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연일 운명이었어
우린 인연일까 운명일까?
너무나 멀리 돌아온 우리 둘이잖아, 그 버린 시간들이 난 참 아까워
맞아, 하지만 처음 만남에 우리가 잘 됐더라면 우린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어.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멀리 돌아왔지만 우리는 인연일 운명이었던 거야.
우리의 인연이 닿은 건 5년 전 시드니에 있을 때였다. 같은 공통분야를 가진 사람들끼리 온라인 어딘가 깊이 숨겨져 있는 커뮤니티 안에서, 나와 같은 동네에 온 한국인 친구를 알게 됐다. 처음 만났을 때는 굉장히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잘 웃는 사람이었다. 그냥 사람 자체가 호감인 사람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현재 내 파트너도 나도 서로 만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정말 그냥 친구로 지내볼까 하고 만났다. 우리는 그렇게 급속도로 친해졌다. 또 다른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꽤나 큰 그룹의 친구들이 생겼다. 다들 집도 근처에 살아서 서로 왕래가 잦았다.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놀기도 하고, 단 둘이 만나서 같이 커피도 마시고 드라이브로 하러 다녔다.
둘이 커피를 마시러 나가도, 드라이브를 하러 나가도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정말 안전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 고민거리만 털어놓았다. 내 연애의 고민들, 그 사람의 연애의 고민들, 살면서 생기는 고민거리들 등, 그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연애관이 나와 참 비슷하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누구보다 완벽하게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바람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만나는 사람을 두고 호감을 느꼈다면 그건 이미 바람일지 모른다. 손 한번 잡아보지 않았고, 친구끼리 하는 가벼운 스킨십조차 없었다. 하지만, 둘 다 서로에게 흔들렸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는다. 흔들리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친구라는 탈을 쓴 채 그렇게 마음을 다 잡았다.
우리는 인연이 아니었던 걸까, 그러다 그 사람이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 짧았던 6개월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다시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6개월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짧았던 시간이었지만 그 기억들은 아직도 참 아련하게 남아있다.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4년 동안 일 년에 한두 번씩 그 사람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단 한 번도,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에게 흔들렸고, 연락이 오고 가다 보면 또 흔들릴게 뻔했다. 너무 좋은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서,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사람은 일 년에 한두 번씩 안부 묻는 문자를 꾸준히 보내왔다. 문자가 길지도 않았다. "잘 지내고 있어?", "응 난 잘 지내지, 넌 잘 지내?", "난 잘 지내고 있어, 생각나서 연락해봤어!" 이게 끝이었다. 왜 연락을 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내 안부만 물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는 만나던 애인과 헤어졌다. 길다면 길었을, 사랑했겠지만 돌아보면 사랑이 아녔을지도 모르는, 정말 힘들었던 관계를 정리했다. 이사를 준비하고 이직 준비 겸 잠시 한국에 다녀 올 일이 생겨서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잘 지내?" 또 울렸다. 그 사람이었다. "응 난 잘 지내지, 넌 잘 지내?" 똑같은 문자를 보냈다. 이번엔 전화가 걸려왔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어제 연락한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통화를 했다. 그 사람은 그랬다, 사교성이 좋아서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고, 그 자리를 어색하게 만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4년 동안의 갭이 없어질 만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제 꿈속에서 널 봐서 생각나서 연락해봤어, 한국에는 안 와?"
"아 안 그래도 일이 생겨서 다음 달에 잠깐 나갈 것 같아."
"아 애인이랑 같이와?"
"아...... 아니 헤어졌어 혼자가"
"무슨 일이야 갑자기?"
"알잖아 예전부터 안 좋았던 거, 똑같은 문제지 뭐"
서로 연애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람이 말했다.
비행기 언제야? 내가 공항으로 데리러 나갈게.
그렇게 4년 만에 우리는 다시 만났다.
4년을 돌고 돌아 서로 만난 우리는 한동안 지난 이야기를 한참 풀어냈다. 서로 하지 못한 이야기들, 왜 우리는 그렇게 엇갈리는 일만 많았었는가 하는 이야기들로 주로 대화를 이어갔다.
4년의 시간이 물론 너무나 아깝다. 우리가 진작 다시 만났다면, 시간 소모 감정 소모 등등하지 않았어도 되는 게 참 많았을 텐데.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서로 싱글이었다면? 우리가 그때 만났더라면 그 사람이 6개월 한국 가있는 동안엔 우린 괜찮았을까? 그 후엔? 아마 그때는 우리의 '때'가 아니었던 걸지도 모른다. 타이밍이 그게 아니어서, 그렇게 엇갈리고 엇갈렸을지도 모른다. 사랑에는 타이밍이 있다는 말이 이렇게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는 인연일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 인연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연락을 해왔던 애인과, 서로의 마음속에 고이 접어놨던 마음이 같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많이 엇갈리고 돌아왔지만, 이제는 평생을 함께하자 약속하고, 결혼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