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를 훑고 간 케이크의 생크림. 토마토 수프의 고명이 되어버린 고흐의 해바라기. 이런 게 뉴스가 되고 트렌드가 된다. 당연히 비난받아야 할 기이한 행동들이 그 대상과 시대를 타고 다른 무엇인가로 변모해간다. 스스로 당위성을 부여하려는 그들의 행동에 대한 평가는 갈라지고 빈도는 늘어난다. 예술과 그 예술을 뒤덮는 무언가는 뭐가 어떻게 다른 것일까.
파리의 한 길거리에서 여행객들의 크로키를 그리며 생계를 이어가던 뤼카는 항상 생활고에 시달려왔다. "나도 예술에 대한 마음과 열정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데..."라는 식의 생각을 종종 하던 어느 아침에, 끝내 결심을 한다. 당장 루브르로 달려가 <비너스>에게 이단 옆차기를 갈겨버려야겠다고.
그러나 다부진 마음으로 루브르에 도착한 뤼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미 <비너스>의 머리는 바닥을 뒹굴고 있었고,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콜드플레이 팬들의 롤링페이퍼가 된 지 오래인 데다, <모나리자>는 파안이 되어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날 아침, 파리지앵 모두가 뤼카와 똑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하루아침에 루브르가 붕괴되었다.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희대의 명작들은 무작위의 사람들에게 초 단위로 끊임없이 수정되고 있었다. 그 끝이 보이질 않는 광대한 혼란 속에서도, 한 명 한 명의 표정에는 광기와도 같은 행복감이 서려있었다.
미동조차 없는 뤼카의 모습과는 달리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무질서한 사람들에게 짙은 혐오감이 들다가도, 사실은 자신도 똑같은 목적으로 이곳까지 왔다는 사실에 한없이 부끄러워하면서, 역시 마음 깊은 곳에선 그들의 행동에 동조하고 싶은 심정이 지배적이었다.
한참을 움직임이 없던 뤼카의 눈에 드디어 광채가 돈다. 그는 그대로 몇 걸음을 내디딘 뒤, 비너스의 머리에 걸터앉아 담배를 꺼내 문다. 그것이 그의 자리였던 것이다. 그렇게 믿기로 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