속 쿨한 척하는 나와 그걸 보며 손발이 오그라드는 나처럼!) 겉핥기식 대화를 하는 AI 같은 내 모습은 상상만 해도 부끄럽다. 바로 그런 행동이 내가 몇몇 사람을 싫어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으니까. 매 해마다 공인인증서를 갱신하듯 스스로에 대한 정보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해 주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물론 화상영어를 하는 내내 자아 성찰만 한 것은 아니다. 영어 실력도 분명 늘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3개월간 나름 성실히 수업을 했으니 실력이 조금이나마 늘 거라는 건 나름대로 예상했던 부분이다. 그러나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은 일주일에 두 번 30분의 시간을 내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으며,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무의식 속 편견을 버리고 마음을 완전히 여는 일도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점이다. 퇴보한 어휘력도 대화의 걸림돌이다. 완벽히 안다고 생각했던 단어들이 막상 입 밖으로 쉽게 나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생각해 보면 그건 모국어로 말할 때도 마찬가지로 겪는 상황이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보내다 보니 자꾸 비슷비슷한 문장들만 내뱉게 되는 것이다. 요즘 들어 조금은 강박적으로 독서를 하는 이유는 그러한 변화가 달갑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뭐든지 쉼 없이 갈고닦지 않으면 순식간에 녹슬어버린다. “교과서와 학교 수업 위주로 예습, 복습을 철저히 했어요.”라는 수능 만점자의 인터뷰처럼, 부끄럽지 않게 잘 사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할지도 모른다. 꾸준하고 또 꾸준하게, 스스로를 똑바로 쳐다보기. 오늘 하루가 피곤했더라도.

매거진의 이전글 욕망의 내향인, 독서 토론에서 의견을 드러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