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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날 Jan 30. 2022

[독서일기] 다정소감, 김혼비

나의 다정이 필요한 요즘

2022년, 직장생활 20년차에 접어들었다. 1년의 시간을 버텨낼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 시작한 직장생활은 정년까지 근무하고 싶은 바램을 가지게 했고,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내가 속한 조직의 변화를 감내하는 건 쉽지 않은 시간의 버팀이라는 걸 깨닫는 요즘이다. 인사담당자의 연말이 늘 그렇듯 나는 지난 12월 가장 바쁜 시간을 보냈고, 또 한 번의 변화와 함께 2022년을 맞이했다. 업무 환경에 큰 변화가 생긴 덕분에 1월은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오는 연습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매일의 좋은 날을 나 스스로 만들어내겠다는 평소 나의 다짐은 만지면 바스스 부서지는 바삭한 감자칩처럼 찰나의 순간임을 깨닫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는 오늘도 출근 준비를 하면서 주문을 걸어본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절대 나만 힘들지 않다. 서로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새삼 조금 유난이었던 그래서 언제나 나를 지켜주었던 다정에 대하여 살짝 얼려둔 마음들이 녹는 순간에 대하여”라는 문장이 유독 나의 눈길을 멈추게 했다. 노란색 옷을 입은 책 <다정소감>에서 내 마음의 봄을 찾아보기로 했다. 상처 받은 내 마음에 호~하고 따스한 기운을 불어넣어보고 싶었다.


가장 바빴던 12월, 3년을 나와 함께 일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던 K에게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얼마나 노력했을지 너무나 잘 알기에 공인노무사 시험에 최종 합격했다는 K의 전화는 유난히 반가웠다. 같이 일하면서 했던 업무에 대한 고민들이 지금 탄탄한 기본기가 되어 자양분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에 함께 고생한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직장생활의 첫 걸음을 잘 시작할 수 있도록 많은 영향을 준 것이 나였다고 했지만 사실 같은 고민을 함께 해내는 K와 좋은 동료로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선배로서 잘 이끌어줘서, 동료로서 존중해줘서 참 고마웠다는 K, 같은 방향을 향해 옆에서 같은 보폭으로 잘 걸어주었던 K가 있었다는 기억은 나에게 뿌듯함을 느끼게 한다.


가까이에서 11년을 근무한 H가 1월 초 갑작스러운 퇴사 소식을 알려왔다. 조직개편 후 산적한 일들로 정신 없는 시간을 보내던 시기라 마지막 날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보냈다. 퇴사할 때 선물하려고 사 두었던 책은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전해줄 수 있었다. 내 자리에서 가까이 보이는 H의 빈 자리는 묘하게 K의 빈 자리와 느낌이 닮아 있었다. H가 주니어 사원 시절, 나와는 아주 잠깐 같이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빠른 업무 이해력과 꼼꼼한 업무 처리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최근에는 나와 연계된 업무를 하고 있어 가끔 업무에 대한 논의를 할 때가 있었는데, 담당업무에 대해 고민의 깊이에 역시 H답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선물로 보낸 책을 받은 H는 나와 다시 일을 같이 해 보고 싶었다는 아쉬움과 고마움을 전해왔다. H가 새로운 도전을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고민했을지, 그의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짐작해본다. 아직도 회사에 쏟아 부은 열정의 잔열이 남아있을 H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해 줄 수 있어 기쁘다.  


유쾌한 에너지가 넘치는 P는 올해로 입사 13년차가 되었다. 같은 팀 선배들이 큰 나이 차이로 멘토가 되어주는 걸 부담스럽다고 해서 인사담당자였던 내가 자연스럽게 멘토가 되었다. 사회생활을 처음 하는 P에게 다른 팀 선배들도 소개해주고, 직장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책도 선물했다. 엑셀 수식을 활용해 데이터를 정리하는 방법과 보고서 작성하는 방법, 그리고 업무 일정표를 작성해 주도적으로 업무를 챙기는 소소한 팁도 알려주었다. P는 누군가 자신의 성장에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주는 것에 무척 고마워했다. 나보다 10살이나 어린 P는 이제 그 때의 나처럼 누군가의 선배가 되어 후배들을 챙긴다. P는 가끔 예고도 없이 고맙다는 표현을 불쑥 불쑥 한다. P는 지난 주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예고도 없이 고마웠던 옛날 기억들을 끄집어내었다. 덕분에 한 켠으로 밀쳐두었던 우리 젊은 날의 기억들이 떠올라 서로 마주보고 한참을 웃었다. 그래, 그땐 그랬지. P 덕분에 오늘 나는 호랑이 기운이 불끈 솟아났다.


“여름 동안 정성껏 얼려 가을에 내보낼 글들이 나의 산문집을 방문해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잘 녹으면 좋겠다.”


나의 다정이 나에게 가장 필요한 요즘이었다. 내가 보낸 다정이 그들에게도 잘 닿았음을 알게되면서 여전히 내 안에 다정이 남아있음을 알아차려 본다. 나에게 보내는 다정이 나에게 잘 와 닿았음을 이제라도 알게 되어 참 다행이다.


- 2022.01.30. 른이 되어가는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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