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일이 잘 안 되고, 우울하고, 멍하니 있는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게 아니라 4캔 만원 맥주와 눈물 나게 매운 떡볶이를 찾는다. 더 쉽고 편한 방법이니까.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게 뭔지 고민하는 건 너무 거창한 일이니까.
알람이 울리는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로 밝아오는 아침. 자는 것도 깬 것도 아닌 상태의 영혼은 구천을 떠돈다. 다음 알람은 5분 뒤에 울릴 예정이다. 수면 전문가들이 추천하지 않는 바로 그 행동, ‘일어났다가 다시 잠들기’를 나는 매일 아침 성실하게도 반복한다. 그거 조금 더 잔다고 피로가 풀리지 않을 것도 알지만, 뇌보다 손가락이 먼저 움직여 최후의 시간으로 설정된 ‘이제 진짜 일어나야 됨’ 알람으로 향해 버리는 걸 어쩌겠는가.
뻔히 예상되는 고통을 마주하는 일에는 엄청난 의지가 필요하다. 반면 고통을 살짝 뒤로 미루는 행동은 여지없이 달콤하다. 이불 박차고 일어나기보다 알람 한 개 더 맞추고 현실 부정하기가 훨씬 쉽다. 지나간 후회를 곱씹으며 인생 계획을 점검하는 것보다는 그냥 술 마시고 쓰러져 자는 게 편하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고통을 너무 자주 연기하다 보면 그게 습관이 되어 몸에 새겨진다는 거다. 고통이 입력되면 해결이 아니라 미루기로 자동 출력되는데, 그 사이에 고통은 물풍선처럼 커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이럴 때는 어떻게든 힘을 내서 마음을 다잡아 봐야 한다. 내 삶의 문제는 나 말고는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다.
몸과 마음이 건강할 때는 어떻게든 힘을 내볼 수 있다. 하지만 면역력이 약해져 있을 때 병균의 공격을 받으면 치명적이듯, 맞서 싸울 힘이 없을 때 고통을 마주하면 실수를 한다. 외나무다리에서 전 연인을 마주하기라도 한 것처럼 고통을 못 본 척 스쳐 지나간다. 왠지 일이 잘 안 되고, 우울하고, 멍하니 있는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게 아니라 4캔 만원 맥주와 눈물 나게 매운 떡볶이를 찾는다. 더 쉽고 편한 방법이니까.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게 뭔지 고민하는 건 너무 거창한 일이니까. 하지만 고통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다음날 아침으로, 다음 주로, 다음 달로 계속해서 미뤄질 뿐이다. 결국에는 고통스러워서 미루는 건지 미뤄서 고통스러운 건지도 헷갈리는 상태가 되고 나서야 느적느적 머리를 굴린다. 하늘에서 해결 방안이 뚝 떨어지길 기대하면서.
기상 시간을 아무리 미뤄봤자 최후의 알람이 울리면 반드시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 어쩌면 이게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로 가‘게 만들어주는 가장 명쾌한 사고방식일 수 있겠다. 알람은 이미 울렸으니 어차피 일어나야 하고, 인생은 이미 주어졌으니 어차피 살아내야 한다는 것.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길게 늘이지 말고 짧게 잘라 버리는 게 어떨까. 매도 먼저 맞는 게 나으니까. 술에 취해 근심을 잊어봤자 아침에 몸만 무겁다.
* 새소년 - <난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