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손에서 뭘 자꾸만 놓친다. 처음에는 펜이나 신용카드를 떨어뜨리더니 그다음에는 로션 뚜껑을 날려버렸고, 화장실 바닥에 수건을 패대기치는가 하면 오늘은 기어이 휴대전화를 놓쳤다. 하필 액정부터 바닥에 떨어진 휴대전화를 주워 들면서 할부가 얼마나 남았는지 재빨리 계산했다. 엄마는 나이가 들면 손끝에 힘이 없어 자꾸만 뭘 놓치게 된다고 말했지만, 나는 아직 엄마만큼 충분히 나이 들지 못했으므로 그런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다행히 휴대전화 액정은 박살 나지 않고 살아남았으나 다음엔 얼마나 더 소중한 걸 떨어뜨릴까 싶어 무서워졌다.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주울 땐 어쩔 수 없이 허리를 굽혀야 한다. 요즘 허리가 아픈 이유가 물건을 너무 많이 주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피어오른다. 머리와 손이 일을 제대로 안 하는 바람에 애꿎은 허리만 고생하는구나. 정형외과에 찾아온 환자가 이렇게 말하면 의사 선생님은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 물건을 주울 때 허리를 굽히지 말고 스쿼트 자세를 취하라는 조언을 유튜브에서 본 것도 같은데... 아니다, 스쿼트 할 생각을 하지 말고 정신을 좀 차리고 살자. 4번 타자가 야구공을 보듯이 물건을 끝까지 봐야지. 떨어뜨린 휴대전화 액정이 멀쩡한 행운이 매번 따라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정신만 차리면 다 해결될 일이다. 정신을 차린다는 건 곧 쉼 없이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뜻인데, 예를 들어 나는 카페에서 음료를 받아 들고 자리로 갈 때 단 한 번도 쟁반을 놓친 적이 없다. 넘어지거나 손에 힘이 빠져서 바닥에 음료를 모조리 쏟는 상상을 수백 번도 넘게 했기 때문이다. 상상을 통해 나쁜 상황을 가정했다면 높은 확률로 그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는 걸 막을 수 있다. 예방 주사를 맞는 것과 비슷하다. 반면 반복되는 일상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보통 긴장이 풀린 상태다. 거기엔 상상력이 끼어들 틈이 없다. 당장 5분 전에 무슨 행동을 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무의식적인 움직임이 반복될 뿐이다.
상상력을 잘 발휘하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요즘 내 일상이 평화롭다는 뜻일 수도 있다. 나쁜 상황을 가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매일매일이 비슷하게 흘러간다. 느슨해진 일상에 긴장감을 줄 필요가 있어. 이런 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계단 밑까지 굴러내려가 삼단 분리된 무선 이어폰을 주우며 진지하게 생각했다. 긴장감을 줄 방법은 다양하다. 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고, 새로운 친구를 만들 수도 있고, 방 청소를 할 수도 있다. 아니면 그저 마음만 고쳐 먹어도 된다. 뭐가 되었든 간에 필요성을 느꼈으면 당장 실천할 필요가 있다. 더 소중한 걸 손에서 놓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