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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개 Apr 21. 2020

시작 (2)  무슨 학교를 가야 잘 갔다고 소문이 날까

페랑디ferrandi는 관심 없어?라고 그녀가 물었다. 어? 어.라고 대답했다. 나는 당시 프랑스 중부 이쌩조Yssingeaux에 위치한 ENSP(Ecole Nationale Supérieure de Pâtisserie)나 북부의 후앙Rouen에 위치한 INBP(Institut National de la Boulangerie Pâtisserie)를 생각하고 있었다. 르노트르Ecole Lenôtre나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 벨루에 꽁세이Bellouet Conseil 같은 학교들은 학비가 너무 비싼 관계로 아웃이었다. 


내 플랜은 간단했다. ENSP에서 제과를 배우고 INBP에서 제빵을 배운다. 많은 한국인들이 이 두 학교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했고 상담을 받았던 유학원들에서도 이 두 학교를 추천했다. 특히나 후엉의 어학원 프렌치 인 노르망디를 거쳐 INBP로 가는 게 기본 코스라고 볼 만큼 대부분 이 루트를 설명해 주곤 했다. 돌이켜보면 누가 오던지 상관없이 이 코스를 추천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학교와 유학원 사이에 커미션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어쨌든 페랑디의 경우 외국인은 입학이 힘들다는 이유로 설명해 주지 않았다. 궁금함에 혼자서 찾아보려 해도 다른 학교들과 달리 후기는커녕 정보를 찾기도 힘들었다. 글 몇 개가 검색망에 포착되었지만 쓴 날짜가 2006년. 너무 옛날 정보였고 알맹이가 없었다. 결국 그때 나는 별생각 없이 저 포도는 신 포도일 거야 하고 관심을 접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야기가 틀렸다. 현지의 생생한 증언들과 인터넷에 널린 프랑스어 자료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다시 검색엔진을 가동했다. 


학교 안은 무진장 크다.


페랑디는 파리의 상공회의소에 의해 1920년에 설립되었다. 학교는 중학교 수준의 교육부터 대학교까지 넓은 범위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으며 호텔리에와 요리 두 파트로 나뉘어 있다 by Google. 스크롤을 내리니 눈길을 끄는 제목이 있었다. A l'école Ferrandi, le Harvard de la gastronomie - Le Monde. 르몽드의 기사였는데 요식업계의 하버드라니, 프랑스다운 거만한 제목이지만 맘에 들었다. 기사 말마따나 프랑스인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현지인들에게도 나름 인정받는 학교였고 제과점이나 호텔들과의 커넥션 또한 짱짱했다. 괜찮은데, 생각이 들었다. 


명성 말고도 페랑디는 많은 이점이 있었다. 커리큘럼이나 교수진은 다른 학교들도 분명 훌륭할 터이므로 제외하고, 첫 번째로 우선 저렴한 학비가 매력 포인트였다. 2020년 기준으로 내가 들었던 9개월 코스의 학비는 9450유로였다. 참고로 르꼬르동 블루의 9개월 학비는 22000유로, 르노트르의 25주 학비는 28900유로다. 가격 면에서 혹할 수밖에 없었다. 저렴한 학비는 파리 상공회의소가 지원하는 학교라서 싸다나 뭐라나. 


<le temps et le pain> 7 Rue Mouton-Duvernet, 75014 Paris


두 번째 이점은 학교가 파리에 있다는 것이었다. 파리에서 산다는 건 1달 600유로의 쥐똥만 한 하녀 방에서 몸을 수그리고 세수를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만, 한편으로는 디저트 세상의 최첨단에 서 있을 수 있다-라는 것을 뜻한다. 사진은 유명한 제과점이 아니라 우리 집 옆에 있는 조그마한 파티스리-불렁제리인데, 제품의 퀄리티를 보면 신세계 백화점 지하 푸드코트에 있을법한 AAA급 제과점처럼 이쁘다. 동네 제과점이 이런데 진짜 유명한 곳은 어떨까. 


프랑스의 식도락가 브리야 사바랭은 이렇게 말했다. '그대 무엇을 먹는지 말하라, 그러면 나는 그대가 누군지 말해보겠다'. 먹어본 놈이 안다고 많이 먹어본 셰프가 더 잘 안다. 특히나 제과의 세계에서 Tendance culinaire, 미식의 유행이라는 건 특히 신경 써야 할 요소일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가장 핫한 셰프들의 디저트를 바로바로 먹어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잡지에서만 보던 세드릭 그로예의 디저트를 바로 먹어볼 수 있다는 것. 멋지지 않은가. 


그래서... 나에게 페랑디를 갈 거냐고 물어본 그녀는 결국 한국으로 돌아갔지만, 덤보처럼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팔랑귀를 보유한 나는 그 학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세드릭 그로예의 사과. 사악한 가격을 자랑한다 (하나에 17유로 속닥속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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