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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개 Apr 26. 2020

하얀 설산을 내 입 안에, 몽블랑 mont-blanc

https://www.sortiraparis.com/hotel-restaurant/cafe-tea-time/articles/75141-les-journees-du-mont-blan


디저트를 사랑하는 프랑스인들에게 겨울을 알리는 신호는 제과점의 쇼윈도에 몽블랑이 등장할 때라고 한다. 겨울을 상징하는 아이코닉한 디저트 몽블랑. 추운 계절에 외투 한 장 걸쳐 입고 몽블랑을 품 안에 소중히 포장해 가지고 돌아와 식탁 위에 커피 한잔과 몽블랑, 조그만 포크를 준비해 놓는다면 얼마든지 겨울을 날 수 있을 것만 같다. 

몽블랑을 한 입 베어 물면 우선 부드러운 밤 크림이 입안을 묵직하게 채운다. 더 안으로 들어가 보면 몽블랑의 여린 속살인 크렘 샹티이Crème chantilly의 가벼움과 약간의 달콤함이 혀를 부드럽게 감싼다. 두 가지 다른 크림을 즐기다 보면 그 하부가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낸다. 때로는 부들부들하고 촉촉한 제노와즈, 그것이 좀 더 클래식한 몽블랑이라면 거칠고 바삭한 머랭이 자리하고 있다. 부드러움만으로는 2% 부족한 느낌을 단단한 머랭의 식감이 채워주면 그제야 몽블랑을 다 즐겼다는 느낌이 든다. 



출처  http://www.letribunal.com/mont-blanc-angelina/


mont-blanc, 프랑스어로 하얀 산이라는 말처럼 몽블랑은 본래 알프스 산의 꼭대기를 뜻한다. 이탈리아와 스위스, 프랑스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산의 정상은, 15세기경 이탈리아 출신의 파티시에에 의해 몬테 비앙코라는 monte bianco라는 이름의 디저트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마키아밸리의 <군주론>의 모델이었던 이탈리아의 귀족 체사레가 이 디저트를 좋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는데 몽블랑의 매력은 강인한 군주조차도 헤어 나올 수가 없었던 게 확실하다. 그러나 15세기의 몬테 비앙코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몽블랑과는 조금 다른 모양이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초기의 몽블랑이 어떻게 생겼는지 자료로 남아 있지는 않지만, 당시의 유럽이 휘황찬란한 식탁 문화로 유명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아마 그 시절의 몬테 비안코는 설산을 화려하게 이미지화한 이런 느낌의 디저트가 아니었을까?


출처 http://www.lindasitaliantable.com/recipe-of-the-month-december-monte-bianco/


시간이 흘러 1620년경 프랑스에 몬테 비앙코가 도착한 후 또다시 몇 세기가 지나 파리의 유명 제과점 <Angelina>의 창립자 Antoine Rumpelmayer는 1903년 최초로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의 몽블랑을 내놓았다. 바삭한 머랭 위에 크렘 샹티이, 그리고 그 위에 흔히 말하는 몽블랑 깍지로 짠 국수 모양의 밤 크림. 마지막으로 슈가 파우더를 뿌려주면 완성되는 그 몽블랑 말이다. 그리고 이 레시피는 안젤리나에서 지금까지 바뀌지 않은 채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그가 몽블랑을 만들었을 당시 밤 크림의 데코레이션은 당시 유행했던 여자들의 머리 스타일을 참고했다고 하는데 비슷한 거 같기도. 



좀 비슷해 보이십니까?


온고지신의 가치는 프랑스에서도 유효하다. 현대의 디저트는 누벨 퀴진으로 대표되는 전위적인 디저트의 시대는 끝이 나고 전통적인 디저트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해석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얀 꾸브허yann couvreur의 밀푀유나 세드릭 그로예cedric grolet의 생토노레가 좋은 예일 것이다. 몽블랑 또한 이러한 변화의 바람을 받아들이고 있다. 너무 무거웠던 크림의 질감과 단맛을 줄이고 다양한 방식의 데코레이션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전통 디저트의 재해석은 물론 프랑스인에게만 주어진 화두는 아니다. 듀혹duroc 옆에 위치한 일본 파티스리 모리 요시다mori yoshida의 쉐프 모리 요시다 또한 몽블랑을 그의 방식대로 해석하고 있다. 후지산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 그의 몽블랑은 밤 크림, 젤라틴을 섞은 샹티이 크림, 제노와즈와 아몬드 크림 그리고 그 속에 조려진 밤이 숨어 있는데,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겉 표면의 파트 아 필로pate a filo이다. 터키의 디저트인 바클라바에 쓰이는 얇은 파이지를 몽블랑 표면에 사용함으로써 머랭 없이도 바삭한 식감과 마치 화분에 담긴 꽃과 같이 아름다운 비주얼을 선사하고 있다. 


https://madame.lefigaro.fr/cuisine/le-mont-blanc-lhistoire-dune-ascension-090115-93604


겨울에 파리에 도착했다면 비록 센강에서 유유자적하게 먹는 아이스크림의 맛은 즐기기 힘들겠지만, 걱정 마시라. 몽블랑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혹시 몽블랑을 제대로 즐겨보고 싶은데 막막하다고? 사실 수많은 파리의 제과점들 사이 어디서 몽블랑을 먹든 '평타'는 치리라 보장한다. 그러나 조금 더 이 디저트를 즐기고 싶다면 우선은 안젤리나에서 원조 몽블랑을 먹어 보는 것은 어떨까? 더군다나 1구의 안젤리나는 프랑스 궁정에서 먹는 느낌까지 느낄 수 있어 1석 2조다. 나는 원조 닭갈비 이런 거 싫어한다 혹은 좀 더 특별한 경험을 원한다면 리츠 호텔Ritz Paris에서 셰프 프랑스와 페레François Perret의 몽블랑을 먹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다만 단점은 지갑이 조금 허전해지리라는 것을 유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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