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리지블루 Nov 18. 2022

도시의 양극화와 페미니즘

고향 친구와 하이볼을 마시던 중, 도시의 양극화에 대한 주제가 나왔다. 우리의 고향을 포함한 지방의 발전 속도보다 더 빠르고 근사하게 변하는 서울을 떠날 엄두가 안 난단다. 그러자 나는 "우리 고향에도 페미니즘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왜냐면..."라고 말했고, 친구는 뒷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격한 공감을 표했다.

고향 친구들의 연애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전히 고전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평소엔 동등해 보이지만 정말 중요한 순간엔 위계가 확실하다. 그 확실한 수직구조 위에서 남자는 당연함을, 여자는 안정감을 느낀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그들의 잘못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지금껏 그래 왔던 것들, 그리고 서로가 만족하는 것들에 의심을 품는 일은 그 자체로 두려운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연하다 여겨왔던 것들이 계속해서 당연한 채로 남아있는 세상에선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모인 곳에는 남성들이 모여들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잘 없다. 이미 사회적으로 주체적인 위치를 선점한 남성들은, 어째서인지 교제의 상황 아래에선 여성에게 한없이 희생적인 역할을 자처한다. 물론 서로를 처음 만나 시작하는 순간에 한해서 말이다. 여기서 시작하는 순간이란 서로에 대한 무지의 순간이며, 곧 남성 대중과 여성 대중의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관계이다.

그래서 돌고 돌아 친구에게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은, 이 시작의 순간에 한해 역전되는 남녀의 위계질서를 근거로 도시 양극화의 극복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지방 여성들이 여권(女權)에 대한 향상심을 가지고 그간의 불합리함과 불편함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면, 그러한 니즈를 충족하고자 남성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들을 기꺼이 내놓고 변화를 추구할 것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요구는 자연스럽게 조치가 뒤따른다. 문화, 교통, 생활 시설에 대한 여성들의 끊임없는 개선 요구는 남성들의 조치를 통해 개선과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변화를 주도하는 주체가 남성인 것에 의문과 불편함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로부터 남성은 창조의 주체가, 여성은 소비의 주체가 되어 일궈낸 것이 현대의 사회이다. 창조를 해야 소비가 이뤄지고, 소비가 이뤄져야 또 다른 창조가 이뤄진다. 둘 중 어느 쪽도 감히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없으며, 이러한 균형과 평등이 페미니즘이라는 사상이 태동할 당시의 방향성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이미 단단히 굳어버린 기성 사회에 대한 막연한 불평보다는 각자가 할 수 있는 것들과 잘하는 것들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길, 그리고 더 중요하게, 그럴 수 있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작가의 이전글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