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른바 ‘무리하는 내향형 인간'이다.
내 방 침대에 눕듯이 앉아 원 없이 읽고 쓰고 그리는 것보다 편안한 일은 살면서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나의 그런 성향을 대체로 마음에 들어 하는 편이지만, 가끔은 남들을 지나치게 밀어내고 섬처럼 고립되려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울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무리해서라도 스스로를 몰아붙여 각종 모임에 참여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그렇지만 바깥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완벽한 외향형 인간은 아닌 탓에 체력은 자주 방전된다. 이렇게 호기심도 많고 욕심도 많은 반쪽짜리 내향인은 항상 무리를 하게 되어 있으므로, 평소의 루틴 관리를 아주 철저히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나처럼 걱정 많은 내향인은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가끔 정반대의 자아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 또 다른 자아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바로 '밑져야 본전'이다. 그 아이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내게 뜬금없이 말을 걸기 시작한다. 언제까지 걱정만 하고 있을 거야? 익숙한 것만 하며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잖아.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면 너도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이 순간만큼은 내가 골든 레트리버보다 더 친화력 있게 사람들을 대할 수 있을 것 같고,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들도 왠지 마음만 먹으면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게 문제다. 거기에 술까지 한 잔 들어가면 용기와 무모함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만다. 얼떨결에 시작해 2년이 넘게 하고 있는 독서 토론 모임 역시 바로 이러한 상태일 때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회사에서 의견이 잘 맞지 않는 상사와 갈등을 빚고 있었고, 중요한 승진 면접 자리에서 사시나무처럼 떠는 바람에 흑역사를 적립하는 등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스트레스의 농도가 진했다. 스스로가 멍청한 사람처럼 느껴져 자괴감이 들고 예민해졌다. 이 모든 일은 월급의 달콤함에 절여져 현실에 안주하려 했기 때문에 벌어진 비극인 것만 같았다. 돌이켜보면 모두가 나의 잘못인 것도 아니었고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만한 치명적인 사건들도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뭔가 도전적이고 새로운 일을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영원히 도태될 것만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무척 겁이 났다. 독서 토론 모임에 가입하며 내가 기대한 것은 매우 단순했다. 1. 나와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거나 나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 2. 여러 사람 앞에서도 떨지 않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서 승진 면접 때의 수모를 갚아주리라!
나는 내 생각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남들의 의견에 어느 정도 맞춰갈 때 편안함을 느끼는 성향이다. 나와 상대의 의견이 달라도, 내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끼치는 상황이 아니라면 애매한 웃음으로 넘겨 버리는 편이었다. 한마디로 논쟁과 토론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다. 게다가 나처럼 읽고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말보다는 글이 훨씬 유리하다. 그러니 살면서 토론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도 당연한 일이다. 나는 학창 시절에도 남들 앞에 서는 걸 싫어했다. 자발적으로 손을 들고 발표를 한 적은 거의 없고, 대부분은 출석 번호가 불리거나 하필 눈에 띄는 자리에 앉았다거나 선생님과 눈을 마주쳐야만 억지로 입을 뗐다. 지금 하고 있는 독서 모임에는 대략 15명에서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토론을 하는데, 내 기준에는 군중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인원수다. 그야말로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시작하지 않았을 취미생활인 것이다.
독서 토론 모임에 처음 참여했을 때는 팬데믹이 절정이었던 시기였다.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에서 몇 시간 동안 이야기하는 게 힘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무용했다. 마스크는 나의 볼품없이 떨리는 입술과 사정없이 빨개진 얼굴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최후의 방어막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일은 예상했던 것처럼 아주 고통스러웠으나, 나는 어렵게 낸 용기와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만들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모임에는 참가비가 있었다. 본전을 뽑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입을 닫고 있을 수가 없었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것도 물론 의미 있지만, 그리고 평소였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했겠지만, 내가 여기 온 것은 '말을 하기 위해서'였으니까.
처음에는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는데도 목소리가 떨리고 숨이 가빠서 이러다 큰 일 나는 거 아닌가 싶다가, 불현듯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편해졌다가, 다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가 혼자서 온갖 난리를 치며 정신줄을 다잡았다. 그렇게 반년 간의 우여곡절 끝에 모임의 한 분기가 끝났을 때 나는 난생처음으로 ‘시키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아주 낯선 피드백을 접하게 된다. 거봐, 하면 되는 거였네! 가슴이 벅차올랐다. 남들 앞에서 떨거나 말을 잘 못해도 그다지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거였다. 이걸 진작에 깨달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니까, 결국 용기를 내는 일은 이르면 이를수록 좋은 것 아닐까.
한 번의 용기는 예상치 못한 인연과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바로 이 독서모임에서 만난 친구들과 몽골 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과 해외여행을 가는 게 무슨 내향인이냐! 하는 ‘진짜 내향인 연합’ 측의 거센 항의가 들려오는 것 같지만… 당시 나는 못 하던 걸 해냈다는 성취감 덕분인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덕분인지, 인간관계를 대할 때의 고질적인 조심스러움이 많이 깎여나가 둥글어진 상태였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 인생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과 먼 나라까지 같이 와서 술을 마시며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불현듯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과장 좀 보태자면 앞으로는 정말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은 자신감까지 샘솟았다. 아마 은하수가 쏟아지는 몽골의 밤하늘에, 시원한 맥주와 보드카에, 짜릿한 성취감에 취해 있던 탓이리라.
요즘도 독서모임에 나간다. 심지어 다음 회차 모임에서는 내가 진행자의 역할을 맡기로 되어 있다. 남들의 사소한 말들을 잘 기억하고, 무리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있으면 신경이 쓰여 어쩔 줄 몰라하는 성향이 어쩌면 진행자의 역할에 잘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만 하고 있던 차였다. 그걸 증명해볼 기회가 저절로 찾아왔으니 도전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단순히 내 의견을 드러내는 것과 토론 자체를 진행하며 이끌어가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 도전은 처절히 망할 수도 있고 제법 좋은 경험으로 남을 수도 있다. 사실 매끄러운 진행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도 자신이 없지만, 잘 되든 못 되든 후회를 하지 않을 자신은 있다. 밑져야 본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