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힘을 주면 안 된다니까요
힘으로만 승부하려 하면 안 된다.
클라이밍을 시작한 지 10분 만에 깨달은 사실이다.
나는 클라이밍 장비도 없고, 기껏해야 초보자를 위한 강습 몇 번 받아본 게 전부다. 그러니까 클라이밍이 힘으로만 하는 운동이 아니라는 사실은 나 같은 왕초보 클라이머가 첫 시도만에 깨달을 정도로 아주 기본적인 원칙인 것이다. 홀드 몇 개 잡아본 주제에 클라이밍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점에서 콧방귀를 뀌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변명해 보고 싶다. 원래 초보자가 말이 가장 많은 법이다.
주 5회 이상 운동을 꾸준히 하는 데다, 보기보다 힘세다는 소리도 많이 들어봤던 나는 암벽장 방문 직전까지 왜인지 모를 자신감에 차 있었다. 암벽장에 들어서자마자 놀라운 등근육을 가진 고수들이 벽에서 툭툭 떨어지는 걸 보고 곧바로 겸손해지긴 했지만. 어쨌든 온몸으로 초보자 티를 팍팍 내며 벽에 달라붙어 보았는데 이게 웬걸, 올라가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용을 쓰며 한 코스를 완등하고 “힘이 좋네요!”라는 강사님의 칭찬까지 받고 나니 자신감은 다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이거 별로 어렵지 않은데? 나 알고 보니 클라이밍 천재일 수도…?'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은 두 번째 시도만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스트레칭을 하고 휴식을 취해도 첫 시도 때만큼 힘이 넘치는 상태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클라이밍은 짧은 시간에 폭발적인 힘과 체력을 쓰는 운동인데, 아직 암벽에 익숙지 않은 초보자는 본인이 그렇게 온몸에 힘을 주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 때가 많다. 체력은 한정되어 있고, 기술이나 전략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덤벼들기만 하니 금방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쯤 뒤에는 손이 저릿저릿하고 몸에 힘이 빠져 처음에 가볍게 성공했던 코스도 벅차기만 했다.
뭐든지 초반에 너무 힘을 빼면 마무리할 체력이 달린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기운이 넘칠 때를 기준으로 계획을 세우면 무조건 망한다. 하지만 ‘체력’이란 게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니다 보니 항상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몸의 소리를 무시하기 일쑤다. 게다가 체력적으로 무리를 한 뒤에 회복되는 속도도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느려지는 것 같다. 사실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채로 무리하게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너무 익숙해졌다.
나만 빼고 다 열심히 사는 것 같은 세상에서 일부러 힘을 빼는 것도 참 쉽지가 않다. 100%가 아닌 75%만 발휘하려고 노력하는 건 바보 같은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다들 무리해서라도 가진 힘을 모두 쏟아부으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100%의 매일을 살아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인간이 그렇게 생겨 먹지를 않은 것 같다.
그러니 혹시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있다면, 다시 말해 딱히 열심히 사는 것 같지도 않은데 조급함에 어쩔 줄 모르겠다면, 클라이밍을 추천하고 싶다. 한 번 젖 먹던 힘까지 쓰고 나면 바닥에 가만히 앉아 남들이 벽을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며 쉬어보자. 누군가 멋지게 성공했다면 진심으로 박수를 쳐 주자. 힘이 빠진 것 같다면 미련 없이 샤워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침대에 누워 버리자. 다음에는 분명 더 잘 오를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