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을 관찰하면서 성장하는 법
영어에는 "Fake It Till You Make It"라는 표현이 있다. 한국어로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될 때까지 그런 척이라도 해라"는 표현에 가깝다. 무작정 버티는 "존버"와는 느낌이 다르다. 말 그대로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되기 위해서, 혹은 어떤 집단에 속하기 위해서 나 자신을 속이고 또 세상을 속이라는 표현에 가깝다. 물론 이 문장을 말 그대로만 해석하면 아주 위험한 조언이기 때문에 호불호가 꽤 갈리는 표현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절대 이 조언을 택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더 많다. 그럼에도 이 문장을 가지고 온 이유는 오랜만에 다시 읽어본 배달의민족 김봉진 대표님의 인터뷰를 모두와 공유하고 싶어서, 그리고 그 조언이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말일 수도 있기 때문에.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배달의민족을 창업한 김봉진 대표님은 독특한 '빡빡이' 머리 스타일로 어떤 대표님들보다 기억에 남는 분이 아닐까 싶다. 이런 김봉진 대표님에게도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실력에 비해 젊은 나이와 평범한 캐릭터였다고 한다. PT 경쟁에서 자꾸 떨어지는 이유가 혹시 사람들의 편견 때문은 아닐까 싶어 김봉진 대표님은 오히려 그 편견을 역이용하고자 드라마에 나오는 디자이너처럼 삭발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대표님은 현재까지 '빡빡이' 스타일을 유지 중이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 사람, 평범하지 않구나' '뭔가 크리에이티브(창의적)한 사람이구나' 하는 눈빛으로 보기 시작했다. 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머리를 깎고 얼마 되지 않아 프레젠테이션이 잡혔다. 고객사의 임원들이 나의 외모에 관심을 갖고 먼저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와 김 팀장, 디자인 잘하게 생겼는데?" 자신감이 생겼다. 이전까지는 발표를 하면서 디자이너답게 보이려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영어 약자(略字), 감성적인 이야기를 주로 했다. 하지만 머리를 깎은 뒤로는 자연스럽게 농담도 하고 설명도 좀 더 구체적이고 쉽게 했다. 상대방도 훨씬 재밌게 들어주는 것 같았다. 짧게 깎은 머리가 나를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위 인터뷰는 2015년,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인터뷰인데 최근에 화제가 되었던 모교 수도공고 학생들과의 일문일답 인터뷰에서도 같은 대답을 하신 것을 보면 김봉진 대표님의 인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의사 결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Fake It Till You Make It"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과 달리 능력이 없는데 능력 있는 척, 다른 사람을 속이고 자만하며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직무, 소속되고자 하는 집단, 그리고 이루려고 하는 목표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다소 미숙하고 미완성일지라도 자신감 있게 도전해보라는 이야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는 솔직함, 그리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도전하되 내가 되고자 하는 '그들' 또한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임을 까먹지 않는 노력이 필요할 뿐.
고등학교 2학년 때 친한 언니에게 난 이런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대학원생이 되고 싶으면 대학원을 가고 싶은 학부생과 놀지 말고 대학원생을 만나야 한다. 박사를 만나고 교수님을 따라다녀야 한다." 그때는 그게 편헙한 생각이라고 느껴서 "언니 왜 그래요?"라고 발칙하게 대답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나는 언니가 당시 해준 조언이 내 인생을 바꿔 놓았음을 깨닫게 된다. (적어도 나에게는)
나는 19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사교육에 쏟아부을 돈도 없었고 가르쳐줄 사람도 없었지만, 영어를 하지 못함으로써 놓칠 수 있는 수많은 기회들이 점점 살에 와닿기 시작하면서 영어 공부를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그때 내가 떠올렸던 건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이미 그걸 하고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라"라는 조언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어릴 때이니 나에게 구체적인 목표 같은 건 없었다. 외국에서 살고, 일하고 외국어로 일을 하는 환경에 대한 막연함 꿈만 있었을 뿐. 영어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무작정 고민하기 시작했다.
영미권에 사는 사람들은 모든 환경이 영어니까 나도 그렇게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때 알아듣지도 못하는 미국 영화와 드라마를 자막 없이 보기 시작했다. 당연히 못 알아들어서 졸았고 내용을 이해하지도 못했다. 버스에서 한국 노래를 듣는 대신 영어 노래를 들었다. 강연에 가서 통역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통역기를 착용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 모든 말을 알아 들었을 리가 없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알아들은 척 받아 적은 적도 있고, 아는 척 친구들에게 설명해본 적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딱 2년이 지나니까 어느 순간에, 보이지 않던 장벽을 탁 - 넘어서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말이 나오고 귀가 트이는 순간이었다. 알아듣지도 못하던 영어 강연에 금붕어처럼 앉아 있던 시간들이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물론 모두에게 추천하는 방법도, 모두가 동의하는 방법도 아니다. 더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도 있을 거다. 그런데 적어도 나에게는, 내가 하고 싶은 일, 되고 싶은 사람을 조금이나마 그려보고 그 사람들이 사는 대로 살아보는 게 무식하지만 빠른 효과가 있었다.
어쩌면 "Fake It Till You Make It"이라는 조언은 김봉진 대표님의 말처럼 다른 사람의 편견을 역이용하는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외모와 나의 행동, 말투가 나의 스킬을 대변하지는 않지만 사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첫인상으로 사람에 대한 신뢰를 결정한다. 같은 직군의 사람들이 비슷한 외모와 옷차림새를 하는 건 그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건 자만하며 다른 사람을 속이는 방법이 아니다. 이 조언의 본질은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 소속되고 싶은 집단, 하고 싶은 일을 이미 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고 배워보는 일에 가깝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책을 읽을까를 넘어서, 어떤 곳에서 영감을 받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들을까? 아주 사소한 일까지 살펴보는 일. 그 과정 속에서 나만의 개성을 찾고,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그들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함께 숙지해야 한다는 건 정말 어렵지만 이 세 가지만 유의한다면 Fake It Till You Make It은 새겨볼 만한 조언이라는 점.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첨부된 짤처럼 죽을 때까지 Fake it (=make it) 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5년 김봉진 대표님 인터뷰 전문
2021년 김봉진 대표님 인터뷰 전문
Fake It Till You Make It Ted t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