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법
첫 성우 수업에서는 그냥 열심히 숨 쉰 기억밖에 없다. 성우는 몸이라는 악기를 이용하여 좋은 소리를 내야 하는데, 몸을 잘 쓰려면 호흡은 기본이다. 그러나 숨쉬기처럼 평소 아무 생각 없이 해온 일일수록 의식해서 컨트롤하기가 더욱 어렵다. 그래도 필라테스와 달리기를 꾸준히 하며 '신경 써서 숨 쉬기'에 많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목소리를 낼 때 필요한 호흡법은 또 새로운 영역이었다. 몸 안에 공기를 집어넣으며 그것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또한 어떤 방식으로 되돌아 나오는지 느끼려면 생각보다 많은 힘과 집중력이 필요했다. 목소리에 힘이 실려야 하는데 애꿎은 뒷목, 어깨, 그리고 허리에만 힘이 잔뜩 실렸다. 숨 쉬는 게 이렇게 힘들 일인가 싶어 내 몸과 또 한 번 서먹해졌다.
지금까지 살면서 얻은 깨달음 중 하나는 '뭐든지 과하게 힘을 주면 망하기 쉽다'는 것이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는지 허리가 심하게 뻐근해져 와서 연습을 몇 주 쉬기도 했다. 몇 해 전 헬스장에서 가당치도 않은 무게를 들다가 한 번 다쳤던 허리가 다시 한번 파업을 선언한 듯했다. 목소리 좀 제대로 내 보겠다고 했을 뿐인데 허리가 파업을 해 버리는 몸이라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하지만 몸을 갈아 끼워 버리지 않는 이상 꾸준히 단련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문득 초등학생 시절 가장 싫어했던 활동 중 하나인 체력장, 그중에서도 공포의 오래 달리기가 떠오른다. 반 친구들은 모두 결승선에 도착했는데 나만 무려 3바퀴가 남아 있었던 뼈아픈 기억이다. 격차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자 결국 체육 선생님이 한 바퀴를 빼 주셔서 간신히 피를 토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러닝복을 차려 입고 한강에서 달리기를 하는 요즘의 나는 새로 태어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사실은 기록을 세워야겠다거나 살을 몇 킬로그램 이상 빼겠다거나 하는 목표가 없기 때문에 더 꾸준히 달릴 수 있었던 것 같다. 호흡 연습도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좀 나아지겠거니, 하며 마음을 여유롭게 가지려고 한다. 딱히 급할 일도 없는 취미생활일 뿐인데 재미까지 없어져 버리면 지속할 이유가 없게 되어 버린다.
좋은 소리를 위해 호흡을 연습해야 한다면, 그 소리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목소리 건강을 위해 알맞은 습도와 바른 자세를 유지하라는 선생님의 조언을 마음에 새기고 틈틈이 실천 중이다. 어째 말 좀 잘해보겠다고 성우 수업을 결제해 놓고는 점점 '건강 프로젝트'에 가까워져 가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자기 관리를 잘해서 손해 볼 것은 전혀 없으니 이러나저러나 나에겐 이득이다. 사실은 알코올과 커피도 목소리에 좋지 않으니 피하라는 말씀도 하셨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영역인 것 같다. 그 두 가지가 여러모로 건강에 좋을 리가 없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냥 영영 모른 척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