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x리아 or 사x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여
20년 12월 이 일을 시작하고 이제 21년 2월을 맞이했으니, 이제야 2개월차에 돌입했다.
아직도 20년을 21년으로 쓰고 고치는 일을 반복한다.
그 짧은 시간에도 지난한 시간들이 빠르고, 또 느리게도 지나갔다.
내게 조연출로 한 달을 일하며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을 말하라면,
나쁜 기억을 말하는 것이 더 쉽고 또 극도의 흥분감을 가지고 말해버릴거 같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벌써 과거가 되어버린 지금 나쁜 기억들 모두 내 경험치로 갖기로 나와 퉁쳤다.
저번 글까지는 꽤 이 업계의 긍정적인 면모들을 찬양했던 나인데,
한 달동안 내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걸까?
일단 나는 여기저기 프로그램에 연출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내가 처음 맡은 일은 방송에 온에어되는 것이 아닌 온라인에 나가는 영상물로 일의 강도도 세지 않았고,
처음임에도 새로운 도전이 가능해 참 흥미롭게 임했던 것이다.
그때 난 방송이 다 그런줄 알았다...
그러던 나는 갑자기 방송일로 투입돼 조연출로 일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그 프로그램은 일의 강도가 엄청 센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 내용은 원래부터 내가 하고 싶어하던 프로그램이었으나 나는 촬영부터 간 것이 아니라
촬영 이후부터 투입되어 종편을 맡게 된 것이다.
촬영에 내가 갔더라면 아무리 힘든 후반작업이어도 즐겁게 할 수 있었을 테지만
촬영에 가지도 않은 나여서 마음가짐부터가 달랐던 거 같다.
나쁜 기억의 이유를 들자면, 너무 많다만... 이 업계의 융통성없는 체계, 가끔 이유없이도 쓴소리를 들어야하는 것, 말로만 들었던 꼰대를 현실로 마주하는 것, '감사합니다'와 '죄송합니다'가 거의 인삿말이 되어버린 일상, 콜 포비아(call phobia)가 전화를 달고 사는 일, 친구의 작은 카톡에도 화들짝 놀라게 된 내 모습, 아무리 사람이어도 절대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 나의 능력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는 1시간으로 마칠 일을 누군가는 24시간을 들이는 마법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 등... 너무도 많다!
그럼에도 이러한 시간들을 겪어온 나는 내 성향과는 달리 꽤 꼼꼼해졌다. 또 보는 눈이 생겼다.
예전에는 가볍게 지나쳐서 본 프로그램들을 한 편으론 비판의 눈으로 한 편으론 부러움의 눈으로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쉽게 이 일을 권하진 못하겠다.
나 역시도 오직 '다큐'가 좋아서 이 일을 시작하고, 나름 배움의 시간을 거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굳이 긴 시간과 체력과 마음의 상처를 들여서 배울 필요가 있을까도 싶다.
지난한 시간동안 나는 '그만둘까','그만둬야지' 이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며
잡x리아 or 사x인을 들락날락 거렸는지 모른다.
'하루만 참자', '하루만 참자'한 것이 지금의 시간까지 다행히도(?) 이어져오고 있다.
힘들다고 바로 그만두고, 눈 앞에서 안 보면 그만인 일로 만들어도 됐겠지만
그래. 그래도 내 안의 나를 한 스텝 넘긴 것이다.
나는 살면서 지금의 인내와 고통을 참아야지만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 없다.
행복은 당장 지금의 행복이어야 하고, 나중에 빛나기 위해 나 스스로 지금도 빛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은 일대로 나는 나대로 다큐를 배울 것이다.
나의 이야기와 시각이 담긴 영상물이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고 때론 작은 행동의 변화가 싹틀 수 있는 그 날까지.
다큐멘터리스트(Documentarist)로의 꿈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