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로 Jul 25. 2023

바가지 써도 집은 가야지

Day 1 - (2)


인포메이션 데스크에는 직원 두 명이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냅다 외쳤다.


"헬프 미. 콜 미 어 택시 플리즈."

(도와주세요. 택시 좀 불러주세요.)


'헬로'나 '익스큐즈 미' 같은 인사도 없이 택시부터 잡아달라고 하는 한국인을 보고 직원 1은 당황하지도 않고 그냥 나가서 택시를 부르라고 답했다. 그런 당연한 대답을 원한 건 아니었는데… 한껏 절박한 얼굴로 부탁했다. 택시를 불러도 잘 안 잡히고(뭘 타면 되는지 모르겠어요), 데이터를 못 써서 번역기를 사용하지 못하니(기사님과 대화도 못한다고요) 같이 나가서 잡아달라고(제발!) 말이다. 직원 1이 직원 2에게 나가서 도와주라고 부추기는 것 같았다. 우물쭈물 따라나선 직원 2에게 연신 ‘땡큐’를 외쳤다.


집에 갈 희망이 보이자 울란바토르의 도로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도로는 차로 꽉 막혀 있었다. 교통 법규를 어기는 차가 많았다. 차량 신호등에 초록불이 켜지면 횡단보도의 보행자는 신경 쓰지도 않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양쪽으로 차가 가득한 도로를 가로로 끊어서 유턴하려 끼어드는 무법자도 있었다. 클랙슨을 브레이크로 착각하고 누르는 게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여기저기서 빵빵 소리를 냈다. 시내를 메운 뿌연 먼지바람과 탁한 공기가 예상했던 자연의 모습과는 상반되었다. 울란바토르는 낯설지 않은 모습의 도시였다. 그곳이 몽골이라는 게 가장 낯설었다.


직원 2가 도로를 향해 손을 계속 뻗고 있는데도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그가 번역기에 택시가 많이 없다고 써서 보여주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몇 분이 더 지나 택시 표시가 없는 무허가 택시 하나가 우리 앞에 섰다. 피하고 피하다 결국 타게 되는 건가 하며 마음으로 탄식하는데 직원 2가 목적지를 물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친구 집 근처 유명한 호텔인 블루 스카이 호텔을 말했다.


택시는 마음 놓고 타기에 꺼림칙한 모습이었다. 앞 범퍼는 약간 뜯겨 있었고 조수석 창문은 거미줄 모양으로 깨진 자국이 그대로 있었으며 차 안팎으로 먼지가 쌓여있었다. 그 택시를 보내면 언제 또 잡을 수 있을지 몰랐다.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마음으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뗐다. 일반 차량으로 운행하는 거라 미터기는 당연히 없었고, 얼마를 제시할지 모른 채 출발했다.


십 분이 넘도록 차가 기어갔다. 이번에는 가는 내내 구글 지도를 켜고 있었다. 30분쯤 지나 목적지에 가까워졌다. 짐을 꺼내며 조심스레 택시 요금을 물어봤다. 기사님은 6만 투그릭(약 22,000원)을 부르셨다. 너무 비싸다고 소심하게 말해봤지만 단호함이 깃든 기사님의 얼굴과 어디든 눕고 싶다는 생각에 그대로 주고 말았다. 그렇게 몇 시간 만에 택시비로 총 6만 원을 쓰는 국제 호구가 되었다(UB cab으로 불렀으면 1km당 1,500 투그릭 = 약 550원… 이하 생략).






약도에 그려진 건물 쪽으로 걸어갔다. 총 네 개의 입구가 있는 한 동짜리 아파트였다. 그중 예진이 들어가라고 표시해 둔 입구에 들어섰다. 1층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302호(임의 설정)를 찾아가기만 하면 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내렸다. 11호, 12호, 13호... 뿐이었다. 두 자릿수 집만 있고 아무리 봐도 302호가 없었다. 문 앞 카펫 밑에 열쇠를 숨겨두었다고 해서 그나마 비슷해 보이는 12호 앞 카펫을 들춰봤다. 이리저리 들춰봐도 열쇠는 보이지 않았다. 층을 잘못 찾아온 건가 싶어 위아래층을 오르내려도 302호는 없었다... 짐을 두고 밖에 있는 경비실에 가보기로 했다.


경비원 두 분 모두 몽골어로 말씀하시다 내가 못 알아듣는 걸 느끼셨는지 경비실 옆에 멈춰있는 차를 가리키셨다. 차에 탄 관리인이 영어를 할 줄 안다는 것 같았다. 그에게 302호가 보이지 않아서 그 건물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휴대폰 속 약도를 보여주었다. 그는 위치도 맞고 입구도 맞는데 그곳엔 두 자리 호수의 집만 있다고 했다. 친구에게 전화해 보라며 본인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휴대폰을 받아 예진에게 전화했다. 모르는 번호라 받지 않는지 응답이 없었다. 다시 올라갔다 와보겠다고 하곤 3층으로 갔다. 분명히 302호가 없었다. 다른 집 문 앞 카펫을 다 들춰보았지만(아무도 밖으로 나오지 않아 다행이었지 상당히 수상한 모습이었다) 열쇠는 보이지 않았다. 공항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시간만 흐르고 있어 짐을 끌고 내려왔다. 다시 그 차로 향했다. 시내로 오는 정보가 담긴 캡처 사진을 둘러보다 영문 주소가 적힌 사진을 찾았다. 관리인에게 보여주자 그는 왜 이걸 몰랐냐는 표정과 함께 거기에 12호라고 떡하니 적혀있다고 했다. 6-12 같이 번지수처럼 생겨서 집 호수라고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돌아온 현시점까지도 도대체 왜 그게 집 호수인지!) 그건 그렇고 예진아, 너네 집 12호래......


생명의 은인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짐을 끌고 3층으로 돌아갔다. 12호 앞에 휴대폰 플래시를 비추며 (제발) 열쇠가 있길 바라면서 카펫을 꼼꼼히 들췄다. 모퉁이 쪽을 쓱 지나가려던 그때 무언가 반짝였다. 언제 튕겨 나온 건지 카펫에서 두 뼘쯤 떨어진 구석에 열쇠가 덩그러니 나와있었다. 머릿속에 핏기가 새롭게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첫 번째 택시에서 잘못 내리고 두 번째 택시에서 바가지 쓰고 눈앞에 있는 집도 못 들어가는 세 시간 반의 대장정이 끝났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캐리어를 거실 구석에 밀어 두고 와이파이부터 연결했다. 예진이 열쇠를 숨겨둔 위치를 설명하는 톡이 와있었다. 대충 답장을 보내곤 진이 빠져 소파에 드러누워버렸다. 아무렴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국영백화점에서 유심을 개통하고 집으로 돌아올 땐 오후 여섯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하늘은 서너 시가 조금 지난 것처럼 밝았다. 할 일을 끝내니 더 노곤노곤해졌다. 소파에 다시 널브러져 여덟 시가 넘도록 잤다. 아홉 시쯤 되어 운동을 마친 예진에게서 전화가 왔다.


1년 만에 상봉한 예진이 그날따라 더 반가웠다. 집 앞에서 만나자마자 얼싸안았다. 집 근처 멕시코 음식점으로 가서 회포를 풀기로 했다. 퀘사디아와 크로켓을 먹으며 기나긴 하루를 나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서 여기가 어딘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