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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케이크 Sep 19. 2020

완벽한 순간이라는 허상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기다리는 우리 모두에게



학생 때 나는 엄청난 강박증에 시달렸다. 필기를 곧잘 하다가도 한 글자라도 엇나가면 그 한 장을 모두 찢어 버렸다.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었다. 볼펜의 잉크가 번질 때마다 한 장, 화이트로 덧난 종이가 싫어서 한 장, 그렇게 한 장씩 찢다 보니 마음에 드는 필기가 나올 때쯤이면 공책은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이 얇아져 있었다. 걸레짝 마냥 너덜너덜해져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공책이 돼버렸지만 내게 오점을 남기는 것보다는 생각했다. 그 오점이 있는 노트마저도 나의 삶이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 채로.  


대학에 가면 살 빠진다니까?

그런 강박증은 자기부정으로 이어졌다. 대학에 가면 살이 빠지고, 남자 친구가 생기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게 될 거라는 어른들의 말을 나름 흘려 들었다고 생각했는데도 고등학생의 나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막연한 환상에 빠져 있었다. 스무 살부터가 진짜 내 인생의 시작이라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나의 제2막이 펼쳐질 거라며.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나는 내 현재를 방치했다. 허상의 '완벽한 나'를 꿈꾸고 목표로 할수록 현실의 나는 한 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지금의 나는 오점 투성이고 못났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항상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증과 스무 살이 되면 내 인생의 2막이 시작될 거라는 그 망상 덕분에, 나는 미래도 현실도 아닌 그 어딘가에서 내가 아닌 사람을 꿈꿔왔던 것 같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 혼자 다리에 있는 점이 신경 쓰여 일 년 내내 종아리에 대일 밴드를 붙이고 다녔고, 팔에 난 흉터를 보여주기 싫어서 한 여름에도 긴팔을 입고 지내곤 했다.   


2016년, 21살. 삶의 다양한 선택지를 보여줬던 멜버른에서


그러다 스물한 살에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가게 되었다. 첫 외국 살이는 내게 여러 의미로 신선한 문화 충격이었다. "아니, 치마를 안 입고 레깅스만 입고 다녀도 되는 거였어?"라는 생각을 하며 눈이 똥그래진 채로 멜버른 길거리를 걸어 다녔다. 몸에 흉터가 있어도 나시를 입는 사람, 뱃살이 조금 있어도 비키니를 입는 사람, 대학을 가지 않았지만 사업적으로 성공한 사람, 반대로 늦깎이 36살에 대학에 들어간 사람을 보며 삶에는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흉터가 있어도, 필기가 엇나가 화이트로 수 없는 덧칠을 해도 그 오점마저 모두 나의 삶이라는 그 진득한 사실이 비로소 몸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2014년, 19살. 다이어리에 옮겨 적었던 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방 청소를 했다. 언젠가는 쓸 일이 있을 거라며 초등학생 때부터 모아 놓은 시험지와 필기 노트를 시원하게 던져 버렸다. 나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얼마나 현재를 낭비해왔을까? 언젠가는 더 예쁘고, 더 똑똑한 '나'가 될 거라며 현재의 나를 얼마나 부정해왔을까? 시작되지 않을 미래를 기다리고, 보이지 않는 허상을 쫓아다니며 나는 대체 무엇이 되기를 원했던 걸까? 하나의 족쇄를 벗어던지고 나니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그 세상은 누가 만들어 놓은 길도 아니었으며, 내가 꿈꿔오던 상상 속의 미래도 아니었다. 다만 우리 모두는 완벽하게 불완전하며, 우리의 불안을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온전한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아마 나는 백 장의 필기를 써내도 여전히 글씨를 못 쓰는 사람일 거다. 그래도 17살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진 게 하나 있다면 그 모든 불완전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오점 없이 글씨를 써 내려가는 사람이 되는 그 완벽한 순간을 기다릴 바에, 나는 차라리 삐뚤삐뚤 글씨를 적어 내려가며 글을 마무리 짓는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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